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 작가님의 글에서는 따스함이 느껴진다. 늘 그랬다. 브런치 스토리를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글을 만났다. 어느 글들은 재미는 있었으나 읽고 나면 마음이 퍽퍽해 지기도 하고 어떤 글들은 마음을 움직이는 일상의 힘이 되어 주기도 했다. 재치있는 스텔라라는 필명의 작가도 그 때 만났다. 누군지 모르고 클릭해서 읽다가 '음? 왜 이렇게 뭉클하지.' 하면서 계속 읽게 되었던 글의 작가라는 것을 한참 뒤에 알았다. 필명을 바로바로 기억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중에서야 그 때 읽었던 그 글도 같은 작가의 글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렇게 도서 [한 입 가득 위로가 필요해]가 책으로 정식 출간 되기 전, 그녀의 글들을 브런치 스토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글에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다. 세상에는 사연이 없는 사람이 없고 각자 나름의 사연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공감을 표하기도 쉬우련만, 제일 조심해야 할 것이 섣부른 위로이자 공감이다. 나도 아팠기 때문에 너의 고통을 알 수 있다는 것은 공감하기 어려운 말이다. 모두가 아프지만 각자가 느끼는 무게를 어찌 감히 재단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리하여 유독 브런치 스토리에는 자신의 아픔을 술회하는 글들이 많다. 일상의 풍자와 해학을 담은 글도 많고 정보성 글도 많지만 조회수를 부르는 글들은 역시 공감하기 쉬운 소재들이다. 그 일상을 담은 글들이 전개되는 양상은 또한 다양하다. 슬프고 힘든 가운데서도 원망과 분노를 가득 담은 글이 있는가 하면 좌절과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그리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따스하게,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글이 있다.
그리하여 어느 순간 그 작가의 글이 올라오는 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그리고 알람이 울리는 순간 기다리던 선물 포장을 푸는 마음으로 클릭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랬던 그 스텔라 작가님이 책을 출간한다고 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려서 나는 이 책을 만났다.
젊은 시절, 나는 공들여 만드는 음식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몇 시간을 힘들게 요리를 했지만 먹어버리는 것은 한 순간에 지나지 않으니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내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부족에서 나왔던 무지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 비로소 정성들여 만든 음식의 소중함을 제대로 깨달았고, 그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가족들의 모습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를 알았다. 매일매일 만나기에 무심결에 지나치기 쉽고 지나치게 일상적이라 오히려 간과하기 쉬운, 하지만 그래서 더 귀한 선물 말이다.
이명진 작가의 [한 입 가득 위로가 필요해]는 그녀가 지나와야 했던 그 세월의 아픔과 기쁨, 추억과 성장이 그녀와 함께 한 음식과 담겨 있는 책이다. 안정적일 것 같았던 그녀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위기가 찾아온다. 그 많은 빚을 어떻게 갚았는지 나는 차마 물어볼 수 조차 없었다. 시댁에 들어가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하는 일이 얼마나 도전인지 대한민국의 모든 며느리들은 알 것이다. 하물며 거액의 빚의 압박과 양가 부모님의 병환이 더해진다면 그 삶이 어떠할지 나는 상상도 하기 싫다.
치매에 걸린 남편을 돌보는 노부인의 모습에서 두 부부는 눈물을 흘린다.
"오래 살라는 말 못 하지... ."
나도 같이 눈물이 나고 말았다. 어느 순간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시던 시아버지는 결국 치매 판정을 받으셨다. 아이들이 간혹 가족 모임에 참석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왜 못 왔는지 수십 번을 물으시고도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또 물어보시는 모습이 일상이 되어 버린지 이미 오래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초기 단계라서 이 정도는 버틸 만 하지만 이미 아버님은 위치 추적 기능이 달린 장치를 착용하고 계신다. 지난 번에는 그냥 나가셔서 몇 시간을 어디에 계셨는지 몰라 온 가족이 아버님을 찾아 헤맨 적도 있었다. 이제 시작인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초기의 시작도 그러할 진대 비누를 먹고 로션 통을 빨아댈 정도로, 그리고 나중에는 걷지도 못하고 누워 계시다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정성을 다해서 모셨던 그녀의 음식들은, 그러나 이제는 추억이다. 최선을 다해서 모셨기에 회한이 없다는 그녀의 말은 북어 보푸라기에, 치킨 텐더에, 굴비 갈비찜에, 애호박 만두에 그렇게 녹아 있다.
가끔 그녀의 글에서 나오는 외할머니의 사랑이, 그 추억이 너무 부러웠다. 그러다 친정 엄마의 미역탕국에서 또 그녀의 설움을 보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나 역시 우리 엄마의 추억의 음식들이 있다. 개떡이라고 불렀지만 실은 옥수수빵이었던 그 노란색 폭신폭신한 빵이며 매콤달콤한 오징어 볶음이며 꼬막 무침 같은 그런 우리 엄마가 자주 해 주었던 그런 애정어린 음식들이 있었다. 명진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기억 저 쪽에서 잘 보이지 않았던 그 추억의 음식들이 하나씩 떠 올랐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삶의 순간순간에 지탱해주던 음식들이 있었다. 거창할 필요도 없고 값비싸지 않았지만 마음이 느껴지던 그런 음식들. 나이가 조금씩 들어갈 때마다 관조하던 다른 이들의 어려움이 나의 것이 되어가기 시작함을 알게 되었다. 온 몸으로 부딪혀가면서 살아내야 하는 그런 어려움들은 누군가 나를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고 오롯이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었다. 혼자라면 차라리 마음대로 알아서 할 수도 있겠지만 혼자가 아니기에 감당의 무게가 늘어나고 복잡해 지는 그 순간도 분명하게 많아지기도 한다.
그 순간에 그녀는 말한다. 감정에 휩쓸리기 보단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만 생각했다고. 원망한들 무엇이 달라지고 자조한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언제였던가. 이것을 삶의 모토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한 문장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내게 주어진 일들을 하자.
어쩌면 내가 좋아하던 빨간 머리 앤의 이 표현도 같은 맥락일지 모른다.
I shall give life here my best.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질 때, 왜 나에게 삶은 이렇게 유독 혹독한가 라고 짓눌리듯 생각한 적도 있었다.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피아노를 치던 그 모든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가혹하게 느껴지던 삶을 살아가는 나만의 방법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명진 작가에게 있어서 요리는 그녀를 지지하는 방법이자 삶에 대한 애정을 풀어가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이 담긴 요리들은 그녀가 겪어낸 삶과 함께 이렇게 글이 되었고, 우리에게 다가와 위로가 되었다. 나는 이 책을 지금 나와 함께 삶을 견디고 겪어내고 있는 내 친구들에게, 이웃들에게 살며시 건네고 싶다. 책을 읽으며 울던 내가 어느 순간 미소를 지으며 힘을 얻었듯, 먹지 않아도 이미 먹은 듯 위로를 전해주는 그녀의 마음을 통해 같이 힘을 받기를. 모든 이들이 나의 음식을 통해 함께 서서 위로를 받으며 나가길 그렇게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