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하는가? - 밥벌이, 삶, 영성을 말하다
조정민 지음 / 두란노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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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아담아,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찾으신 게 아니라, 그들 스스로 자신을 발견하도록 하시는 부르심이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자기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 이것은 배워서 아는 게 아니다.


나: 이 부분에서 잠깐 놀랐다. 코칭의 기법 중 질문하기는 위대한 방법임을 느끼고 있던 차라 "아담아. 어디 있느냐?"라는 질문은 아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서야 비로서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길은 고귀하지만 참으로 서글픈 길임에 틀림없다. 자신의 부족함을 끝없이 발굴해가는 것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책: 하나님은 쉴 새 없이 일하는 사람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다가 갑자기 그에게 물으신다. "내가 오늘 밤 너를 데려가면, 네 일이 무슨 소용 있니?" 일의 동기를 점검하는 시간을 갖게 하시는 물음이다. 영적인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나: 내가 만약 오늘 밤 떠난다면, 그 동안 열심히 일을 했던 것에 대해 후회와 허무할 것만 같다. 좀더 다르게 잘 사는 방법으로 살아 볼 것을, 나는 왜 일에만 공을 많이 들였던 것일까? 분명 다른 느낌으로 죽을 수도 있었을 건데...지금이라도 좀더 내가 일하는 동기 점검을 먼저 해봐야겠다.


책: 하나님은 우리를 찾는 일에만 관심이 있으실 뿐이다. 일에 빠져 하나님을 잊고 사는 사람들의 마음 문을 늘 두드리신다. "그런데 너는 왜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느냐?" 일하는 인간에게 구원이란 많은 일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오늘의 바쁜 삶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나: 휴일이 끝나는 다음 날이 몰려오는 일더미로 느껴지는 것과 생각만해도 좋은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되는 주말은 나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구원받았는지 스스로를 돌아봐" 일이 여전히 부담스러운 내 모습이 보인다. 주여, 구원의 삶을 살게 하소서.


책: 일의 영성은 일의 우선순위를 가리는 일이다. 다스림을 받아야 할 사람이 다스리는 일에서 먼저 벗어나는 일이야말로 구원의 제 길로 들어서는 첫걸음이다.


나: 게으른 삶이 아니라 참된 일을 부지런히 살고 싶다. 내가 다스리려 했던 일들은 무엇이었나? 어쩌면 군림하기 위하여 애썼던 일들은 아니었을까? 성경을 거역하는 삶이 내게 그 동안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다시 성경을 더 경청해야겠다.


책: 무슨 일이 가장 중요한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천직이라는 마음이 드는 일이다. 그렇지 않은 일은 싫어지는 일이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스스로 깨닫도록 돕는 것이 공부보다 먼저다.


나: 수업시간에 나는 이 부분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배움의 필요성을 깨닫도록 하는 부분을 수업의 과정에 할당해봐야겠다. 12고개 넘어가기로 아이들에게 찾으라고 하는 활동을 넣는 것도 좋겠다. 그런 다음 교사인 나는 왜 이것을 배워주려고 생각했는지에 대한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다. 이것을 정서활동이라고 명명할까? 가치활동은 어떨까? 정서와 지식이 공존하는 수업에 대한 구상을 계속 해나가고 싶다.


책: 유대인의 교육법은 끊임없이 "왜?"를 묻게 한다.


나: 교사도 아이도 "왜?"를 묻는 시간을 필수로 가져야겠다. 시시콜콜해도 좋겠다. 작은 것에서 점점 큰 질문으로 큰 대답으로 자랄 것을 믿는다. 질문없이 끝난 셀 수 없이 많은 지난 시간들이 회초리처럼 나를 치는 것만 같다. 주입식만큼의 회초리. 도대체 무엇을 가르쳤다고 나는 말할 수 있겠는가? 가르침이라기보다는 질문하기가 교사들이 할 일인 것 같다.


책: 예수님은 의식주 해결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의식주를 걱정하는 자들은 믿음이 작다고 말씀하신다. 인생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이 누군지를 알면 누구나 믿게 되어 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을 언제나 '먼저' 하라고 하신다.


나: 하나님을 아는 일에 좀더 심혈을 쏟아야겠다. 삶의 염려가 클 때 이 부분을 기준 삼아 자가치유해야겠다. 나는 지금 인간관계에 대한 일에 염려가 크다. 이것만으로도 하나님을 잘 모르는 '나'임이 분명하다. 삶의 기초는 바로 성경을 공부하는 것인 것 같다. 지금이라도 성경으로 더 들어가는 '일'에 중점을 두고 싶다.


