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적 제자도
존 하워드 요더 지음, 존 C. 누겐트.앤디 알렉시스-베이커.브랜슨 L. 팔러 엮음, 홍병 / 죠이선교회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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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침, 활짝 핀 보라색 나팔꽃을 보았다. 주차장 시멘트 바닥위에서다. 경이로웠다. 저 메마른 시멘트 틈에서 저렇게 고운 꽃을 피워 내다니.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네가 여린 싹으로 터서 땅 속 어둠을 뚫고/ 태양을 향해 마침내 위로 오를 때/ 나는 오직 아래로/ 아래로 눈 먼 손 뻗어 어둠 헤치며 내려만 갔다/ 네가 줄기로 솟아 봄 날 푸른 잎을 낼 때/ 나는 여전히 아래로 막힌 어둠을 더듬었다/ 네가 드디어 꽃을 피우고/ 춤추는 나비 벌과 삶을 희롱할 때에도/ 나는 거대한 바위에 맞서 몸살을 하며/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바늘 끝같은 틈을 찾아야 했다/ 어느날 네가 사나운 비 바람 맞으며/ 가지가 찢어지고 뒤틀려 신음할 때/ 나는 너를 위하여 오직 안타까운 마음일 뿐이었으나, 나는 믿었다/ 내가 이 어둠을 온몸으로 부둥켜 안고 있는 한/ 너는 쓰러지지 않으리라고…”


이현주 시인의 “뿌리가 나무에게”란 시다. 아침에 본 그 꽃, 척박한 시멘트 틈을 뚫고, 땅 속 깊은 어딘가에 뿌리를 내렸기에 보랏빛 예쁜 나팔꽃을 피워낸 것이다. 그 어디에 있을지라도 뿌리를 내리면 싹은 자라고, 꽃이 피게 되는 것이다.


이 책 “Radical Christian Discipleship"은 제자도의 ‘뿌리(Radical)’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자도의 뿌리가 무엇인지,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살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저자 요더(1927-97)의 요점은 분명하다. 이 세상에 대한 순응주의를 넘어서, 그리스도께 순응하는 하는 길을 걷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초점을 세상에 적응에 두지 말고 이미 도래한 하나님 나라의 기준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사회 교육의 충실한 목표는 사회에 우리 자신을 맞추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회에 잘 들어맞는 삶을 살 때 ‘철이 들었다, 어른이 되었다’한다. 기독교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우리의 믿음을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도록 손질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하지만 손질하고, 바꾸어 가야 할 것은 우리도, 우리의 믿음도 아닌 세속적 사회다. 즉, 세상적 생활방식을 버리고, 예수가 십자가를 통해 보여준 새로운 생활방식을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 책에는 우리가 맞추고 순응해야 할 하나님 나라의 생활방식들이 나온다. 돈, 국가, 시간, 진실함, 사랑, 베풂, 평화에 대해 다룬다. 이 중에서도 축적이 아니라 베풂으로서의 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7장과 인간적 조건과 한계를 넘어서는 무제한적 사랑과 베풂을 이야기하는 12장과 16장, 십자가의 의미를 완전히 새롭게 보게 하는 18장, 제자도의 대가를 이야기하는 19장은 왜 이 책을 ‘가장 읽기 쉬운 언어로 요더의 관점을 소개한 요더 입문서’라고 부르는지를 알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성경적 현실주의”라는 말이 맴돌았다. 현실을 어떻게 “성경대로” 살아내야 하는지를 보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삶과 분리된 신앙이 아니라 삶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성경적 신앙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어서 심봉사가 눈뜨게 된 것처럼 좋았다. 아울러 신앙의 초점과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하겠다는 경각심도 들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원할 때, 우리의 일정대로 진행되는 택시여행이 아니라 이미 잡혀진 일정에 따라 정해진 종착지를 향해 떠나는 기차여행과 비슷하다. 내가 뿌리를 내려야 할 곳은 내 스타일도 아닌, 세상도 아닌 오직 예수님이 보여주신 십자가의 사랑의 본을 따라 무한히 사랑하고, 베풀며, 세상과 다르게 사는 길임을 명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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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지성 - 학문 연구를 위한 기독론적 토대와 방법
마크 A. 놀 지음, 박규태 옮김 / IVP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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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함을 주는 책

