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렸을적 읽었던 그 수많은 동화책에서 여자주인공들은 모두 젊고 아름다웠다. 게다가 착하고 현명하기까지.

그래서 어느날 전래동화중에 '박씨부인전'을 읽게 되었을때 나는 놀라움에 빠졌다.

착하고 현명하지만 얼굴이 너무 못생겨서 남편에게 어떠한 대우도 못

받는 박씨부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과거급제를 돕고 나라의 어려움을 돕는 박씨부인.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나는 박씨부인이 자신을 박대하는 남편에게 복수하거나 모든 것을 잊고 산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아버지처럼 도인의 길을 걷거나 아니면 개과천선한 남편이 부인을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되기를 바랬다. 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원래 박씨부인은 아름다운 여인이었고 저주를 받아 못생겨진 것이었다. 결국 저주가 풀리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온 박씨부인은 남편을 용서하고 잘 살았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우리는 어려서부터 '못생김'은 업신여겨야하는 것으로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전염병도 아니고 장애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못생김'을 병인양 장애인양 취급해버린 것이다.

서양의 동화 '미녀와 야수'도 마찬가지였다. 뭐 그래도 미녀가 야수인 상태에서 사랑에 빠졌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야수로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야수도 미남으로 변했으니. 뭐 그렇고 그렇지 아니한가. 게다가 전 세계를 통틀어 보아도 '미녀와 야수'는 있어도(개구리 왕자라던지) '추녀와 미남'은 없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

그래서 나에게 이 책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두번은 읽지 못할 책이 되어버렸다.

동화가 아니라 너무나 현실이어서. 한글자 한글자 그녀와 그가 낡은 노트에 꾹꾹 눌러쓴 편지같아서, 다시 읽기가 겁나는, 슬픔과 서글픔이 목까지 차올라 울 것 같아서이다.


그가 그녀를 사랑함에 있어서, 그녀가 그를 사랑함에 있어서 그 어떤 이유도 없을 테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 이유를 기어코 알아내고 싶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요한의 말처럼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인간이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7형제나 되는 우리집에 막둥이가 있다. 나랑 거의 스무살이 넘는 나이차이다보니(부모님이 금술이 좋다고 해두자 ^^;; 이 시대에 7형제나 된다는 것이 대단한 일이기도 하고)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할때 막내는 초등학생이었다. 한번은 막내가 분에 못이겨서 친구를 때리고 집에 돌아온 일이 있었다. 그날 학교에 막내를 데리러 아버지가 가셨더랬다. 아버지는 환갑이 넘었고 아이들이 보기엔 할아버지였다. 같은 반 아이의 "야, 너네 할아버지야?"라는 말에 막내는 주먹이 나간 것이다. 막내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아버지가 친구에게 모욕당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저 단순히 막내의 친구는 보이는대로 말했을 뿐일텐데. 언제나 상처는 본인의 몫인 것이다. 시간이 지나 이제 막내는 대학생이 되었고 여전히 더욱 할아버지가 되어버린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다.



 


그녀가 놀이동산에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부끄럽지 않았나요?' 물었을때.

나는 그녀를 힘껏 안아주고 싶었다. 아니 안아주진 못했어도 그저 가많이 옆에 앉아있어 주고 싶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신도 믿지 않고, 종교도 없지만 그녀가 행복하기를. 적어도 그날만은 행복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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