책: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두 가지 후회를 한다. "왜 내가 더 사랑하지 않았나, 왜 내가 다 용서하지 않았나." 이 후회가 말하는 것은 사랑과 용서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남의 허물을 찾지 말고 먼저 자신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속을 깨끗이 하면 겉은 저절로 깨끗해진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우선 순위가 뒤바뀐 것을 바꾸러 오신 것이다. 돈보다 하나님 나라가 중요하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신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보이는 것 말고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을 추구하라 하신다. 바른 영성이 곧 능력이다. 선한 사람을 찾지 말고 누군가의 선한 이웃이 되는 것이 진짜 능력이다.


나: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눌려 지냈다. 그래서 무척 노력하며 살았던 것 같다. 부족한 것이 자꾸 보여서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아무리 채워도 남는 것은 '무능함' 뿐이었다. 세상의 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신기루를 잡는 것과 같았다. 바람을 움켜쥐는 노력일 뿐이었다. 내가 추구하며 살아야 했던 삶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이 먼저 잘 되어 있어야 세상의 일도 해석이 제대로 되었을 터였다. 늦지 않았다면 지금부터 다시 보이지 않는 세계를 중심에 둔 삶을 살려 한다. 고독한 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격한 방해를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럴수록 오히려 제대로 가고 있다는 증표라 생각해야겠다. 좋은 친구를 달라고 기도했던 내가 부끄럽다. 내가 먼저 누군가의 좋은 친구가 될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했다.


책: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님을 믿으라. 성령을 받으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만나라. 그러면 중요한 일을 먼저 하게 된다. 먼저 용서하고, 먼저 사랑하고, 먼저 화해하라. 그래야 후회없이 눈 감을 수 있다. 사람들의 이야기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먼저 들으라. 세상의 지혜보다 하나님의 지혜에 귀 기울이라. 미디어의 차고 넘치는 이야기를 믿기보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먼저 믿으라. 그러면 나중에 출발해도 먼저 도착한다. 어디에? 영원이다.


나: 분명 이런 이야기는 어렸을 때부터 수도 없이 들었을 터다. 그런데 지금에서야 가슴에 와서 제대로 박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다. 지금이라도 두근두근 자극이 되어 참 좋다. 새로 살아가고 싶은 용기가 난다. 주님, 나의 길을 인도하옵소서. 용서, 사랑, 화해, 하나님의 지혜, 예수님의 말씀, 성경을 몸과 맘과 영으로 일 순위에 놓고 몰입하고 추구하며 살고 싶다.    


책: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충분히 따져보고 나서야 한다. 왜냐하면, 영원한 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영원하지 않은 모든 것을 포기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진리의 길을 가는 것이고, 이 길이란 사사로운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이다. 엄청난 대가를 요구한다.  


나: 나는 예수님의 길인지 아닌지 분간하며 살아오지는 못했다. 조그만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면 돌탓만 했던 것 같다. 예수님이라면 이 넘어짐을 보고 무엇이라 말씀하셨을까 라는 것에 대해 조금만 생각하는 여유를 가지고 살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나는 너무나도 사사롭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영원하지 못할 것들을 동아줄인양 붙잡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론 따로 실천 따로인 셈이다. 


책: 진리는 세상적 가치가 아니다. 진리는 초월적 가치다. 인간이 인간의 힘으로 얻을 수 있다면 예수님은 공연히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27세의 나이에 에콰도르 선교사로 파송된 짐 엘리엇은 복음 한 마디 전하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후, 36년이 지난 1992년에 순교 현장에서 신약성경 봉헌 예배가 드려졌고, 선교사들을 죽인 장본인 '카모'가 부족 최초로 목사가 되었다. 학교 다닐 때 그는 일기장에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일은 결코 어리석은 선택이 아니다.'라고 썼다. 그는 정확히 계산한 후 영원을 바라보고 그 곳으로 떠난 것이다. 이런 계산 없이는 결코 따라 가 룻 없는 길이다. 바울은 현세적 가치를 놓고 따지는 크리스천이야말로 그 누구보다 불쌍한 사람이라고 단언한다.


나: 나는 왜 이다지도 믿음이 부족한 것일까. 주님이 버리라고 한 그것을 버리지 못한 계산법으로 살기 때문에 그렇다. 참 부끄럽다.  

 

책: 일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 쉼이다. 쉼이 일을 지탱하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 한적한 곳이 사라졌다는 것은 하나님을 만날 시간과 장소를 잃어버렸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기도로 일과 쉼의 고리를 만드셨다. 기적과 기적 사이에 특별한 기도가, 일과 일 사이에 일상적인 기도가, 일과 쉼 사이에 습관적인 기도가 있다.


나: 나에겐 지금 당장 습관적인 기도가 필요하다. 쉼의 자리를 여전히 일이 차지하고 있다.  


책: 일과 쉼은 균형이 있어야 한다. 쉼의 극대화는 일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줌이다. 한적한 곳에서 기도로 쉼은 완성된다. 온전한 회복은 사람으로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다. 


