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트] 여우가 잠든 숲 세트 - 전2권 ㅣ 스토리콜렉터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박종대 옮김 / 북로드 / 2017년 4월
평점 :
[무관심해지거나 무감각해지지 않으면서 사건과 내적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배워야 되지. 나는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노력해. 그렇다고 세상의 악과 맞서 싸우는 것을 내 사명으로 생각하지는 않아. 무척 환멸스럽고 끔찍할 때가 많지만, 그래도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 건 희생자들에게 죽음에 다다른 상황을 밝혀줌으로써 조금이라도 인간의 존엄을 되돌려줄 수 있기 때문이야. 물론 그게 다는 아냐. 또 다른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유가족들에겐 범인의 유죄 판결이 큰 위안이 돼. 그 때문에 난 강력반에서 일해.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은 없어.] -여우가 잠든 숲1 144페이지 중에서
한 5년전쯤으로 기억하는데 우연히 서점에 갔다가 바로 눈에 띄어 집어든 책이 '백설공주의 죽음을 위하여'였다. 독특한 이야기와 표지에 이끌렸던 것 같다. 여튼 사자마자 읽기 시작하여 그날 하루에 다 읽을 정도로 재미있었고 다들 그렇게 느꼈던지 책은 금방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 이후로 종종 넬레 노이하우스의 책들을 접했지만 '너무 친한 친구들' 이후로 사놓기만 하고는 책장에 처박아놓게 되었다. (지금은 너무 후회된다. 바로바로 읽을걸...ㅜㅜ)
이번 책 '여우가 잠든 숲'은 넬레 노이하우스가 시한부를 이겨내고 집필한 책이어서 그런지 개인적으로는 완성도가 가장 높지 않나 싶다. 게다가 오랜 파트너 피아와 보덴슈타인의 마지막 사건일지도 모르겠다.(보덴슈타인은 1년간 안식년을 신청한 상태이다) 그러다보니 읽는 내내 내가 애정하는 작가 중 한분인 헤닝 망켈의 발란더 시리즈의 마지막 책 '불안한 남자'가 생각났다.
여튼 이 '여우가 잠든 숲'은 매력적인 반장 보덴슈타인의 오래된 상처-가장 친한 친구와 가장 아끼는 애완여우가 함께 실종된 사건-를 파헤치고 정리하고 치유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의 침묵에 대한 이야기이다.
성인이 되고 나서 어렸을 적 살았던 동네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께서 직업군인이었다. 초등학교 내내 이사를 밥먹듯이 했고, 아버지는 최전방에 근무했던 탓으로 휴전선 근처에서 학교를 다녔고, 수업중 근처 강가에서 대포를 쏘고 훈련할때면 학교 창문이 파르르 떨렸던 적도 많았고, 밤에는 제트기 소리와 하교길에 마을에 하나 있는 다리위를 지나는 탱크와 군인무리들을 일주일에 몇번씩 보곤 했다. 1980년대 이야기이다. 어른이 되어서 나중에 아버지께 들었던 바로는 그 동네에 삼천교육대가 있었다는 경악할 만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유독 초등학교때 나는 죽음과 가까이 있었다. 2반씩 구성되어 있는 학교는 한반에 60명이나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학이 끝나면 한명씩 사라졌다. 여름에는 수영하다가 죽고, 겨울에는 썰매나 스케이트 타다가 얼음에 빠져 죽고. 게다가 그 곳은 지뢰나 불발탄이 많았다. 매년 몇번씩 그런 것을 조심하라고 교육을 받지만 아이들은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놀다가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 한번은 6학년때 한 여학생이 도시에서 이곳 시골로 전학을 왔다. 그 여학생의 아버지는 장교였는데 수류탄 훈련 도중에 사고(그때 들은 이야기로는 사병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희생한 것으로 알고 있다)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항상 얼굴이 어두웠다. 처음엔 아이들이 도시에서 온 아이를 신기하게 대했지만 별말도 없고 대꾸도 없던 아이를 나중엔 홀로 내버려두었다. 결국 아이는 다시 도시로 돌아갔다. 온 식구가 적응을 못했던 것인지, 아니면 마을사람들 텃세였던지 그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시골에서는 군인가족들과 마을토박이 가족들이 서로 경계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어렸을 적엔 그런 것을 잘 느끼지 못했지만 말이다. 