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있다는 것 (양장)
김중미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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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랜 시간 약자들의 편에서 귀 기울여 온 <괭이부리말 아이들> 김중미 작가의 신작으로,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배경인 은강의 지금을 그린다. 할머니, 엄마의 시대를 훑고 현재로 돌아와 각기 다른 처지의 세 친구의 시선을 통해 은강과 우리의 현실을 본다. 그 동안 외면되어온 현실적인 가난의 모습이 담겼다. 자극적이게, 더 불쌍하게 표현하는 게 아니라 내부의 시선에서 덤덤하고 일상적이게.

결국에는 비슷한 처지의 노동자들끼리 싸우게 되는 현실이 참 아프다. 내가 행복해지는 것보다 나보다 불행한 이들이 사라지지 않길 바라고, '불쌍한 사람들'이 당당하고 행복하지 않길 바라고, 나보다 바로 밑의 사람들이 기어오르지 않길 바란다. 역겨워서 보고 싶지 않은데도 현실에서 너무나 자주,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마주치는 사람들. 오히려 자신이 정의인 줄 알고.

이들은 가진 게 열, 백인 사람들이 아니다. 가진 게 하나 있는 이들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 하나를 갖게 되는게 꼴보기 싫어 열, 백을 가진 사람들의 편을 드는 세상이다. 그리고 그 약자의 발버둥을 정당한 비판인 척 하며 희롱하고 비웃는 콘텐츠가 흥하고 돈을 번다. 어딜 기어오르냐는, 너 따위가 누구한테 대드냐는 태도. 책 속의 가상 인물들보다 그로 인해 연상되는 더 잔인하고 이기적인 현실에 속이 안 좋아진다. 더 역겨운 건 눈 감고 귀 막고 나보다 불행한 사람들이 더 불행했던 시절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들. 책은 은강의 청년들이 광화문으로 가 촛불시위를 하며 마무리된다. 연대를 이야기하지만, 책을 덮고 마음이 착잡해졌다. 책이 아닌 현실은 계속되고, 그런 날이 있기는 했었냐는 듯 다시 되돌아간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그 순간을 싹둑 도려낸 것처럼.

약자에 대한 무지가 얼마나 잔인한 칼날로 변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책이었다. 더 이상 잔인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 소득없는 약자들끼리의 싸움을 그만 두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오빠는 50만원이 채 안 되는 기초 생활 수급비로 지내면서 학교에서는 근로장학생으로 일했다. 근로 장학금은 다달이 받지 않고 학기별로 장학금 형태로 받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한 달 수입으로 잡혀서 수급권을 박탈당하거나 금액이 깎일 수 있다고 했다. 같은 이유로 아르바이트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영민 오빠를 보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국가의 도움을 받으려면 가난을 벗어나려 애쓰는 대신 가난을 유지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P30

원래 가진 것 많고 힘 있는 사람들은 그렇다 쳐도 왜 가난한 할아버지들까지 돈 있는 사람들 편인지 모르겠다. 수찬이는 어렸을 때부터 궁금했다. 왜 같은 노동자들끼리도 힘센 쪽과 약한 쪽이 나뉘고 서로 싸우는지. - P354

촛불 집회로 대통령이 탄핵된다고 세상이 갑자기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거라는 기대는 들지 않았다. 수찬이가 보기에 사람들은 자기와 상관 없는 슬픈 기억은 빨리 잊고 싶어 한다. 고통은 늘 당사자만의 몫이다. 세월호 참사가 그랬고, 아빠의 죽음도 그랬다. - P354

강이는 이 촛불이 모두 다 같은 곳을 향하고 있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무리 촛불을 들어도 진짜 어두운 구석까지 밝힐 수 없다는 것도 안다. -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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