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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멸과 갱생 사이 - 형제복지원의 사회학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형제복지원연구팀 엮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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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과거의 여러 사건을 이야기 친구들이 짚어주며 초대 손님들의 공감과 반응을 이끌어내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라는 프로그램이 다양한 연령대의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맛보기 프로그램(텔레비전 파일럿)으로 출발하여 정규 편성된 이 프로그램이 다룬 첫 번째 소재가 바로 형제복지원 사건이었다. 그것은 이른바 1970~80년대 부랑인 수용시설인 부산 사회복지법인 형제복지원에서 강제노역 및 온갖 학대와 폭력이 벌어졌던 사건을 가리키는데 이날 방송에서는 부산역에서 만난 경찰에게 강제로 납치되어 기구한 인생을 살아온 아동 사례가 다루어졌다.
1986년 12월 울산에서 꿩 사냥을 나왔던 김용원 검사가 산속 공사현장을 목격하며 처음으로 형제 복지원 문제의 실체가 드러났다. 하지만 88 서울 올림픽을 앞둔 상황에서 ‘6월 항쟁’이 일어난 87년, 형제복지원 문제까지 터지게 되면 정권 존립에 미칠 악영향이 염려되어 수사중지 압력이 가해졌고 정권의 비호 속에 오랫동안 충분히 공론화되지도 해결되지도 못했다. 거의 30여년이 지나서야 ‘당시 아이였던 피해자들이 어른이 돼 스스로 증거를 모으고 목소리를 내면서 제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2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과거사법) 개정에 따른 제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가 1호 사건으로 조사에 착수한 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생을 중심으로 결성된 형제복지원연구팀이 지난 2017년부터 4년간 조사․연구․토론한 결과물로서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서라 할 수 있는 <절멸과 갱생사이>를 펴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설립과 운영 과정에서 내세웠던 허울좋은 명분과 더불어 기존의 연구들이 보여준 대체적인 방향까지 아우르면서 형제복지원이라는 거대한 시설을 지속적으로 작동하게 한 구성요소와 그와 관계된 사회집단 등을 하나하나 추적해가고 있다.
책은 총 3부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부랑인에 대한 사회적 배제의 구조」에서는 식민지 시기에서 출발하여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형제복지원의 탄생 배경인 ‘부랑’ 집단에 대한 사회적 배제의 형성과 지속적 발전 과정을 부랑 나환자 사례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형제복지원 문제를 중점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2부「형제복지원의 운영과 폭력」에서는 기존 연구에서는 잘 논의되지 않았던 (국가와) 사회의 공모라는 틀 안에서 돈벌이의 수단으로 변질되어 가며 폭력과 억압속 노동력이 갈취되는 과정과 작동기제를 파헤치고 있다. 3부「형제복지원의 사람들 」에서는 형제복지원에 수용되었던 이들의 증언과 형제복지원 문제 해결에 나섰던 사회운동의 양상과 성격을 짚어보고 있다.
특히 눈길이 가는 부분은 위에서도 언급했던 국가와 사회의 부적절한 결합인데 그 작동 원리는 다음과 같다. 우선 국가는 광범위한 도시 하층민을 “건전한 사회 및 도시 질서를 저해”하며 “사회에 나쁜 영향을 주는 자”로 정의하고 시설 수용 등의 배제를 공식화하면서(내무부 훈령 410호) 빈곤에 대한 책임을 방기한다. 사회는 자신의 삶의 환경, 도시미관, 안전, 그리고 발전을 위해 국가에 통제를 요구하고 이들을 비가시화하는 수용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여기에 국가는 사회복지사업법을 통해 복지의 민간 위탁 활성화와 관련 민간 사업자의 사업 영역 확대 기회를 부여하는데 그 대표적 성공사례가 형제복지원이었다. 형제복지원은 수용인원에 따라 매년 10~20억원의 국고보조금을 받았을 뿐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허가 또는 묵인 아래 다양한 사업을 통해 불법적으로 수익을 극대화 했는데 그 기반이 경찰에 의해 인계되어 시설에 갇힌 수용자의 노동력이었다. 그렇게 획득한 노동력의 유지를 위해 선택된 수단이 제어되지 않는 잔인한 폭력이었고 그 과정에서 참혹한 인권유린이 발생한 것이다.
※ 1986년 기준, 전체 수용자 3천975명 중 경찰에 의한 입소 인원- 3천117명, 구청 통한 입소 인원 253명 / 확인된 사망자 550명 이상
그렇다면 이런 비극은 더 이상 반복되지 않고 있을까? 폭행·폭언·횡령·인권침해. 장애인 거주 시설 관련 기사에서 빠지지 않는 말들에서 알 수 있듯, 형제복지원 사건은 어떤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다. 폭력은 시설의 역사이고, 횡령은 시설의 수익모델이다. 연구팀은 “오히려 지독하게 폭력적이고 우여곡절로 가득했던 한국사회의 근대화 과정을 정직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이라 잘라 말하면서 “복지나 교정, 치료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다수의 사람들이 가정과 일터와 놀이터가 분화되지 않은,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이 분리되지 않은 곳에서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박탈당한 채 현재만을 살아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현실 인식과 더불어 무엇보다도 곱씹어보고 성찰해야 할 점은 이런 비극의 발생이 “사회의 무관심 또는 정당화, 적극적인 참여”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하기에 과거사법 개정으로 진상규명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 그치지 않고 철저한 진상규명, 국가 차원의 사과와 피해자 명예회복, 피해자 배·보상 등이 이루어지도록 감시하고 압박해나가는 과정이 지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