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랩
멜라니 라베 지음, 서지희 옮김 / 북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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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때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그날따라 길에 아무도 없었고, 차도 지나가지도 않았던 날이었다.

그저 멍하니 집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 모르지만 쌩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내 앞을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곧이어 쿠당탕, 소리와 함께 그 차의 보닛 위에 사람이 쓰러졌다. 차가 사람을 친 것이다. 하지만 차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보닛위에 사람을 실은 채로 앞을 향해 달렸다.

그 광경을 목격한 나로서는 너무 놀라 잠시 얼어붙었다가 다시 사라진 차를 향해 뛰어갔다. 혹시나 보닛 위의 사람이 길에 떨어져 쓰러져 있는것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길에는 개미 한마리 없었고, 길거리는 가로등도 별로 없어서 어두웠다. 처음 목격한 교통사고에 나는 번호판을 볼 생각도 못했다.(지금이라면 무조건 핸드폰으로 찍거나 번호를 먼저 보았을텐데 말이다) 여튼 그래도 나는 공중전화를 찾아서 경찰에 신고를 했다.(그때 당시에는 삐삐도 1년 후에 상용되던 시대였기에 휴대폰이 뭔지도 몰랐다) 그때나 지금이나 경찰들은 민중의 지팡이 역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경찰은 내 이름과 주소는 꼼꼼하게 물었다.(아마도 장난전화일거라 짐작하고서 그런것이겠지만) 심드렁하고 성의없는 경찰태도에 나는 화가나서 단지 당신들이 해주었으면 하는 것은 사고난 주위에 혹, 사람이 쓰러져있으면 구해달라고, 한번 순찰해달라고 전화한 거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며칠, 몇주가 지나도 경찰에게는 전화가 안왔다. 그리고 사고기사도 없었다.(휴대폰도 없는데 인터넷도 없었다. 기껏해야 공중파 방송, 그리고 지방방송이 끝이었다)

아마도 이 이야기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다행히 피해자가 많이 다치지 않아서 가해자가 피해자를 병원으로 데려가 치료를 받게 했다.

혹은 범죄소설이나 영화속에서 보듯이 가해자가 피해자를 어딘가로 숨겼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내가 본 것은 그저 망상일 뿐이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었다. 그저 내 생각일 뿐이다.

과연 내가 그때 목겨한 것은 현실이었을까, 상상이었을까.


이 책 트랩은 여동생의 집에 갔다가 여동생의 죽음과 살인범을 목격한 언니 린다의 이야기이다.

단 한명의 목격자인 린다의 이야기를 믿는 사람은 단 한 명의 형사. 결국 여동생 안나의 죽음은 미결사건이 되어버리고 린다는 그후로 11년 동안 은둔생활을 하다가 자신의 여동생을 살해한 살인범을 tv에서 보면서 그를 잡기 위해 함정을 설치한다는 이야기이다.

독특한 설정으로 인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특히 살인범과 린다의 대면은 그 절정에 이른다.

하지만 이 책의 진가는 그런 스릴감이 아니라 오히려 린다의 감정에 있다.

그녀의 이야기, 그녀의 의심, 그녀의 무너짐, 그녀의 전진... 이런 것들이 이 책의 진가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 어떻게 무너질 수 있고, 어떻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지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린다는 트랩의 하나로 자신의 능력-베스트셀러작가이다-을 발휘해서 처음으로 범죄소설을 쓰는데 그것은 여동생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액자구성으로 짤막짤막하게 보여주는데 그것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소설 속의 소설이 출간되는데 린다의 출판사 사장인 노베르트가 말한다. "자네는 날 속였어. 그건 스릴러가 아니라 스릴러의 탈을 쓴 사랑이야기더군." 이라고 말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오래전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을 읽고서 '아, 이건 추리소설이 아니라 지독한 사랑이야기잖아'라고 생각했던 것이 떠올랐다.

맞는 말이다. 이 책 트랩은 스릴러의 탈을 쓴 사랑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혀 유치하거나 알콩달콩하거나 달콤하거나 쌉쌀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었을때 사랑의 여운을 준다.

혹, 내가 속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런 속임수는 전혀 억울하지 않다.


누군가를 온전히 믿는다는 것은 어쩌면 참으로 어렵고도 기적같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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