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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에 대하여
아리요시 사와코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2월
평점 :
장님 코끼리 만지기.
어렸을적 읽었던 유명한 우화 중 하나이다.
아리요시 사와코의 '악녀에 대하여'는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만져보고 이야기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이제는 장님이 아니라 시각장애인이라고 칭해야하지만, 예전에 읽었던 그 느낌때문에 이렇게 썼다.)
눈이 안보이는 사람들이 거대한 코끼리를 각 부위별로 만져보고는 코끼리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과연 코끼리라는 것을 모르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었을때 우리는 코끼리라고 단박에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많은 이야기들을 들어도 코끼리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이러한 선입견과 주관으로 인해 우리는 누군가를 선인 혹은 악인으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자수성가한 아름다운 여성 도미노코지 기미코가 도쿄 자신의 빌딩 7층에서 추락해 죽었다.
살행당한 것인지, 자살한 것인지.
이 책에서는 사건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사망한 여성 '도미노코지 기미코'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27명이 말하는 '도미노코지 기미코'에 대한 인터뷰형식이다.
책을 덮었지만 여전히 기미코에 대해서 알 수 없다.
누군가에겐 악녀였고, 누군가에겐 선인이었고, 누군가에겐 악랄한 사업가였고, 누군가에겐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던 것이다.
하나의 에피소드에서도 그녀를 말하는 사람이 다르면 전혀 다른 시각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 또한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녀에 대해서 말한다면 기미코는 악인으로 보기 어렵다.
그저 환상 속에서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며 살고자했던 허영스런 여성이었을 뿐이다. 그래도 대단하지 않는가. 그저 꿈속에서 살고자 했으면 망상증환자라고 치부했겠지만 그녀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동원해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부와 권력을 가졌다. 하지만 그녀가 갖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혈통이 아닐까,한다. 지금이야 신분사회가 없어진지 오래지만(사실 과연 그런가?하고 물으면 솔직히 아니올시다, 라고 말하고 싶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신분사회이다) 일본은 전후에도 여전히 꼴통같은 신분제도가 있었던 듯 싶다(서양식 문물을 받아들여 자작이니 백작이니 공작이니, 어이상실한 이야기지만 누군가에겐 그것이 절실했을런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또한 양반집 자제니, 조상이 조선시대때 한자리 했네, 누구 몇대손이네, 하지 않는가.)
여튼 그녀는 자신의 태생을 부정할 정도로 혈통에 대해서 집착햇던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생각해보았다.
과연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나와 친한 사람들, 가족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왠지 내 생각과는 다르게 전혀 다른 모습들을 하고 있지 않을까,하는 불안감도 생긴다.
하지만 이렇든, 저렇든 결국 그 다른 모습도 모두 '나'가 아닐까?
조각난 거울 속에 '나'는 비뚤어지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 또한 '나'를 비춘 것임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오고 있다.
자연은 변화무쌍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 인간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정체되어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