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이 아닌 모든 것
이장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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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몇 년째 꾸준히 읽게되면 상당히 낯익은 작가의 이름이 생기게 마련인데, 그 중 이장욱 소설가 역시도 마찬가지로 여러 번 접할 수 있는 작가임이 분명하다. 이는 곧 이 작가의 작품은 어느정도 일정수준 이상임을 보증한다는 얘기일텐데, 다행히도 난 이 작가의 결과물이 매번 마음에 드는 편이었고 그래서 지난 2010년에 발표한 작품집 '고백의 제왕'도 구입하여 봤더랬다.

이번에 발표한 단편소설 모음집 '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수록된 8편의 단편소설들 중에서 무려 6편이 기존에 읽어본 것들이었다. 이 경우 신선함은 덜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작가가 그간 얼마나 많은 결과물들을 여러 문학상에 입상시켜왔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총 8편의 작품들 중 가장 주목을 받을만한 작품은 '절반 이상의 하루오'와 '우리 모두의 정귀보'가 아닐까 싶다. 이장욱 작가는 소설 속 화자가 주인공이라기보다는 관찰자가 되어 제3의 인물을 묘사하는 형식이 특히 탁월하다는 생각인데, 이러한 장점을 잘 살린 작품이 바로 두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도 훌륭하다. 자기고백 형식을 취한 이 작품은 화자가 거짓말이 아닌 사실을 이야기하지만 도리어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결과를 불러일으키며 감내해야 할 청자의 패러독스를 특유의 블랙코미디를 이용하여 꼬집고 있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은 홍보용 샘플북을 통해 먼저 읽어본 작품으로, 실제 중세 시대에 그려진 그림을 보며 상상력을 발휘하여 써내려간 작품으로 보인다. 우리는 때때로 어떠한 예술작품을 보거나 듣고난 후, 기이한 영감을 받아 창작열이 불타는 경우가 있는데 이 작품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마음에 드는 작품은 아니지만, 어쨌든 작가의 창작욕구를 엿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올드 맨 리버'는 솔직히 다소 진부했다. 이렇다할 에피소드도 보이지 않고, 이야기의 흐름이 너무 평이한 것이 아닐까 싶다.

차라리 '칠레의 세계'라든가 '어느 날 욕실에서' 두 작품은 전형적인 이장욱 작가의 미스테리한 작품이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뻔한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재미만큼은 보장이 되었다. 인간이 기이한 사건을 겪은 뒤 느끼는 감정을 허무주의적 관점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 수록작인 '이반 멘슈코프의 춤추는 방'은 하루키적인 제목과 러시아소설같은 분위기가 매혹적이었다. 원래 장편을 염두에 두고 쓴 소설이라고 하니, 훗날 '태엽감는 새'처럼 장편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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