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 - 상
오타 아이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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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열흘, 열흘만 살아남으면 안전해. 살아남아. 네가 마지막 한 명이야."



 


열아홉 건설노동자 시게토 슈지

개성있는 미용사 아렌

왕따 형사 소마

소마의 오랜 친구 야리미즈

늙은여우 정치인 이소베와 뱀같은 비서 핫토리

의문의 남자 스키마스크

기업중진 나카사코

실종된 전 폐기물 수거 운반업자 마자키 쇼고

 그리고 사사키 구니오라는 남자와 사키코 모자(사키코와 쓰바사)

-쓰바사는 멜트페이스증후군을 앓고 있어 한쪽 얼굴이 없다. 멜트페이스증후군은 원인 불명의 고열이 나다가 안구를 포함한 안면 조직이 차례차례 괴사하는 무서운 병 괴사조직을 절제해야 하기 때문에 얼굴에 심각한 손상이 남는다. 뿐만 아니라 관상동맥 장애라는 장기적인 후유증이 남는다는 사실도 밝혀져다. 환자는 관상동맥에 생긴 거대한 동맥류 때문에 평생 심근경색으로 돌연사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려야 한다.

갓난아이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이 병은 신기하게도 재작년 말부터 작년 초까지 한달 사이에 집중적으로 발생했고, 그 후로는 피해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여러사건들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살균가습기 사건과 일명 햄버거병으로 불린 M패스트푸드의 덜익힌 쇠고기 패티사건. 하긴 세계의 곳곳에서 이러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고,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3월의 어느 따스한 벚꽃이 날리던 날 역 앞 분수대 앞에서 서로를 전혀 모르는 다섯명의 사람들이 각자의 상대방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sf영화 속 다스베이더와 같은 복장을 한 그가 나타나기 전까지 평온한 일상이었을 것이다.

그는 무차별 살상을 하기 시작했다. (사건이나 소설을 읽었을때 생각하는 것이지만 나는 내가 무슨 사건에 휘발렸을때 내가 '왜' 죽어야하는지 알고서 죽고 싶다. 누군지도 모르고 얼굴을 못본채 죽고싶지는 않다. ㅜㅜ)

왜냐고, 묻기도 전에 모두들 순식간에 그의 칼에 스러져갔다.

단 한명을 빼고.

병원으로 옮겨진 피해자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슈지는 의문의 무테안경의 남자로부터 '열흘만 살아남아'라는 말을 듣고는 웃어넘기려 했지만 다시 한번 목숨을 위협받는 일이 생기자 왕따형사 소마와 소마의 친구 야리미즈의 도움을 받아 몸을 숨긴다.


약쟁이(사건이 일어난 그날 바로 범인은 약의 과다복용으로 한 화장실에서 발견되었다. 증거는 모두 그가 범인이라고 말하고 있다)의 묻지마 살인인 줄 알았는데 치밀한 계획으로 분수대 앞 다섯명을 죽이려고 했다면?


왜?


커다란 의문점은 조금씩 한 지점을 향해 가고 있다.


사키코 모자가 방송에 모자이크처리없이 실명을 밝히고 나오면서 이 말도 안되는 모든 것들이 시작되는 나비의 날개짓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거대한 태풍을 만들기 위해 모두들 각자의 역할을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청주에는 반도체 공장들이 꽤 많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들 방진복을 입고 일을 하고 있다.

처음에 그 모습을 보았을때 나는 유해물질로 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반대였다. 인간으로부터 '물건'을 보호하기 위한 방진복이었음을 알고는 나는 충격을 받았다.

거대한 자본주의에서는 '인간'은 '물건'보다 못한 존재라는 사실에.

자본주의의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익(기업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단지 주주와 건물 그 자체인가. 그 기업을 위해 일하고 있는 사원들과 노동자들은 소외되어 있다. 가족같은 기업은 신기루같은 이야기이다. 대주주의 가족들 이야기일뿐이다.)을 위해서라면 몇명, 몇백명, 몇천명이 비명을 지르며 죽어도 꿈쩍하지 않는다.

평범한 인간 위에 군림한 법 따위야 그들에게는 그저 형식적인 테두리일 뿐이다. 그 안전장치로 권력을 가진 정치가들을 자신들의 사람들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긴 이제는 정치가들뿐 아니라 법을 집행하는 자들까지도 좌지우지하는 모양새다.

80년대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몇십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는 것을 보면 분노하다못해 자조스런 웃음마저 지어진다.

'돈'과 '권력'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존재이다.



오타아이의 '범죄자' 티저를 읽으면서 나는 결말을 기대하고 있다. (오랜만에 일본미스테리 작가 중 대형작가가 나타났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 설랜다. 이분의 작품들이 모두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많은 이들이 계란에 바위치기라고 하고, 당신 같은 사람은 길가다가 죽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고, 아무것도 변하는 게 없을 거라고 한다.

물론 몇십년을 그런 환경에서 지내다보면 왜 나만 이래야하나, 왜 내가 송곳이 되어야 하나, 라고 생각할 것이다. 무기력해지고 그저 다른 이들처럼 순응하고 살아가는게 맘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보았다.

계란들이 바위를 무너뜨리는 것을.

하나의 계란은 약하디 약해 그저 자신이 깨질 뿐이지만 수많은 계란들은 결국 바위에 흔적이라도 남기는 것을.


나는 그래서 수많은 불의에 항거하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진실을 향해 가는 모든 이들에 뜨거운 연대의 마음을 보낸다.


슈지가, 야리미즈가, 소마가, 사키코 모자가 살아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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