(그리스도와 지성, 마크 놀, ivp)

대학 1학년,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해외여행은커녕 국내 여행도 흔하지 않았던 그 때, 첫 여름방학을 맞아 지리산 캠핑을 간 것이다. 좋아하는 기독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었다. 힘든 중에도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내려다 본 일망무제의 구름 사이로 희끗희끗 보이던 중산리 계곡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마크 놀의 "그리스도와 지성“을 읽고 난 느낌도 그랬다. 크리스찬 지성 연구에 최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정상에 올라 ‘야호’를 외치며 내려다보는 느낌이었다. 그냥 마음이 시원해지면서 이젠 좀 더 열심히 그리스도인으로서 지성을 계발하고 살아야 하겠구나 하는 그런 다짐도 절로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맛볼 수 있었던 마음의 시원함의 원인은 무엇일까? 주관적으로 몇 가지만 적어본다.

먼저는 ‘신경’의 재발견이다. 사도신경으로부터 시작해서, 니케아, 칼케돈 신경에 대해서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었다. 예배 전에 외워지는 의례적인 고백이 아니라 학문의 기초로서 아니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이해하고, 학문을 하는 패러다임으로서 신경을 보게 된 것은 더운 여름날 등물 한 바가지를 뒤집어쓴 느낌이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말씀하신 사도신경이 그리스도인 학문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 ‘나셨으나 창조되지 않은’, 성부와 동일 본질을 가지신 하나님이신 예수님, 그리고 이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사실을 말하는 니케아 신경을 통해 하나님이 피조세계 속에 그리고 그 세계 안에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스스로를 충만하게 나타내셨다는 것.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길을 제시하시고, 나아가 일반적인 인간사와 구조, 각종 제도에 대한 긍정적 암시를 주셨다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의 통합된 한 인격 속에 두 본성-‘혼합되지 않고, 변화되지 않고, 분리되지 않고, 고립되지 않은’-을 가지심을 고백한 칼케돈 신경을 통해 학문의 연구시에 좀 더 폭넓고 유연한 사고, 즉 만물의 이중성, 우연성, 특수성, 자기부인에 대한 이해와 유연한 사고를 할 길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학문은 학문, 신앙은 신앙’이 아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신인이신 예수님의 나심에서부터 학문하는 길과 세상, 우주만물을 알아가는 법을 포함하고 계시다는 것이 놀라웠다.

둘째, 과학의 재발견이다. 근래 SNS 상에서는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우종학, IVP)"로 촉발된 ‘젊은 지구론 vs 오랜 지구론’에 대한 논쟁이 시끌벅적 벌어지고 있다. 간간히 눈팅을 하면서 생각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답답한 느낌이었다. 물증은 있으나 심증이 안 따라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6장을 읽으며 오래 끌고 있던 생각정리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기분이었다.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 문장들이다.

”하나님의 인과법칙에 따르면 피조세계에 일어나는 우연과 목적이 있는 하나님의 섭리는 양립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인과법칙과 피조물의 인과법칙은 정도 뿐 아니라 종류가 완전히 다르다. 따라서 자연에서 진정 우연의 과정에서 나온 결과라 할지라도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일 수 있다. …겸손하고 책임있게 생각하고 과학지식과 해석을 제대로 갖춘 이들은 많은 과학 분야에서 표준으로 자리잡은 인간 진화라는 큰 그림이 신뢰할만한 성경 해석과 일치하며, 이는 규범적 힘을 가진 신경이 정의 한 역사 속 정통 기독교와 완전히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p156,7). “

“창조과학을 과학이라는 자연 철학에 맞설 수 있는 가장 좋은 길로 장려하여 지적으로 자살 행위를 저지는 이르는 이들이 허다하다(p193)."

