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알리며 시작된다. 동시에, 그의 주변 인물들이 그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조명한다. 그의 죽음에 슬퍼하기 보다는 그의 공석으로 인해 생길 인사이동과 각자의 이익에 몰두하는 모습이 주를 이룬다.
🔖 집무실에 모인 이 신사들이 이반 일리치의 사망 소식을 듣자마자 모두 제일 먼저 떠올린 생각은 이 죽음이 판사들 당사자나 지인들의 인사이동이나 승진에 어떤 의미를 지일까였다.(p.8)
이어서 소설은 이반 일리치가 생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여준다. 나에게 그는 법조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더 나은 수입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평범한 한 인간으로 읽혔다. 그는 일과 후 동료들과 카드놀이를 즐겼는데, 그곳에서 나누는 대화 역시 주로 인사이동에 관한 것이었다. 혹여 이 사회에서 도태될까 하는 불안 때문에 그 자리에 그토록 집착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족과의 정서적 교류보다는 사회적 안위를 돌보는 데 평생을 바친 그의 모습은 불쌍한 어느 중년의 초상처럼 그려진다. 자신에게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품위 있는 삶을 만들어가고 있지만, 정작 그것이 자신의 숨통을 옥죄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습에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주변에는 어느 누구 하나 그에게 진심 어린 정서적 돌봄의 손길을 건네는 사람이 없다.
하인 게라심은 업무로서 그를 돌보고 있지만, 비판단적인 태도로 이반 일리치를 대하였고, 그에게 위안을 준 유일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반 일리치는 그런 게라심에게조차 끝내 자신의 속마음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다.
🔖 엉엉 울고 싶고,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 울어 주고 어루만져 주길 바랐던 이반 일리치는 법원 동료인 셰베크가 찾아오자 울음을 떠뜨리고 다독임을 받기는커녕 곧장 진지하고 엄격하고 고뇌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었다.(p.74)
🔖 그는 게라심이 옆방으로 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더이상 자제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에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p.87)
이반 일리치는 병마와 사투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지독하게 고독한 죽음을 맞이했다. 결국 그가 생전 내렸던 수많은 선택이 이러한 고독한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이 새삼 무섭게 다가온다. 나는 지금 나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타인과의 연결을 놓친 채 오로지 ˝나˝의 안위만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오늘을 깊이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