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양장) - 합본 개정판
진중권 지음 / 개마고원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침을 뱉으려면 똑바로 뱉어야


  소위 ‘진보논객’이라는 진중권은 자신의 책머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실 박정희라는 사람, 별로 전문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있는 인물이 아녜요. 이인화가 자랑하는 “박정희 철학”, 조갑제가 자랑하는 박정희의 “자주적 정치이념”, 그의 심오한 사상이란 게 알고 보면 일제 파시스트 철학을 그대로 베낀 거예요. 참고로 말하면, 학계에서 파시즘에 대한 검토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난 상태예요. 새로운 쟁점이랄 게 없어요.>


  우선 나는 그가 이렇게 말할 자격이 충분한 사람인지 의문이다. 박정희라는 사람이 정말 연구할 가치가 없는 사람인가. 나는 저런 말을 아주 쉽게 던지는 그의 태도가 아주 경솔하고 오만하다고 생각한다. 한국 현대사에서 박정희 시대가 얼마나 논쟁적인지를 안다면, 박정희라는 인물에 대해 연구할 가치가 없다는 말을 저렇게 간단하게 던질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박정희 시대 연구가 박정희 개인에 대한 탐구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지만, 박정희의 생각이나 정책결정과정을 배제하고 박정희 시대를 들여다볼 수 있을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런 주장을 하려면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하지만, 그의 근거는 충분하지 못하다. 더욱이 파시즘에 대한 검토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나서 새로운 쟁점이랄 것이 없다는 말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스스로 “철학계의 학생”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는 철학자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 소양조차 갖추지 못한 듯 보인다. 


  왜 그가 던진 근거가 충분하지 못한가. 위에 인용한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소위 ‘우파논객’들이 말하는 박정희의 정치이념이나 철학이 일제의 극우 파시스트 정신을 그대로 이식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무지의 소산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다. 박정희가 60년 넘게 살면서, 그리고 18년이라는 긴 시간 집권하면서 과연 단일한 정치적 입장을 고수하였을까. 유신 이전의 박정희 체제와 유신 이후의 박정희 체제가 비록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통치 스타일을 공유하고 있더라도, 양자를 단일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부당하다. 만일 양자가 동일하다면 유신헌법 제정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갖는 의미는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된다. 다시 말해서 유신헌법 제정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심각한 문제점을 제대로 부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진중권은 과연 이런 문제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고 있을까. 책 전체의 내용으로 미루어보건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진중권의 발언은, 복잡한 변수와 맥락을 무시한 채 박정희의 정치적 입장과 일제의 ‘파시즘’을 아주 단순화하여 비교하였다. 그야말로 무지의 소산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내가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읽으면서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 것은, 진중권이 자신의 텍스트 속에서 사용하는 개념들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의 특수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동일하게 ‘파시즘’이라는 범주로 묶어내면서 그것을 박정희 체제와 단순 비교하는 것이 정녕 타당한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독재를 파시즘과 동일시하는 방식은 형편없는 발상이다. 진중권 말대로라면 전체주의나 파시즘이나 본질은 동일하기 때문에 스탈린이나 김일성 같은 사람들도 ‘파시스트’라고 말해야 옳은 것인가? 그런 점으로 미루어볼 때, 진중권이 파시즘과 전체주의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나는 이런 문제의 원인은 구체적이고 상세한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하기보다는 단순히 외형의 유사성만 가지고 추상적 담론을 생산하려는 데 있다고 본다.


  물론 박정희 시대에 대한 정당화와 기념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진중권이 이 책을 저술한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의도만으로 형편없는 논리가 정당성을 얻는 것은 아니다. 그가 아무리 “이 책은 논문이 아니다. 난 이 책을 순문학으로 이해한다.”고 하지만, 인신공격과 조롱이 가득 담긴 천박한 어조로 형편없는 논리를 전개하는 이 책에 “관심 좀 가져” 줄 평론가가 몇이나 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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