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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라스의 마녀 ㅣ 라플라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평점 :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 '라플라스의 마녀' 장편소설은 작년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 이어 두 번째로 읽는 소설이다. 둘 다 현대문학 출판사를 통해 발간되었으며, 번역가 역시 양윤옥 번역가로 동일하다. 양윤옥 번역가의 경우 일본소설을 읽다보면 많은 책들에게서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는데, 나는 여지껏 그가 남자일 것이라고 상상해왔으나 이 책을 읽으며 호기심에 한번 검색해보았는데 여자였다, 그것도 나이가 제법 많아 보이는...;; 일본 남성 작가의 책을 읽으며 남성적인 어투에 익숙해져서일까, 그런 선입관을 가지게 된 것인데 한방 제대로 먹은 셈이다.
'라플라스의 마녀' 책은 52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읽는데 시간이 제법 걸리는 셈인데 언제 다 읽나 하면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다 읽는 것이 아까워 천천히 읽을 정도로 무척이나 재미가 있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도 커다란 즐거움과 만족을 나에게 선사해주었는데, 앞으로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발간만 되면 믿고 구매해서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플라스의 마녀'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각각의 캐릭터들은 흡사 영화 속 인물들을 보듯 구체적이고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어 머릿속에 생생하게 재현되는 등 실감나게 표현되었다.
- 불의의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되살아난 천재 소년 '아마카스 겐토' 군을 비롯하여,
- 그와 비슷한 또래로 천방지축인 데다가 제멋대로인, 책의 제목과 연관이 있기도 한 또다른 천재소녀 '우하라 마도카'
- 소녀의 감시인이자 보디가드인 무뚝뚝한 전직 경찰 '다케오'
- 철두철미하고 차가운 이성미를 내뿜는 소녀의 비서 '기리미야 레이'
- 라플라스의 마녀의 아버지이자 뇌의학 천재 박사 '우하라 젠타로'
- 황하수소 가스 사고의 자문 차 현장을 방문하였다가 뜻하지 않게 사건에 휘둘리게 되는 '아오에' 교수
- 역시 우연한 계기로 사건에 의구심을 갖고 파헤치기 시작하는 형사 '나카오카'
- 그저 재력만을 보고 수십년의 나이차를 감안하고 결혼하였으나 악마의 유혹을 거절하지 못하고 범행에 가담하게 되는 미모의 부인 '치사토'
- 모든 사건의 원인이 되는 천재 영화감독이자 겐토 군의 아버지인 '아마카스 사이세이' 등
최근 국내 단편소설 위주로 읽다가 오래간만에 외국 장편소설을 읽으니까 커다란 차이점을 하나 느낀다. 바로 이야기의 서사, 스토리텔링의 스케일이 압도적으로 다르다는 점. 한국문학, 특히 단편소설의 경우 이야기에 특별한 사건이랄 게 없어서, 서사 위주의 흐름보다는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 위주로 서술하는데에 반하여 외국문학의 경우 분명한 Event를 바탕으로 이야기의 흐름을 묘사한다는 점. 아무래도 번역문학의 특성 상 작가 특유의 필체를 재현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가급적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소설을 더 선호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작게나마 해보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국내에는 이런 류의 소설이 별로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내가 몰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의 유일한 아쉬운 점은 양장본이 아니라는 점. 완독까지 제법 시간이 걸리므로 책을 수시로 여닫곤 하는데, 커버가 상당히 얇아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하는 편이다. 이왕이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처럼 동일하게 만들어주지. 크기는 똑같은데 말이다-
아무튼간에, 읽는 내내 굉장히 즐거웠다. 정말 너무너무 재밌다. 작가의 필력에 새삼 놀라게 되는, 또 하나의 역작이라는 생각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음 작품이 너무나도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