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랑 - 김충선과 히데요시
이주호 지음 / 틀을깨는생각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내가 처음 김충선이라는 인물을 알게 된 것은 모 방송국 프로그램에서였다. 임진왜란 중에 항왜(일본인으로서 조선에 귀화한-실제 그 시대에 항왜한 일본인이 1만여명이 넘었다고 한다. 과연 그들은 왜 귀화했고,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냈을까?)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었는데 임진왜란 중에 혁혁한 공을 세워 임금(선조)으로부터 김충선이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조선을 지키고, 후에는 후학들을 가르쳤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독특한 이방인이었던 탓일까? 역사적으로는 김충선, 일본이름 사야가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아무리 귀화했다고 하더라도 일본인이 조선인보다 뛰어나고 자신들의 나라를 지켰다는 그런 어마어마한 업적을 치적하고 싶지 않고, 기록해놓기도 싫었을테고 일본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배신하고 적국을 위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니 당연히 그 이전의 기록조차 파기했을 듯 싶다.

이런 김충선, 사야가는 어찌보면 평생 외로운 이방인의 삶을 살지 않았을까?

과연 그는 왜 조선으로 귀화했을까?


이주호 님은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허구를 적절히 섞어 김충선의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김충선은 사실 조선인이었으나 부모의 사정으로 인해 일본 용병의 손에 맡겨져 일본에서 자라났다. 자라난 곳이 일본의 용병부대이다보니 자연스레 히로(여기에서는 김충선이 히로라고 불리운다. 나중에 사야가로 불리우고, 귀화한 후 김충선으로 불리운다.)도 용병부대원으로 길러진다.

격동의 시기(오다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의 시대)에 너무도 뛰어난 능력을 가진 히로는 아무리 조용히 사랑하는 이 아스카와 평범하게 살고자 해도 시대는 그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래서 영웅은 스스로가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만드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역랑'은 김충선의 삶을 항왜 이전의 삶을 중심으로 써내려갔다.

파란만장한 그의 삶은 처음부터 이방인의 삶이었다.

어쩌면 자신이 살아야 할, 살아가야 할 '답'이 필요했기 때문에 운명을 거스르고 맞섰는지 모른다.


연인인 아스카가 히데요시의 볼모로 잡혀있어 히로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히데요시의 조선침략에 가담한다.

수없이 죽어가는 조선의 백성들을 보며 히로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다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계속해서 조선의 백성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히로는 그들의 얼굴과 표정, 분노, 슬픔을 보았다. 조선이 무엇이기에 저렇게 목숨을 헌신짝처럼 버린단 말인가. 임금이 무엇이기에 저토록 충정을 보인단 말인가. 만약에 일본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백성들이 목숨을 버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선조처럼 나라를 버리고 도망간 다이묘가 있다면 백성들에게 잡혀 목이 잘렸을 것이다. 더 이상 다이묘의 권위를 가지지 못할 것이었다.

히로는 문득 깨달았다. 점점 거리를 좁혀 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깨달았다. 힘이 없어 이렇게 침략당하고 있지만 이들은 힘이 없지 않았다. 이들은 누구보다 강한 자들이었다. 누구보다 강한 백성들 위에 누구보다 비겁하고 위선적인 정치가들이 있어 이리도 비참하게 짓밟히고 있는 것뿐이었다.]

                                                         -313~314 페이지 중에서 발췌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다. 그래서 충은 임금을 향해 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향해 하는 것이다.]

라는 이순신 장군의 말씀.


아마도 히로의 마음도 이순신 장군의 마음과 같지 않았을까?

백성인 자신들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자들의 욕망에 진절머리를 내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는 나라를 지키려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짓밟는 왜군에 대항하는 백성들을 보며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을까?

(그들의 입장에서는 전쟁은 군인들이 하는 것이지 무기도 들어보지 못한 평범한 백성들이 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아쉬웠던 점은 히로가 항왜를 결심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 분량이 너무 적은 점이었다. 그리고 차라리 히로가 조선인이라는 설정보다 일본인이라는 설정이 더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인간' 김충선에 대해서 달리 생각해볼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광해, 왕이 된 남자(영화를 너무 재미있게 보았고, 이런 설정도 너무 좋았다)를 쓰신 이주호 님의 '역랑'.

쓰여지지 않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읽는 느낌이었다. 역사의 뒷편을 읽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역사는 권력자에 의해서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찮게 여기는 무지렁이 백성들에 의해서 쓰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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