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칭 관찰자 시점 - 2018년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조경아 지음 / 나무옆의자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디모테오는 알고 있었다. 식복사 사건을 목격했던 나와 학장님이 자신의 사제 서품을 가장 강력하게 반대했다는 것을. 또한, 반대한 이유가 자신이 연쇄살인범 강치수의 아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모테오는 사제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디모테오는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신학교에 남아 온갖 궂은 일을 다 하며 끈질기게 버텨냈다. 디모테오의 그런 집요한 노력은 결국 교구를 움직였고 그토록 바라던 사제 서품을 받을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디모테오의 집요함이 더 끔찍하게 여겨졌다. 한쪽 방향으로 굳어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란 바다로 향하는 물줄기를 산으로 돌리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오히려 잘해보려고 할수록 더 어긋나는 잘못된 퍼즐처럼.]

                                                                -p 37, 유스티노의 시점 중에서


어려움 끝에 디모테오 신부는 사제를 마치고 한 작은 시골마을에 신부로 임명된다. 하지만 잘생긴 외모때문일까,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종교인으로서의 디모테오 신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동경과 시기의 대상으로 그를 나누어 바라본다. 게다가 그는 연쇄살인범 강치수의 아들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포커페이스의 유형이라 오해와 의심을 사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날 디모테오를 짝사랑하는 레오라는 여성신도가 성당 벤치에서 시체로 발견되고 일대 파문이 인다. 사람들은 연쇄살인범 아들 디모테오를 의심하는데 과연 디모테오는 그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렸을 적에 작은 시골동네에서 살았더랬는데 그 동네에서 슈퍼를 하는 나름 부자집에 어여쁜 외동딸이 있었다. 나보다 한 학년 위였는데 시골 아이답지 않게 피부도 하얗고 키도 컸고, 긴 머리에 멜빵치마를 맵시있게 입고 다니고, 피아노도 잘 쳐서 아이들이 무척이나 부러워했고 동경의 대상이었다. 게다가 마을에서 유일하게 집안에 피아노가 있는 집이었으니(칼라텔레비전이 보급된지 얼마 안된 시점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런데 어느날 이상한 소문 하나가 아이들 사이에 돌았다. 그 어여쁜 언니가 입양된 아이라는 이야기였다.

결국 소문은 사실이었고, 졸업하기 전까지 그 언니를 보는 아이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마치 니가 그렇게 잘났어도 넌 입양아지만 자신은 친부모 밑에 있다는 식의 눈빛. (사실 나는 사정상 이리저리 전학을 다녔던 상황이라 그 언니가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중에 그 시골로 다시 전학을 갔을때는 그 집이 이사를 했다고 들었다.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그 시절에는 '고아'에 대한 시선과 '입양아'에 대한 시선은 상당히 안좋았다. 그저 불쌍한 아이를 넘어서는 거부반응이라고 해야할까. 사실 같은 또래 아이들은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부모들에 의해서(저 애랑 놀지 말라는 명령) 편견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게다가 무슨 사건이 일어나면 그 넘의 가정환경은 왜 그렇게 들먹이는지, 마치 사고치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모두 고아거나 부모가 이혼해서 한부모 가정이어서 제대로 가정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못을 박는 언론들도 문제였다.

여튼 이러한 선입견과 잘못된 편견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통 속에 몸부림쳤을지를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바라볼때 우리는 그저 자신과 같은 붉은 피가 흐르는 그저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쉽게 상처받고, 쉽게 무너지는 그런 연약한 존재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조경아의 '3인칭 관찰자 시점'은 악랄한 연쇄살인범 강치수의 아들인 디모테오 신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찰일지로 이루어졌다.

어떤 이에게는 상처받는 존재로, 어떤 이에게는 악랄함을 감춘 가식적인 인물로, 어떤 이에게는 자상한 인물로 비춰지는 디모테오.

과연 우리는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디모테오, 그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까?


맨 처음과 맨 끝의 시점으로 작가는 사이비종교(일명 도를 아십니까?)를 전파하는 도팔의 시점을 영리하게 배치시켜 놓았다.

맨 처음에 도팔은 디모테오 신부에게 종교를 전파하려다 사람보는 눈이 없다고 면박을 당하고, 맨 끝으로는 형사에게 종교를 전파하려다 은팔찌를 차는 지경에 이르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신부의 말대로 자신은 사람보는 눈이 더럽게 없나보다, 라고 말이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그만큼 우리는 누군가를 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살면서 깨닫지 않는가.

유명한 유행가 가사에도 이렇게 나와있지 않은가.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