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감정론 한길그레이트북스 142
애덤 스미스 지음, 김광수 옮김 / 한길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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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아쉽습니다. 어떤 분은 <직역>이라서 문제라고 했는데, 그게 아니라 문장을 잘못 읽은 경우가 많습니다. 번역자의 전공이 철학이 아니라서 그런지 번역 용어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passion을
<감정>이나 <정념>이 아니라 <열정>으로 번역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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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님의 "하이데거와 함께 철학을!"

"관심의 대상이 될 만하다", "매혹적"이다, "하이데거에 대한 상식을 뒤흔들어 놓는다" "차근차근 따라가도 팍팍하거나 멀미나지 않는다" 등등, 느낌들이 이어지지만 이런 느낌을 주게 한 이유, 즉 느낌을 뒷받침하는 알맹이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어 심히 유감입니다. 더구나 이런 식의 느낌 전달은 독자들에게 훨씬 직접적으로 다가가는 만큼 더 위험하고 심지어 폭력이 될 때도 있지요. 가령, 부르디외의 <나는 철학자다>(이 책의 제목 번역에 대해서는 저 역시 심히 유감이며, 이는 원저자에 대한 커다란 모욕이라고까지 생각합니다)에 대한 인상비평은 이런 제 생각을 뒷받침해주는군요. 이 "번역서는 읽기에 좀 팍팍하다"! 다행히 제가 이 책만은 불어판과 번역서를 다 읽어보았기 때문에, 과연 불어판을 조금이라도 보시고 하시는 말씀인지 정당하게 여쭐 수 있을 것 같군요. 일단 번역서만 보자면, 제가 보기엔 가독성이 상당히 높았고 더구나 지금까지 나온 부르디외 번역 중 가장 자연스러운 번역이었습니다. 물론 그래도 여전히 '팍팍하다'라고 '느낄' 수 있겠죠. 그러나 이걸 불어판과 대조해 보십시오. 첫 페이지부터 엄청난 만연체의 글이 시작되며, 이건 그냥 '팍팍한' 정도가 아닙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부르디외의 이 글을 높이 평가하죠. '정신에 대하여'를 쓴 데리다와 더불어 최고의 하이데거론이라고. 그러므로 로쟈님이 말씀하신 '팍팍함'의 정체가 더욱 궁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 생각에 '팍팍함'은 어떤 책을 평가하는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만일 이게 단지 번역에 해당되는 평가라면, 이 평가는 전혀 정당하지 않습니다. 확신컨데, 이 번역은 오히려 '유려합니다'! 다른 사례. "하이데거 번역은 질이 높다.헤겔과 비교해보라". 이건 국내 헤겔 번역이 정말 형편 없다는 느낌을 줍니다. 물론 저도 국내 헤겔 번역에 대해 만족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역시 두 철학자의 스타일을 모르고 하는 소리죠. 헤겔은 독일 사람들도 읽기 힘들어하는 지극히 사변적인 글입니다. 반면 하이데거는 생생한 단어 선택과 미문으로 유명하죠. 저는 오히려 국내 하이데거 번역을 읽으면서 하이데거의 이런 문장으로 이 정도밖에 번역하지 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이건 또한 우연이 아닙니다. 한글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빚어낸 괴상한 단어 선택(가령, 형이상학의 근본 문제에서 '청중'을 '들음이'라 옮긴다든지)이나, 이처럼 한글 사랑이 마치 단어 사랑인 듯 현재 사용되지도 않는 이상한 낱말을 사용하면서 정작 문장들은 비문 투성이인 그런 하이데거 번역들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 경우 이 이상한 번역은 오히려 번역자의 결연한 '의지'에서 비롯된 셈이죠. 저는 이런 문제들이 번역의 문제에서 토론되어야 할 문제이지, 그저 번역이 '좋다', '나쁘다'라고 말하고 말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오역의 경우 이는 당연히 공개적으로 비판되고 수정되어야 하겠죠. 그러나 로쟈님의 비평은 그와 같은 물질성을 전혀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적어도 위의 글에서는. 사실 제가 로쟈님의 글을 거의 읽어보진 못했지만, 주변에서 이름만은 자주 듣게 됩니다. 그만큼 로쟈님도 비평권력을 가지고 계신 거죠. 그렇다면 양질의 비평으로 그 권력을 선용해주시기 바랍니다. 구구절절 근거를 모두 대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느낌들에 적어도 짧으나마 알맹이 있는 이유를 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한번더 찾아보고 신중하게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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