나: 하던 일을 멈추고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이 쉼인 줄 알았다. 타인에게로 향하는 시간과 하나님 앞에 잠잠히 머무는 시간이 쉼이라는 말에 답이 있는 느낌이다. 나만을 생각하며 하나님을 떠난 쉼을 살았다니 어리석었다. 봉사와 기도로 삶과 쉼의 균형을 잡아야겠다.


책: 사랑하면 일을 피하지 않는다. 물을 마시고 싶다고 중얼거린 다윗의 소리를 듣고 세 부하가 목숨을 걸고 우물의 물을 떠왔다. 다윗은 일을 결정할 때 인간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을 들여다보았다. 이것이 그의 실력의 원천이자 영성의 뿌리이다. 크리스천은 일의 가치보다 사람의 가치를 앞세우는 존재이다. 나를 버려 남을 얻는 사람이다. 달란트를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한다. 죽을만큼 일하라.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해 일하라.


나: 나의 달란트가 무엇이냐고 기도하던 때가 있었다. 달란트란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주를 의식하고 주를 드러내기 위함으로 행해야 할 나의 달란트는 무엇일까. 우선 영혼 구원을 위해 이름을 놓고 기도하는 일과 내가 할 수 있는 큰 일과 작은 일 모두를 통해 주님을 드러내려는 자세로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살아야겠다.


책: 창의력을 중시하는 사회일수록 '사람이 먼저'라는 원칙이 중요하다. 사울왕은 시기심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고, 다윗은 시기심에서 자유로웠기에 흥왕의 길을 걸었다. 시기심이 발동하면 가장 가까운 친구조차 적으로 오인하고 만다. 부지런한 사람이 오히려 시기심의 폐해에 시달리는 일이 훨씬 많다. 리더에게 시기심은 치명적인 독이다. 시기심이 자칫 충성심으로 위장될 수 있다. 영성이란 시기심과 같이 불필요하고 하찮은 감정에서 벗어나는 능력이다. 공감의 능력으로 사람들과 화평을 이루는 차원에서 문제를 보아야 한다.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에게 복수할 권리조차 버렸다. 모든 시기심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일과 영성은 하나다. 일터에서 더 사랑하라.


나: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때, 특히 사람에 대한 속상함이 밀려 올 때 나는 크리스천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을 종종 놓쳤던 것 같다. 상대의 단점을 들춰내고 나의 억울함을 피력하는 쪽에 서며 결국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곤 했다. 그런 처신은 불필요하고 하찮은 방법임을 몰랐다. 그 뿌리가 시기심이었구나. 애써 인정하지 못하던 시기심이 나에게도 있구나. 삶에 영성이 빠져 있구나. 남과 다르게 살지 못했구나. 그 결과 난 몰락하는 결과가 많았겠구나. 영성을 놓치지 않아야겠다.


책: 영성의 삶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의식하는 것이다. 참 예배는 몸과 마음이 하나 되는 순전한 경험이다. 몰입이라야 예배다. 24시간 하나님께 몰입하는 태도가 바른 영성이다. 요셉은 억울한 일 앞에서 침묵했다. 온전히 수용했다. 지극한 영성이다. 분노에 찬 삶은 일상에 함몰되는 삶이다. 내가 이해하고 동의할 수 없을 때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옳다.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 일상에 함몰되지 않고 몰입하는 삶이야말로 무엇보다 영적이다. 주말을 기다리는 삶이 아니라 주중에 몰입하는 것이다. 넬슨 만델라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삶에 얼마나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켰는가가 중요하다. 실패할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깊은 영성이 배어난다. 술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어서 술 취한 사람을 잘 챙겨주는 것이 영적인 행동이다. 예배에 몰입하듯 일상에도 예배처럼 몰입하라. 일상의 영성이 능력이다. 분노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교만이다. 무슨 일이든 감사하라. 금식은 영적 군살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사람을 만날 때 대화할 때 일할 때 집중하라. 나머지 행로는 하나님께 맡기라. 눈앞의 일상이 소중하다. 집중하라.


나: 교만함을 비춰주는 나의 거울되는 말이다. 불평과 분노로 나는 하나님을 버린 순간이 너무도 많았다. 환경과 상황을 전적으로 수용하면 몰입하는 삶을 살 수 있었을텐데 그것을 벗어나려고 쓸데없이 애썼고 벗어나지도 못했으며 오히려 더 깊은 수렁으로 떨어지곤 했다. 지금부터 영원까지의 일은 하나님의 소관인데, 그것을 넘봤다. 그것이 교만인 줄 이제 알겠다. 


