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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 ㅣ 수상한 서재 4
하승민 지음 / 황금가지 / 2021년 6월
평점 :
모든 생물이 자기생존본능이 있다고 하지만, 인간만큼 자기생존본능이 강한 생물이 있을까싶다. 그래서인지 인간은 극박한 위험에 처하면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 자신의 본 인격이 아닌 다른 인격(그것 또한 자신의 인격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라고 지칭하고 인식하는)을 만들어 자신을 보호하기도 한다. 물론 모든 인간이 그렇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인간이 인격이 분리될 정도의 충격적인 일을 겪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짐작만 하는 것과 실제 겪는 것은 엄청난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여튼 종종 범죄자들 중에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다중인격을 주장하는 것과 소설과 영화 속에서 나오는 다중인격의 캐릭터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인격을 만들어 그 모든 충격과 피해를 고스란히 받은 다른 인격은 무슨 죄인가? 그래서인지 다른 인격은 유독 반항적이고 제멋대로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다른 인격이야말로 가장 큰 피해자이며 제멋대로인 것은 그 모든 잘못과 피해를 다른 인격에게 떠넘겨버리는 본 인격이 아닐까.
사족은 접어두고라도 다른 인격을 만들어낼 만큼 고통스러운 일을 겪게 된 사람 또한 자신이 생존하기 위한 유일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다. 결국 모두 피해자인 것이다.
하승민 작가의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이 바로 이중인격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렸을 적 온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또한 자신이 온전히 사랑했던 어머니가 바로 눈앞에서 죽임을 당하는 것을 목격한 염지아는 그 후 다른 인격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른다. '혜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염지아의 다른 인격은 소심하고 무기력한 염지아와는 달리 자유분망하고 거침이 없다. 염지아는 위급하고 힘들때 자신의 인격이 사라지고 '혜수'가 등장할 때마다 그녀가 해놓은 모든 난장판을 고스란히 감당해야했고,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혜수'로 인해 항상 불안했다. 게다가 유일한 가족 아버지마저 인격이 바뀌는 염지아의 정신병을 고친다는 명목으로 학대하기 일쑤였다. 그런 힘든 현실 속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던 염지아는 어떤 계기로 인해 실종(염지아라는 인격의 실종)이 되어 정신이 들었을 때 묵진의 조대산에서 한 여성의 시체를 묻고 있었다. 그것도 19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
과연 19년 동안 염지아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묵진에서 '윤혜수'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19년은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그리고 시체는?
혜수는 지아에게 항상 말했다. '복수'라고. 어머니가 죽은 것은 지아 네 탓이라고. 그래서 나는 너에게 복수하는 거라고.
그렇다면 지아 앞에 있는 시체는 혜수가 선사하는 '복수'의 끝일까?
지아는 자신을 19년 동안 기다려준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지만 다시 묵진으로 돌아간다. 자신에게 사라진 19년의 시간을 복원하기 위해.
과연 지아는 자신의 19년을 찾을 수 있을까?
6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페이지임에도 불구하고 술술 읽히는 글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장르소설의 가장 큰 소재인 '복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되지만 사실 책을 읽으면서 과연 이 책을 장르소설로만 분류해야만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이야기의 흐름이나 문체의 모습에서 장르소설로만 묶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공들여 쓴 느낌이 만연한 것은 개인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충분히 문학작품의 큰 범주로 놓아도 될 정도로 결코 가벼운 소설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많이 불편했다. 이유는 너무도 현실적인 캐릭터들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장르소설, 특히 형사물이나 탐정물, 추리물에서는 영웅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아니 영웅은 아니더라도 타인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결백을 위해서 몸바쳐 뛰어드는 캐릭터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1도 없다. 그저 너무도 현실적인 캐릭터들이 난무할 뿐. 자신의 이익과 생존을 위해서라면 약한 존재는 그저 짓밟고, 뭉개고, 가차없이 버리고 마는 욕심의 인간들. 그 모습은 우리네 현실 속 날것 그대로의 인간을 보여주기에 불편한 것을 넘어 절망스러웠다. 우리는 그 무엇에도 기댈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인지.
마지막 페이지를 닫으며 작지 않은 욕심을 내본다.
지아가 살아가기를. 그 어떤 모습으로도.
거울밖 나와 거울 속 나는 결코 손잡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 모습이 '나'인 것은 부정할 수 없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