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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붉은 악몽 ㅣ 노리즈키 린타로 탐정 시리즈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포레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요리코를 위해>를 읽고 엄청난 충격과 함께 터져나오는 탄성을 삼키던 때가... 삼 년 전이었던가? 우선 본격미스터리답게 범인을 찾는 과정이 흥미진진했고, 당연하다고 점찍었던 범인이 진범이 아닌 것에 놀랄 새도 없이 그 진범이 진정한 죄인은 아님에 가슴이 먹먹했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읽은 <1의 비극>, 이건 그나마 노리즈키 탐정이 아닌 사건 당사자의 1인칭 시점이었기에 추리소설의 맛에 그냥 흠뻑 젖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붉은 악몽>이 나왔다. <요리코를 위해>의 속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물론 따로따로 읽어도 된다) “자, 어디~?” 하는 편한 마음으로 책장을 들출 수만도 없었던 것이 솔직한 맘.
줄거리라 하면 책 소개에도 있듯이,
방송국에서 검은 가죽자켓을 입은 남자가 아이돌 가수 유리나(미와코)를 불러 칼을 들이대며 위협한다. 놀란 유리나는 그와 칼을 붙들고 실랑이를 벌이다 기절하고, 깨어나 노리즈키 린타로에게 도움을 청한다. 1년 전 노리즈키 경시(린타로의 아버지)와 어떤 사건으로 인연을 맺게 되어 도움을 청하려고 전화를 했는데, 마침 집에 혼자 있던 린타로가 그 전화를 받았던 것! 반년 전 죽은 요리코와 요리코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혼자 자책감에 빠져 있던 린타로는 잠시 고민하다 유리나를 돕기 위해 새로운 싸움에 나선다.
넌 여전히 네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어. 새로운 문제에 뛰어들어 잘해낼 수 있겠어?
린타로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할 생각이 아니다. 추운 하늘 아래 연약한 소녀가 도움을 청하는데 내 사정 때문에 눈감을 수 는 없다. 무엇보다 이것은 탐정 게임이 아니다.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집을 나섰다. 나는 그저 최소한의 친절을 베풀려는 것뿐이다. 그렇지 않은가? 사랑은 패배해도 친절은 승리한다. 이거 너무 고리타분한걸.
하지만 명탐정 노리즈키 린타로에게도 이 문제는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유리나가 괴한의 습격을 받은 데는 십칠 년 전 그녀의 가족에 관련된 살인 사건이 연루되어 있었고, 현재 유리나의 상황과 관련한 연예계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문제가 복잡할수록 독자들의 상상력과 호기심은 쑥쑥 커지기 마련이지만.
읽다 보면 중간에 일본 아이돌계의 역사를 정리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나도 궁금해서 중간중간 검색해보니 대부분이(극중 인물과 관련된 인물은 빼고!) 실재하는 인물이었다. 핑크레이디나 마쓰다 세이코, 오냥코클럽 등등, 검색녀의 호기심이 발동해 이 인물들 관련 포스팅도 보고 유투브로 영상도 찾아봤다. 덕분에 독서 시간은 조금 길어졌지만 일본의 80년대 아이돌 역사를 정리한 기분!! ㅎㅎ 우리나라에는 이런 소설이 없을까? 잘 모르는 일본 아이돌의 역사도 이렇게 재미있게 읽었는데 우리나라 아이돌 관련 글도 읽으면 재미있을 것 같다!!
노리즈키 린타로가 가방 끈 길고 ‘고뇌’하는 엘리트 작가라는 건 알았지만 대중문화 쪽에도 이렇게 해박한 줄은 미처 몰랐다. 대중문화사 개관이야 누구든 할 수 있다 치더라도, 텔레비전이라는 매체가 부상함에 따라 시청자(수용자)의 눈 변화한 과정을 요약해준 부분은, 정말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붉은 악몽>을 읽으며 범인 찾기 말고 또 집중해서 읽은 부분이 있는데, 바로 ‘요리코 사건’의 후유증을 안게 된 린타로가 어떻게 그 과정을 극복해가는지,에 관한 부분이다. 사실 이 시리즈의 이름이 ‘비극 삼부작’이고, 전작들도 씁쓸한 결말로 끝맺음을 했던지라, 린타로가 정말로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지지는 않을까, 사건 해결과는 별개로 탐정이 혼돈에 빠지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더랬다. 나 같은 걱정을 하는 독자들을 위해 세세히 밝히지는 않겠지만, 노리즈키 린타로는 나처럼 우매한 독자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멋진 작가이자 탐정임이 분명했다.
하나에 몰두하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집요함, 무엇보다도 사람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그의 휴머니즘. 셜록홈스 같은 명석한 두뇌가 없어도, 미스 마플 같은 비범한 관찰력이 없어도, 내게는 가장 멋있는 탐정으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