충분한 논증을 제시하는 책 전체를 옮겨 올 수도, 선명하게 요약할 능력도 없어 조심스럽다. 하지만 ‘한 인격 속에 두 본질을 가지셨던’ 성육신의 신비를 생각해 볼 때 과학에서 오랜 지구론 뿐 아니라 진화론적 유신론도 충분히 신앙 안에서 수용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성경의 잣대로,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지금 이 시대 우리의 잣대로 성경을 판단하고, 그 판단으로 또 과학과 세상을 판단하는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성경의 재발견이다. 저자는 ‘7장 기독론: 성경연구의 기초’에서 피터 엔즈의 ‘성경 영감설’을 길게 인용한다. 핵심은 복음주의자들이 세속 모더니스트와 맞서 성경의 완전무결성을 변호하려고 애쓰다가 도리어 지적 모더니즘이라는 아주 강력한 약을 마시고 말았다는 것과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오늘날의 우리의 시각이 아닌 성경 자체의 해석적 관습과 가설을 오늘날의 성경 해석을 구축하는 열쇠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 이야기를 '성경대로‘ 이해하려면 당대 이전의 텍스트들-에누마 엘리쉬, 아트라하시스, 길가메시, 함무라비 등- 을 연구하여 얻어 낸 결과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예수님의 성육신의 원리-특정한 시대, 구체적인 몸을 입고 오심-를 따라 하나님이 모세오경에 영감을 부어주실 때 사용하셨을 생각을 품고 모세오경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창세기의 ’날‘이나 ’노아홍수‘의 개념을 이해할 때도 오늘날 우리의 관심이나 목적이 아닌 창세기 저자의 관심으로 돌아가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음을 추상적인 공식이 아니라 이미 구체적인 맥락에 담아 주셨기” 때문이다. 성경 연구에 게으르지 말고, 성경 본문에 대한 다양한 연구에 마음을 열어놓고 지성을 기울여 공부해야 되는 이유다.

내 마음의 산 정상에 바람이 분다. 이젠 신나게 방향을 잡아 달려가는 길만 남은 것 같다. 기독교와 비기독교, 신앙과 불신앙의 세계가 모두 합쳐진 주님의 세계로 나아가길 원하는 책 벗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우주에는 중립지대가 없다. 1제곱센티의 영역, 1초의 시간도 하나님이 소유권 행사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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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을 선교적으로 읽으면 두 모델이 보인다
손창남 지음 / 죠이선교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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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OMF 손창남 선교사가 썼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인도네시아와 한국에서의 사역을 담은 <족자비안 나이트>와 <쏘라비안 나이트>로 선교지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바 있다. 이 책 역시 “풀뿌리모델과 바바 모델”이라는 사도행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더불어 감동 있는 선교예화들이 적절하게 섞여 고수의 원포인트 레슨이 초보자의 수준을 확 끌어올려 주는 것처럼 독자들에게 선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열어준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사도행전 8장과 11장에 나타나는 박해로 흩어진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세상을 두루다니며 직업을 갖고 복음을 전하는 “풀뿌리 선교 모델”이다. 그들은 안디옥 교회로부터 후원과 파송을 받고 아시아와 마게도냐, 아가야의 제한된 지역에서 전략적으로 사역해야 했던 바울과 바나바 선교팀(바바 선교모델)과 대조를 이룬다. 그들의 특징은 유대인 디아스포라로서 태생적으로 이동성에 대해 열려 있었으며, 일상적 직업을 가지고 타문화 속에 적극적으로 파고들며, 협력적 사역을 했다는 것이다. 고린도와 에베소에서 바울과 동역했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가정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실제로 ‘바바 선교 모델’이 성공적으로 아시아와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교회 개척 운동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흩어진 사람들의 풀뿌리 선교 운동의 도움 덕분이었던 것이다.

풀뿌리 선교 운동에 대한 여러 설명이 있지만 특히 이 책 14장에 나오는 1754년에 데니와 랄프라는 재단사 직업을 가진 2명의 모라비아 형제에 의해 시작되어 1926년 7교회 13,000명의 해방된 흑인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된 남아메리카 수리남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모라비안 교회 이야기는 이러한 풀뿌리 선교 운동의 역사적 성공 사례로 아주 감동적이다.

