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스토리콜렉터 59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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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페이지 넘기지도 않았는데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번 년도에 읽었던 혼다 데쓰야의 '짐승의 성'이 생각났을 정도였다. (많은 독자들이 짐승의 성의 묘사가 너무 직접적이고 잔혹해서 노약자나 임산부에게 권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을 정도)
그러나 이 책은 개인적으로 그 '짐승의 성'을 읽는 것보다 더한 공포심을 나에게 주었다.
밤늦게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이.

오늘 개구리를 잡았다

로 시작되는 범인의 쪽지는 피해자에게 그 어떤 인간의 존엄성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살해된 사람들의 묘사를 보면서 나는 우리나라 영화 '악마를 보았다'가 생각났다. 그 어떤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 '왜 그랬어?'가 허용되지 않는 사람들.

이 책에서 경찰은 범인을 사이코패스로 보기보다는 '정신이상자'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 또한 '왜 그랬어?'가 허용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사이코패스는 잡히면 사형을 당하던 무기징역을 살던 그 어떤 형벌을 받게 되지만 '정신이상자'로 판명될 경우는 감옥에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생활하거나 더 나아가 몇년 살지도 않고 다시 사회로 나오는 것이다.
일본 형법 39조는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에 이영학-어금니아빠-사건이 그렇고, 강남여성살인사건이 그러하다. )

고테가와는 형법 39조의 재검토보다 심신 상실이라는 정의를 엄격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심신 상실 혹은 심신 쇠약이라면서 그런 인간들이 손대는 상대는 언제나 여자와 아이뿐이다. 실수라도 폭력단 사무실이나 씨름 선수 방에 난입하지 않는 것은 충분히 판단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소년법처럼 이 법 또한 우리에게 커다란 숙제같다.(사실 나영이 사건처럼 술에 만취해서 심신 상실로 몇년 살지도 않고 곧 출소하는 그 짐승같은 인간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과연 그들과 공존할 수 있을까?

모든 정신이상자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예전의 통계를 보면 오히려 정신적으로 멀쩡한 이성적인 인간이 더욱 통제불능이고 잔인한 살인을 하며 계획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이해범주를 넘어서면 그들이 우리와 같은 범주의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다른 세계의 사람들로 규정내릴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들을 '정신이상자'로 분류하며 통제하고 외면하고 울타리를 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예전 초창기 정신병원에서는 여성이 히스테리를 일으켰다는 이유만으로 남편이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의사는 여성의 전두엽을 도려내 인간이 아닌 그저 동물로 만들었던 것처럼)

이 모든 것을 다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하더라도 만약 나의 소중한 사람이 정신이상자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물음은 너무 무겁고 두렵다.
누군가의 생명이 처참히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해자가 아무런 죄값을 받지 못한다면 그 법은 누구를 위한 법인가, 누구를 위한 인권인가, 피해자의 인권은 어디로 갔는가 라는 질문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잔인한 살해보다도 우리에게 던진 질문이 더욱 잔인하고 무겁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나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데이비드 게일'이 생각났다. (주인공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했다. 더이상은 스포가 될 듯해서 삼가한다.)

혹, 그 사람은 그것을 노렸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한 줄은 충분히 그런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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