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기 좋은 이름 (리커버)
김애란 지음 / 열림원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으니 나도 글이 쓰고 싶어졌다.
상황이나 순간, 감정의 비유, 묘사, 생활에 대한 깊은 성찰이
이 책안에 참 이쁜 문장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처음에는 조금 가벼운 에세이 정도로 여기고 읽기 시작했는데
곳곳에서 만나는 문장들에 걸리고 말았다.

서울에 상경해 처음 어머니와 자취방을 얻을때를 회상하며 쓴 [야간비행]의
'어머니는 내게 몇평의 애잔함을 떼어줄 수 있었다'...
이 한 문장에 작고 허름한 자취방을 겨우 마련해 준 그때의 상황이
고스란히 느껴져 온다.

[속삭임] 이라는 단어를 작가 나름되로 정리한 글에서는
'거울에 난 손자국처럼 서로의 청각에 마음의 지문을 남김.'
아...이 얼마나 멋드러진 비유이고 표현인지...
당신의 속삭임이 나의 귀를 통해 내 마음에 지문을 남기는 행위 인것을...

[부사(副詞)와 인사]는 소재가 참 특이하다.
명료한 문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부사를 되도록 안써야 되는데 하면서도
어쩔수 없이 부사를 쓸수밖에 없는...그래서 부사를 좋아한다고 까지 표현하며
부사에 대한 변론을 이어간다.
'부사 안에는 뭐든 쉽게 설명해버리는 안이함과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 안간힘이 들어있다. "참","퍽","아주" 최선을 다하지만 답답하고 어쩔 수 없는 느낌.
말(言)이 말(言)을 바라보는 느낌. 부사는 마음을 닮은 품사다.
'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우리의 마음을 닮음 품사란다. 부사가....

조연호 시인에 대한 작가의 느낌을 쓴 [연호관념사전]또한 특이한 글쓰기 방식이다
한 인물에 대해 'ㄱ'~'ㅎ'까지 한단어를 들어 문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ㄷ'에서 선택한 단어는 '다정' 그리고 조연호 시인을 표현한 말 '이외로 다정'
피식 웃음이 난다. 서로에 대한 따뜻한 동료애가 느껴진다. 원래 다정한 사람보다
겪어보니 '이외로 다정'한 사람에게 더 정이 간다.

'ㅍ'에서 선택한 '포효' '연호가 잘 하지 않는 것 중 하나' 많은 말들이 필요 없이 조연호 시인에 대한 한부분을 본 듯한 느낌이다. '같은 색깔을 가진 자석처럼 말과 마음의 "극"이 같아, 가까운 것끼리 멀어지며 자장을 만들어냄." 마음의 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성격을 이렇게 문학적으로 나타낸다. 그러나 언젠가는 자장을 알아 채듯 그 사람의 마음을 느끼는 순간을 만났겠지...

이러한 문장들, 표현들에 걸려 밑줄 긋고, 웃음지으며, 잠깐 멈췄다가 다시 한번 되뇌이며 맛나게 읽었다.

그리고는 나의 이런 행위를 결정적으로 나타내주는 글귀를 만났다.

'평소 문서에 줄을 많이 긋는다. 전에는 색연필이나 형광펜을 이용했는데 지금은 거의 연필만 쓴다. 어떤 문장 아래 선을 그으면 그 문장과 스킨십하는 기분이 든다. 종이 질과 연필 종류에 따라 몸에 전해지는 촉감은 다 다르고 소리 또한 그렇다. 두껍고 반질거리는 책보다 가볍고 거친 종이에 긋는 선이 더 부드럽게 잘 나가는 식이랄까. 어디에 줄 칠 것인가 하는 판단은 순전히 주관적인 독서 경험과 호흡에 따라 이뤄진다. 그리고 그렇게 줄 긋는 행위 자체가 때론 카누의 노처럼 독서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과 리듬을 만든다.'

다들 그러겠지만..이 책을 읽으며 이 책를 쓴 작가의 이런 표현을 만나니
독서 동지를 만난듯 더 가깝게 느껴진다.

책읽기의 즐거움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책..글도 써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나도 이런 맛깔스런 표현들을 발견하고픈 욕구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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