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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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죽을게요."

오빠는 두려움 때문에 눈동자가 콜타르색으로 변했으면서도 이제 아버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럼 죽겠습니다, 아버지." -P.16

소설의 전반부에서 주인공 캄빌리의 오빠가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장면이 펼쳐졌다.

캄빌리는 태어나서 처음보는 오빠의 반항에 숨이 조여오는 듯한 두려움을 느낀다. 두려움의 대상은 아버지다.

고등학생인 캄빌리는 나이지리아의 상류층 가정의 딸이다. 아버지는 나이지리아에서 식음료 사업과 언론사 운영을 함과 동시에 신실한 가톨릭 신자로 지역사회와 종교계에서 추앙받는 사람이다. 자신의 주변 뿐만 아니라 사회에 기여하며 존경받는 그는, 그러나 자신의 가정에선 권위와 폭력을 일삼는 이중적인 인물이었다. 캄빌리의 가족-어머니, 오빠, 캄빌리-에게 아버지는 신과 같은 존재였고, 복종의 대상이었다.

"쟤를 봐. 머리가 몇 개냐?"

"하나요."

"저 애도 머리가 하나지 두 개가 아니잖니. 그런데 왜 쟤가 1등을 하도록 놔뒀지?"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예요, 아버지."-P.63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친구들과의 대화에도 낄 수 없고 학교를 마치면 200미터 달리기에 나가기라도 한 양 돌진해서 아버지의 기사가 댄 차에 올라타는 캄빌리. 하루는 유일하게 그녀에게 말을 걸어주는 친구가 묻는다.

"왜? 네가 남아서 다른 애들이랑 얘기하면 사실은 잘난 척하는 애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냥.... 달리기가 좋아서."

한번은 케빈(운전기사)이 아버지에게 내가 몇 분 늦게 나왔다고 말하자 아버지가 내 왼뺨과 오른뺨을 동시에 때려서 며칠동안 똑같이 생긴 커다란 손자국이 얼굴에 남고 귀가 왕왕 울린 적도 있었다. - P.69

그런 캄빌리에게 오빠의 반항은 삶을 통째로 뒤흔드는 일생 일대의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 사건 하나만이 캄빌리의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은 아니었다. 캄빌리와 오빠의 내면의 변화에 기여한 본질적인 배경이 있었으니, 바로 다른 도시에 살고 있는 고모인 이페오마의 가족들이었다. 가난하지만 자유롭고 자주적인 고모와 사촌들과 함께 보낸 짧은 일탈은 캄빌리에게 큰 충격이었다. 처음엔 규율에서 벗어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만 차차 자신들의 삶이 잘못되었다는걸 깨닫는다. 자아의 성장이 시작된 것이다.

지금 내게 오빠의 반항은 이페오마 고모의 실험적인 보라색 히비스커스처럼 느껴졌다.

희귀하고 향기로우며 자유라는 함의를 품은, 쿠데타 이후에 정부 광장에서 녹색 잎을 흔들던 군중이 외친 것과는 다른 종류의 자유. 원하는 것이 될, 원하는 것을 할 자유. -p.27

그때 나는 이페오마 고모도 사촌들에게 똑같이 해 왔음을 깨달았다. 엄마가 자식한테 어떤 식으로 말하고, 무엇을 기대하는가를 통해 그 애들이 뛰어넘어야 할 목표를 점점 더 높였다. 아이들이 반드시 막대를 넘으리라 믿으면서 항상 그랬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오빠와 내 경우는 달랐다. 우리는 스스로 막대를 넘을 수 있다고 믿어서 넘은 게 아니라 넘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넘었다. -p.274

소설을 읽으며 두 가정의 상반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너무나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지를 둔 캄빌리의 가족과, 남편을 잃고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며 자주적인 삶을 추구하는 이페오마 고모의 가족 말이다. 단순히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넘어서, 부와 가난의 문제를 넘어서, 종교와 이교도의 문제를 넘어서 진정한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이 소설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인 듯 하지만 나이지리아 국가의 문제, 더 나아가 미국과 제3세계에 대한 문제도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차별과 억압은 어디에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미국 대사관 사람들이 나이지리아인을 어떻게 대하는지 못들었어? 모욕하고 거짓말쟁이라고 부르고, 게다가 뭐더라, 비자를 안 주기도 한다고."

"엄마는 비자 받을 거야. 대학교가 보증인이잖아."

"그래서? 대학교가 보증한 사람 중에 비자 못 받은 사람은 많아." -P.316

무조건적인 복종의 대상이었던 아버지에게서 서서히 벗어나는 캄빌리와 그녀의 가족.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감정을 숨기게 되는 죄의식으로 변해간다. 그만큼 '신'과 같았던 아버지는 결국 그 가족들에게 입에 올리기조차 꺼려지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녀의 삶을 변화시킨 이페오마 고모와 아마디 신부님과의 이별 또한 캄빌리에게는 성장의 발판이 된 듯하다.

소설의 후반부는 담담하다. 밝고 희망찬 미래를 예고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는 캄빌리의 모습에 성장한 소녀의 모습이 보인다. 웃는 것조차 상상하지 못하던 삶에서, 성가대의 합창 외엔 허용받지 못하던 삶에서 이제 그녀는 소리내어 웃고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릴 줄 알게 되었다. 여전히 나이지리아는 부패하고 어지럽지만 그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머리 위에 염색한 목화솜 같은 구름이 낮게 떠 있다. 너무 낮아서 손을 뻗으면 물기를 짜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제 곧 새로운 비가 내릴 것이다.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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