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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안재성 지음 / 창비 / 2018년 3월
평점 :
책을 읽는내내 조정래님의 '태백산맥'과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가 생각났다.
전쟁세대를 살았던 사람들, 이미 몇십년이 지나 이미 그 세대의 사람들은 이제 생의 끝자락으로 달려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나라 곳곳에 상처로 남아있다.
잊을만하면 불쑥불쑥 튀어올라 자신들의 상흔을 꺼내보인다.
처음 내가 전쟁(6.25)에 대해 진지하게 의식하게 된 것은 - 사실 나는 반공세대에다가 아버지께서 직업군인이었던 관계로 엄청나게 많은 세뇌교육 겸 반공교육을 받은 세대이다. 초딩때는 정말이지 북한 사람들은 모두 거지며, 공산당은 뿔달린 악마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반공영화와 전쟁영화 속에 그려진 북한의 모습은 같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마음은 악귀 그 자체로 그려졌으니까- 조정래 님의 '태백산맥'을 고1때 읽게 되면서부터였다.
역사교과서(나때는 국정교과서였다. 게다가 수많은 역사들이 지워진 역사교과서)에서 알려주지 않았던 부분들을 알게 되면서 처음으로 대한제국시대와 일제시대, 그리고 해방, 분단시대까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질문으로 시작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어떤 선택을 했을까?
일제시대때 독립운동을 했을까? 아니면 그저 시대에 순응해 일본국민이 되었을까?
개인적으로 이 시대에 가장 위대한 드라마 중 하나로 꼽는 '여명의 눈동자'(사실 원작소설보다 송지나씨가 각색한 '여명의 눈동자'가 더욱 가치가 높다고 생각한다. 김성종씨의 '여명의 눈동자'는 반공시대인 70년대에 나왔기 때문에 제약이 많았다.)에서 인민군 최대치는 국군 장하림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가 버마정글에서 죽을 위기에 놓여있을때 나를 구해준 사람이 중공군이 아니라 너처럼 연합군이었으면 지금 니 자리에 내가 있었을지도 모르지."
역사란 결국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 조차도 선태이라고 한다면 할 수 없지만 말이다.
이 책 '아마도 기억하지 않았다'의 주인공 정찬우 또한 마찬가지이다. 전남이 고향인 그는 공부를 하러 만주로 갔고 해방 이후 북쪽에서 자리를 잡은 그는 어느날 영남지방 교육위원장으로 임명을 받고서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왜 죽여야하는지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는 전쟁 속에서 그는 결국 포로로 붙잡히고, 10년형을 받고는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간다.
정찬우가 합동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에 서자 법무관이 소감을 묻자 그는 약소민족의 비애를 느꼈다고 말한다.
"우리 민족이 강대하였더라면 일본의 식민지 노예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남북으로 양단되는 서러움도 없었을 것입니다. 국토가 두 동강이로 나누어진 이 약소민족의 처지가 저로 하여금 법정에 서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p 215
누구 한 사람의 실수로 혹은 권력자들의 욕심으로 인해 역사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수많은 사람들의 피로 쓰여지고 언제나 힘없는 민초들만이 희생된다. 하지만 민초들이 없었더라면 어떠한 역사도 다시 일어날 수 없음도 사실이다.
그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또한 과거의 수많은 민초들의 희생을 딛고 살아가는 것이리라. 그렇기에 우리는 큰 빚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한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역사가 아니라 모두가 기억하는 역사로.
그래서 더이상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역사로 만들어야만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