책: 사람의 가치를 세우고 존중하면 하나님이 부족한 것을 채워 주신다. 사람을 세우는 데서 행복을 찾으라. 사람을 존중하고 섬기라. 예수님의 프레임은 물고기만 잡지 말고 사람을 건져 올리게 하는 것이다. 일과 직업의 가치를 새롭게 정의하신 것이다. 섬기러 오신 예수님, 죽으러 오신 예수님은 사회 전체를 충격으로 빠뜨리는 프레임을 던지신 것이다.


나: 나의 일과 직업에서 나는 노동이라는 프레임을 갖고 살았다. 할 수만 있다면 자유롭고 싶어했다. 그 일을 통해 사람을 세우겠다는 의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래서 늘 고달팠던 것 같다. 나의 직업 프레임을 사람을 세우고 사람을 섬기는 것으로 가져 다시 시작하고 싶다. 직업 뿐만 아니라 내 삶 전체의 프레임을 사람 살리는 것에 두고 싶다.


책: 상처는 무서운 힘을 지녔다. 그 위에 분노가 쌓이면 언젠가 살인으로 귀결된다. 예수님은 이웃을 욕하고 비웃으며 조롱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말씀하셨다. 어떻게든 분노를 다스려야 한다. 창조주를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을 떠난 것, 하나님같이 되려고 하는 것이 죄의 근원이다. 내가 더 중요해져야 한다는 생각, 내 것이 아닌 데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여기가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삶의 갈등을 빚어내는 이유들이다. 내 입장 고집하는 것을 버리고 피스메이커가 되라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다. 직장에서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예수님을 드러내며 살라. 


나: 내가 분노에 휩싸일 때는 사람에게 억울함을 호소하지 말고 침묵의 골방으로 얼른 들어가야겠다. 호소하는 시간 뒤에 밀려드는 주님 앞에서의 부끄러움이 나를 더 힘들기 때문이다. 내가 더 중요해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섬김을 받으려하기 때문에 분노했다는 것이 참으로 부끄럽다. 결국 이 또한 교만이었다. 주님 앞에서 스캔해보면 내 삶의 순간순간이 참으로 참혹하다. 어린 아이와 같이 내키는 대로 제어없는 기계같이 살 때가 많았다. 원죄의 뿌리는 너무도 깊고 탄탄함을 내게서 느낀다. 쉽게 하나님을 떠났다가 쉽게 하나님과 같아지려하는 나의 모습을 회개한다.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데 소유하려고 애쓰던 내 모습 속에 피조물이라는 것을 잊은 나를 본다. 결국 비크리스천과 다르지 않았다. 나를 이토록 철저히 세상적 프레임으로 살게 한 것은 무엇일까? 교육? 주변 사람들? 메스컴? 결국 외부로부터 온 것이라고 또 남탓을 하고 있구나. 바로 영성을 무시한 내탓 때문이다.             


책: 버킷리스트에 적은 일들이 과연 꼭 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인가? 나를 만족시키는 일들에 지나지 않는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다가 떠나야 하지 않겠는가? 성경이 하나님의 버킷리스트이다. 단 한 가지 일에 집중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을 아는 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다. 이 일은 같은 일이다. 사랑하는 일보다 중요한 일도, 먼저 해야 할 일도 없다.


나: 내가 그 동안 써두었던 버킷리스트를 모두 지웠다. 수첩 대신 가슴 속에 뚜렷하게 버킷리스트를 새로 새기고자 한다. 하나님 알기, 하나님 사랑하기, 이웃 사랑하기로 심플화해서 뿌듯하다. 부질없는 줄도 모르고 기록해 두었던 버킷리스트를 버리고나니 집을 정리한 것처럼 홀가분하기도 하다. 영성도 버킷리스트도 일도 하나가 되는 듯하다. "사랑"하는 삶으로 모든 감정과 이성을 모아 심플하지만 뚝심있게 살고 싶다. 


책: 예수님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가' 계속 물으셨을 것이다. 일의 바른 목적과 동기를 결정하는 것이 곧 영성이다. 영성 안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라는 것이다. 거룩한 안식이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다. 쉼의 본질은 회복이다. 자기 필요를 벗어나 타인의 필요에 부응하는 것이 곧 회복이다. 자신을 위해 죽도록 일하지 말고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로 일하라. 


나: 내 하루하루 삶의 점검은 "오늘도 사랑하였는가?"로 삼아야겠다. 사랑하지 못한 삶은 없는지 성찰하며 살아야겠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감사일기를 적어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주님이 제시하시는 삶은 정말 좁은 길이다. 주님이 앞장 서서 가시고 내가 그 뒤를 따라가는, 그리고 내 뒤의 사람들도 따라 살게 만드는, 한 줄의 좁은 길이다. 옆으로 샐 수 없으니 갈등도 없겠다. 좁은 길은 힘든 길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주님만 한 줄로 따라 가면 되는 작지만 평안한 믿음직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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