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텐베르그 갱신 운동
루터가 비텐베르그대학에 부임해온 후 그리고 그의 초기 강의를 끝냈을 때, 대학의 신학 연구 분위기는 확실히 변해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 대학을 지배해오던 스콜라 신학이 새로운 신학의 거센 도전을 받아 설 자리를 잃게 되고 대신 바울과 어거스틴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신학의 부흥이 일어난다. 새로운 신학의 핵심은 바울이 전파한 십자가였다. 십자가를 중심으로 하는 십자가 신학이 영광을 중심으로 하는 영광의 신학을 밀어냈다. 먼저 이 신학 갱신 운동의 역사를 살펴보자.
비텐베르그 신학 갱신 운동(1518-1521)에 대한 지식은 먼저 동시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하여 얻을 수 있다.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 운동은 스콜라 신학에서 돌아서서 교부들에게로, 특히 어거스틴에게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다. 이 운동에 관여한사람들은 성경을 변증법이 아닌 문법을 통하여 해석하기를 원했다. 우리는 이 운동의 지도적 역할을 했던 루터와 멜랑히톤을 통해서 이에 관해 좀 더 구체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다. 루터는 1517년 5월 18일 요한 랑(Prior Johann Lang)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우리의 신학(nostra theologia)과 성 어거스틴은 놀라운 진보를 하고 있고 하나님의 간섭에 의하여 우리의 대학을 지배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점점 내리막길을 걸어 이제 막바지에 다달아 몰락 직전에 있는 것 같다. 문장론에 관한 강의들은 현저하게 피해지고 있으며 이 신학, 즉 성경과 어거스틴 또는 다른 교회 안에서 권위를하게 된다. 멜랑히톤은 그의 취임 강연에서 이 대학을 인문주가진 교사들(예를 들어 터툴리안, 이레니우스, 키프리안)을 고백하지 않는 신학자는 어느 누구도 많은 수강자들을 기대할수 없다."
우리는 루터가 비텐베르그대학의 신학을 ‘우리의 신학 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그리고 그 신학을 성경과 어거스틴을포함한 교부들에까지 소급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루터는 이런 권위들에 호소하며 이 운동의 처음 단계에서는 랑과 칼슈타트(Karstadte와 함께 신학을 철학의 토대 위에 세웠던 스콜라신학으로부터 해방시키려 하였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비텐베르그 신학은 주로 원전과 언어 연구에 몰두했던 인문주의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이러한 경향은멜랑히톤이 이 대학 그리스어 교수로 부임해오면서 절정에 달하게 된다. 멜랑히톤은 그의 취임 강연에서 이 대학을 인문주의의 이상에 부합하게 개혁하고 싶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