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게 있어,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이란 일종의 인생을 살아가는 지침서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사춘기 시절 읽은 이래로, 이 머나먼 이국땅에서 살아가는 나와 같은 소년에게도 홀든 콜필드의 감수성과 태도는 막대한 영향을 끼쳤으니 말이다. 샐린저는 이 소설을 썼지만 소설은 샐린저의 손을 떠나버렸다. 독자적인 소설만의 세계를 구축했다는 얘기.
대학 시절에는 샐린저의 다른 작품들을 탐독했더랬다. 9가지 이야기, 목수들이여 대들보를 높여라, 그리고 프래니와 주이 말이다. 샐린저는 그리 많은 작품을 쓴 작가가 아니어서 금방 다 읽어버렸는데, 그 다음에는 일대기라던가 전기, 호밀밭의 파수꾼 분석글 등을 읽어댔더랬다.
프래니와 주이가 문학동네를 통해 재출간되었다. 역시나 샐린저답게 표지는 단촐하고 작가소개 또한 없다.
프래니와 주이라는 제목의 이 소설을, 한창 샐린저에 빠져있었던 시절 번역본을 뒤진 끝에 중고서점에서 '영혼의 파수꾼'이라는 제목의 낡아빠진 문고본을 구해 읽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당시 도통 내용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프래니와 주이 두 인물간의 (너무나도) 장황한 대사들로 인해 머리골이 아파올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번 독서 역시 마찬가지다. 이 책은 샐린저의 작품 중 제일 재미가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지루하기 짝이 없다. 흡사 연극무대 위에서 두 배우 간의 어색한 연기를 보는 것처럼 곤욕스럽다. (그러고보니 사실 이 책은 소규모의 연극을 위한 스크립트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시모어 가의 이야기는 샐린저의 다른 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9가지 이야기'라는 단편에서 봤었나...하여간에 그 단편은 꽤 재미나게 봤었는데 말이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이 책은 지루하다. 차라리 하루키 번역이라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조금은 나았을 것이라는 상상에도 확신은 잘 서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