나중에 커서 다른 아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군인가족들을 이방인 취급하거나-사실 군인가족들은 군에서 마련해준 관사나 아파트에서 살고(얼마나 큰 특권인가, 집세도 없고) 월급도 좋고 학교에 들어가는 혜택도 많다(학교에 내는 돈이 거의 없다(육성회비정도는 낸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우리때는 생각해보면 엄청난 특권계급이었다. 스승의 날에는 아버지가 부대PX에서 사온 양주-면세품이기 때문에 가격이 쌌다-를 선생님들에게 선물로 돌렸고(그때는 스승의 날에 선물을 받았던 시대였다), 엄마도 아버지의 지위 때문에 치마바람을 많이 휘둘렀던 것 같다. 나는 어땠던가. 생각해보면 집에 넘쳐나던 건빵등(겨울에는 위문품이라는 선물세트가 많았다. 그 속에는 값비싼 과자들도 많았다)을 학교에 가져가 아이들에게 선심?쓰듯 나누어주었다. 아,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쪽팔린 과거인가. 대부분 군인가족들이 그랬다. 그래서 아마도 마을 사람들은 군인가족들이 못마땅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군부대가 많았던 곳이기 때문에-거짓말하지 않고 1킬로미터마다 군부대가 있을 정도였다- 아가씨집, 다방, 여관 등 그들을 대상으로 한 가게들은 그들을 욕하면서도 그들로 인해 돈을 벌었다.)
여튼 사족이 길었는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린 시절의 시선과 현재의 시선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다.
어릴 적 그 동네를 보았을때 얼마나 작게 느껴지던지 몇번씩 눈을 크게 뜨고 보았을 정도였다. 또한 아이들이 북적거렸던 학교는 스산하기까지 했고, 그 커다랗던 강가는 물도 거의 없을 정도로 말라 있었다.
아주 작은 동네였지만 아이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비밀스럽고(어른들은 자신들만이 아는 언어로 이야기했고 아이들에게 쉬쉬했던 것이 많았을 것이다) 커다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니 비밀들은 보잘 것 없고 아이들의 거짓말들은 눈가리고 아웅이었다.
어렸을 적엔 친구들끼리 '이건 비밀이야'라면서 수없이 주고받았던 이야기들. 하지만 생가해보면 누구나 그런 이야기들을 '비밀'이라고 했고, 절대 누구에게 이야기하지 말아라, 했다. 하지만 다음날 일어나보면 사실 모두가 다 아는 사실들이었다. 과연 누가 이야기했을까? 항상 그런 것이 궁금했었다. 마치 처음 고무줄 놀이를 할때 도대체 누가 이 놀이를 맨처음 시작했을까, 하는 궁금점처럼.
캠핑카에서 불타버린 남자, 요양원에서 내일내일하는 할머니의 죽음, 신부님의 죽음...
그리고 그 사건들 속에 드리워진 42년 전 숲속에서 실종된 아이와 여우.
이 모든 것에 결국 자신의 옛 친구들이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보덴슈타인. 그리고 침묵하는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
그들은 무엇을 감추려고 하는 것일까. 혹은 누구를 보호하려는 것일까.
서서히 마을 사람들의 비밀이 드러나면서 사람들의 민낯이 드러난다.(본성을 숨기기는 쉬워도 고치기는 어렵다)
(실종된 아이와 여우에게 일어난 일들을 아는 순간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그 장면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어렸을 적 큰형과 너무나 친했던 개-세퍼트 종류였던 것 같다-가 쥐약-그때는 쥐가 넘쳐나던 때여서 곳곳에 쥐약을 놓았다-을 잘못먹고 죽었을때 큰형이 서럽게 울던 장면이 생각났다. 그 이후로 큰 형은 몇십년 동안 한번도 개를 키우지 않았다.)
아직 넬레 노이하우스 책을 모두 읽은 건 아니지만 누군가가 넬레 노이하우스의 책을 추천하라고 한다면 단연 난 이 책 '여우가 잠든 숲'을 추천하겠다.
이 책은 나에게 내 어린시절에 혹 잘못한 일들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죽는다고.
어쩌면 나의 작은 한마디 말이, 작은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일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용서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비밀보다 더 무서운 건 결국 침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