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욱 작가의 소설집을 읽는 김에, 김경욱 작가가 지난 해에 발표한 소설집도 읽기로 했다. 둘 다 재미만큼은 확실히 보장하는 작가이기 때문.


김경욱 작가의 글쓰기 타입은 굉장히 특이하다. 매번 발표하는 소설마다 굉장히 다른 스타일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자신의 안에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내기보다는 자기가 보거나 들은, 혹은 상상한 타인과 타지의 이야기를 곧잘 써내려간다.


사정이 이러하니, 읽다보면 점점 김경욱이란 작가는 소설가라기보다는 프로페셔널한 기술자 혹은 소설공장장 정도로 형상화되곤 한다. 매번 다른 스타일과 다른 이야기, 정말 대단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여기 실린 9개의 단편 중에서, 내 마음을 강력히 흔들어놓은 작품으로 '승강기'를 꼽을 수 있겠다. 영어로 말하자면 엘레베이터 말이다.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만큼이나 재수 옴 붙은 사내의 고단한 삶을 화가 치미도록 섬세하게 잘 썼다. 읽으며 주인공의 답답함에 혀를 내둘렀고, 공동주택 입주자들의 비협조에 참을 수 없어 오줌이 마려웠으며, 무엇보다 관리소장의 태도가 절로 분노를 일으켰다. 해괴하게도 결말에 이르러서는 허무할 정도로 추락하는 느낌이어서 충격도 컸다.


첫 번째 수록작인 '스프레이'도 재미나다. 우연히 타인의 택배를 가져온 후, 실수 아닌 범죄를 연이어 벌이며 벌어지게 되는 우연의 사고들이 주인공을 옥죄는 긴장감이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아무튼 남의 택배는 손대는 게 아니다.


'개의 맛'은 흡사 박민규 작가의 소설을 읽는 듯 황당한 설정과 재미난 문체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무협 소설같은 묘사와 한국 사회를 풍자하는 듯한 전개가 인상적. 아, '인생은 아름다워'도 비슷한 편.


'아홉번째 아이'와 '염소의 주사위'는 문학적인 성취는 별로 없는 듯 하지만 독자로서는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아무쪼록 소설은 역시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 외 '빅브라더' '소년은 늙지 않는다' '지구공정'은 재미없었다. 뭐, 다 재밌을 순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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