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신경숙 작가의 '우국' 표절 논란이 거세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소설을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자 하는 마음이 드는 요즘인데 이런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니 한국문학에 대한 기대와 아쉬움이 마음 속에 교차한다. 비록 그다지 좋아하는 작가는 아닐지언정, 한국 여류 작가의 일본 소설 표절 논란은 어쨌거나 한국인으로서 부끄럽고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안타깝기 때문이다.
논란이 된 부분은 신경숙의 오래 전 작품의 문단이 일본의 대표적인 찬미주의 작가인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의 문단 일부분을 표절했다는 고발에서 비롯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많은 이들이 질타 섞인 비판을 가했는데, 정작 본인은 제일 먼저 '조지 해리슨도 표절 논란 있었는데 뭐...(요즘 조지의 솔로앨범을 한창 듣고 있기 때문에 든 생각임)'라는 것과 다음으로 '두 작품 모두 시기적으로 상당히 오래된 작품인데 이제야 밝혀지다니...두 작품 모두를 읽어본 독자들이 별로 없나보군. 역시 아무튼 책을 많이 읽어야겠어' 하며 독서에의 의욕을 다지고 있던 나였다.
그런데 표절 논란이 과거에도 몇 번 있었다고 하니, 이거 어째 분위기 돌아가는게 심상치 않다 싶더니만 작가 본인과 도서출판사 창비(창작과 비평의 준말)의 해명글이 가관이었다. 먼저, 신경숙의 해명으로는 자신은 '우국'을 읽어본 일이 었으며 일절 응하지 않겠다...'우국'을 안읽어봤다고...? 아아, 신경숙 작가도 책 별로 안읽나보네. 우리 모두 반성합시다. 책 많이들 읽읍시다...라고 하기엔...너무 유명한 작품이잖아;; 그리고 창비의 발표도 가관이었다. 두 작품은 아무런 연관이 없을 뿐더러, 심지어 신경숙의 글이 더 빼어나다는 뉘앙스의 뻔뻔하고 황당무계한 해명...
차라리, 훔치고 싶을 만큼 매혹적인 문장이어서 작가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라는 자기고백이라던가, 작가를 대신하여 도의적으로나마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며 해당 논란이 붉어진 책은 회수한다라는 쿨한 모습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사족이 길었다.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었다. 고등학생 시절 누구나 읽어보았을 법한 '봄봄'의 저자이자 과거 일제치하 시절 많은 매혹적인 작품을 남겼던 김유정 작가를 기리는 문학상이다. 나는 작가 이름을 딴 문학상 시리즈를 참 좋아라 하는데, 이유는 딱히 잘 모르겠다. 아무튼 두 권을 읽었는데, 하나는 2007-2013년 간 수상작들을 모은 책이고 다른 한 권은 2014년도의 수상작들이다.
2007-2013 수상작 작품집(2012년작은 사정에 의해 누락되었다)은 처음 책으로 일궈낸 것이라 그런지 그간의 대상작품을 모았을 뿐이지만 문학상의 저의라든가 추구하는 방향 같은게 도무지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수상작 간 성격이 판이하다. 게중에는 이게 왜 대상이지 하는 작품도 있고, 한 해 걸러 스타일이 현저히 다른 작품이 대상으로 선정되어 문학상의 권위라던가 혹은 신념 같은게 보이질 않았더랬다.
제1회 수상작인 윤대녕 작가의 「제비를 기르다」는 첫 수상작품답게 선정과정에서의 고심을 엿볼 수 있었지만, 제2회 수상작인 김중혁 작가의 「엇박자 D」는 에피소드가 자잘하고 지나치게 편협하다는 점에서 대상감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 외에도 대상작 간의 수준이 들쭉날쭉하여 문학상이 출범한 지 얼마 되지않아 아직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어수선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수상작 작품집과 함께 작년 봄에 동시에 출간되었던 2014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의 경우 상당히 정돈된 선정이라는 인상을 받을 정도로 선정작의 품질과 수준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수상작인 이장욱 작가의 「우리 모두의 정귀보」는 그간 이 작가가 선보인 솜씨좋은 블랙코미디의 정수를 담은 수작이라는 생각에 납득이 가는 선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으로 나오는 김성중 작가의 「늙은 알베르토의 증오」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오를라'라는 두 고전의 형식을 요령있게 믹스매치함으로써 결말에 이르기까지 손에 땀을 쥘 수밖에 없는 스릴과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앞서 언급한 두 고전의 영향이 너무 강한 덕분인지 대상으로 수상하기엔 다소 무리가 따를 수 밖에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읽는 내내 재밌어서 참 좋아라 했다.
김숨 작가의 「초야」는 과거 작가의 다른 작품인 「막차」의 다음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극 중 설정이라던가 분위기가 그것을 연상케 했다.
김이설 작가의 「복기」는 어느날 갑자기 와이프의 '상실'로 인해 일상이 파괴되어버린 한 사내의 어리둥절함과 아연실색함, 그리고 다시 지리멸렬한 일상에 백기를 들게 되는 과정이 섬뜩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기호 작가의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오빠 강민호」는 가톨릭 신자가 어느날 이후 이슬람으로 회계한다는 설정이 재미났지만, 후반부의 결말 부분이 다소 친절하지 못해 김이 빠진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앞서 언급한 김성중 작가의 작품과 더불어, 이번 수상작 중 가장 충격을 받았던 이승우 작가의 「복숭아 향기」는 이걸 대상으로 선정해도 이의가 없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정도로 정교하고 완성도높은 단편이다. 훗날 나중에라도 베스트극장 같은 단막극에서 보면 좋을 법한 이미지의 시각화도 가능하다는 생각. 복숭아 향기가 코 끝에 저리는 것 같다. 내가 신경숙 작가라면 이 작품을 훔치고 싶다.
타 문학상 수상작품집에도 수록되었으나 이번에 한번 더 읽어보아도 역시나 별로였던 전성태 작가의 「성묘」를 뒤로 하고, 타 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읽었던 마지막 수록작품인 편혜영 작가의 「식물 애호」는 이번에 읽어도 또다시 충격이다. 너무 잘써서 충격이라는 얘긴데,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작가가 있다니 두려움을 넘어 좌절감마저 드는 멋진 작품이다.
아무튼, 기회가 된다면 수상작과 더불어 「늙은 알베르토의 증오」, 「복숭아 향기」, 식물 애호」 정도는 몇번 더 읽어도 재미날 만큼 빼어나다. 절반 이상이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면 2014년도의 수상작은 매우 훌륭했다는 생각. 이상으로 2014년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은 소감을 마무리한다. 책에는 선정작 별로 선정이유나 평가에 대한 글이 전혀 없어 내가 이렇게 정리해보았다.
2015년도의 수상작은 김영하 작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아무쪼록 앞으로도 꾸준히 좋은 선정과 출판으로 이어지는 김유정문학상이 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