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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탐정 ㅣ 버티고 시리즈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윤철희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12월
평점 :
엘비스 콜 시리즈의 책은 유쾌, 상쾌하다가 끝부분은 씁쓸함을 동반한다. 아마도 그건 결국 인간은 '외로움'의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서부터 깨닫게 되는 그 무엇이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주인공들은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내 개취(개인취향)는 알기 쉽다는 생각이 든다. ^^
이 책 마지막 탐정은 콜의 여자친구 루시가 출장을 가면서 루시의 아들 벤과 사이좋게? 지내다 벤이 유괴를 당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었다.
콜은 젊은 시절 베트남에 참전한 육군이었는데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혹은 집단에 의해 벤이 유괴되었다. 벤을 무사히 다시 집으로 데려오려는 콜의 고군분투가 눈물겹다.
그러다보니 필연적으로 콜의 과거사가 나온다. -아마도 모든 전쟁은 엄청난 후유증을 낳는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하던 중학교 과학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분은 수업 중간에 아이들의 졸음을 쫓기위해서 자신의 베트남 참전 이야기를 해주셨다. 하지만 주로 베트남 모기는 엄청나게 독하다는 둥, 전갈도 무섭다는 둥,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셨지 정작 전쟁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다. 전쟁의 참혹함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그 선생님은 그런 이야기만 하시지 않았을까, 라는 짐작을 한다. 물론 혹자는 자신의 주위에 있는 누군가는 마치 영웅담처럼 전쟁경험을 떠벌리는 이를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로 전쟁을 경험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 참혹함을 입밖에 내놓지 않는다. (실제로 군복을 입고 시위?에 참여하는 과격한 분들 또한 정작 참전용사가 아니라는 사실. 게다가 진정한 군인의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국민을 적으로 돌리지 아니하고 무력으로부터 국민과 나라를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 개인이 아니라.)
책을 읽는내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전쟁들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금 내 곁에서 폭탄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어쩌면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으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을 모른 척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방관자가 가장 나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몽키스 레인코트로 알게 된 엘비스 콜과 조 파이크는 빛과 그림자, 아니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극처럼 다른 듯하지만 뗄레야 뗄 수 없는 소울메이트가 아닐까 한다. 서로에 대해 무한신뢰감을 가진다는 것은 그 어떤 보물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아닐까.
"파이크는 기다리는 일에 능숙했다. 그가 해병대에서, 그리고 다른 일에서도 탁월했던 이유가 그거였다. 그는 꿈쩍도 않고 며칠을 대기할 수 있었고, 그러면서도 전혀 따분해하지 않았다. 시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은 우리 인생의 순간들을 채운다. 그러니 우리의 순간들이 비어있을 경우, 시간은 아무 의미도 없다. 공허함은 흘러가는 것도 지나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존재하는 거였다. 그의 내면이 공허해지도록 놔두는 것은 두뇌의 작동을 정지시키는 거랑 비슷했다. 파이크는 그냥 존재하기만 했다."
-p169
파이크의 삶을 잠깐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기다리는 일에 능숙한 그냥 존재하는 사람.
어쩌면 쉬운 일일지 모르지만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기다림도 힘들지만 우린 때로는 존재마저도 부정당할때도 있기에)
이 책은 개인적으로 읽은 로버트 크레이스의 소설 중에 가장 좋았다.(몽키스 레인코트, LA레퀴엠, 워치맨, 마지막 탐정)
이유는 엘비스 콜의 과거의 현재, 미래를 껴안을 수 있었던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과거를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현재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는 과거의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엘비스 콜이 고양이에게 말하는 대목에서 혹,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이것이 아니었을까, 했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이 책이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놈의 등을 쓰다듬었다.
"벤을 잃어서 유감이야. 다시는 벤을 잃지 않을거야."
고양이가 내 팔에 박치기를 했다. 그러더니 거울 같은 까만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놈이 나를 보며 기분좋게 가르릉거렸다.
용서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p 206~207
자신에게 정직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용서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힘든 일일 것이며, 살아가는 내내 인간의 '화두'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