사실, 지금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상황 때문이다. 21세기는 서구 식민 통치와 관련된 기독교 선교의 부정적 이미지와 이슬람이나 힌두교 같은 민족 종교의 발흥과 같은 여러 이유들 때문에 ‘바바 선교 모델’의 고전적 형태의 선교(Mission)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반면에 경제적 이유로 인한 인구의 대이동이 일상화되고, 세계가 지구촌이 되어가면서 신앙을 가진 이들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2014년 현재 한국내에 있는 외국인의 수만 해도 200만이 넘고, 재외 한국인도 760만에 선교지의 한인 교회만도 5,500개나 된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이야말로 로마제국 전역에 풀뿌리와 같이 흩어져서 직업인으로 살면서 일상 속에서 복음의 증인으로 살았던 1세기 교회 성도들의 상황과 흡사하다. 이제는 교회의 후원을 받고 타문화권으로 파송을 받은 선교사만 선교하는 시대가 아니라, 오히려 경제적, 직업적 이유로 흩어진 성도들과 아울러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외국인들을 일상적으로 맞닥뜨리고 있는 국내 성도들 모두가 주님의 지상명령에 성취에 동참해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21세기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거시적 선교의 패러다임을 보고, 그 변화 속에서 엘리트 중심의 태릉선수촌 식의 선교가 아니라 모든 교인이 선교에 대한 인식과 가진 교회가 되어 구체적으로 어떻게 Missional Church 혹은 Missinal life를 이루어 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아주 유익한 길잡이가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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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손님 - 예수님이 우리 집에 오신다면 IVP 그림책 시리즈 8
데이비드 짐머만 지음, 이지혜 옮김, 최정인 그림 / IVP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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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성한 삶으로 초대하는 “뜻밖의 손님”


IVP의 그림책 시리즈 8번째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혼자 사는 여자 주인공에게 뜻밖의 손님이 찾아온다. 마음과 달리 그 손님을 모시어 들인 후 그녀의 삶에는 뜻밖의 일들이 벌어진다. 먼저 집에서 사람 사는 냄새가 나게 되고 일상을 즐기게 된다.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삶에서 조금씩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그들과 인격적 관계를 맺어 가게 된다. 그러면서 고독을 당연시하던 삶에서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삶으로 한 걸음씩 내딛게 된다.


데이비드 짐머만은 이 책을 통해  ‘나르시시즘 문화 속의 영성’에 대해 말한다. 그는 프랭크 비올라의 “영원에서 지상으로”라는 책에서 역사는 하나님이 머무실 집을 찾는 이야기, 예수님이 신부를 찾으시는 이야기, 성령님이 거하실 몸을 찾는 이야기’라는 부분을 읽다가 로버트 멍어의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을 우리 일상에 좀 더 구체적으로 적용시킬 목적으로 ‘갑작스럽게’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뜻밖의 손님”을 통해 우리는 나르시시즘 문화 속에서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다.


짐머만의 글과 함께 일러스트 최정인 작가의 화사하면서도 투명한 그림을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마치 평범하지만 밝게 빛나야하는 우리의 일상을 보여주는 듯하다. 한 편의 수채화 같은 그림들을 한 장씩 묵상하다 보면 책장이 쉽게 잘 넘어간다. 그리고 다 읽고 난 뒤에도 다시 책 내용을 생각나게 만든다.


풍성한 삶은 뜻밖의 상황에서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그 분을 내 마음의 집에 모셔 들이고, 그 분의 제안을 따라 내 뜻밖으로 한 걸음씩 디뎌 나갈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분을 신뢰함으로 내 뜻밖의 삶을 살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기대되게 하는 행복한 책이다. 더불어 사는 삶의 문제로 고민하는 이웃들에게 부담없이 이 책을 소개해 드리고 싶다.


"이 서평은 출판사가 책을 제공하여 독자가 작성한 서평입니다."

"드디어 우리 집에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p31)."

"하지만 넌 그저 생존을 위해 태어난 사람은 아니란다. 인생, 바로 그 충만한 인생을 살기 위해 태어난 거야(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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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하나님의 주권 - 롬 9:1-11:36 복음주의 설교자 존 파이퍼의 로마서 강해 시리즈 5
존 파이퍼 지음, 주지현 옮김 / 좋은씨앗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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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파이퍼를 대학 강단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한 책이다. 34세의 파이퍼는 1979년 베델 대학 교수직을 잠시 내려놓고 안식년을 보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로마서 9장을 연구하고 정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로마서 9장 연구에 6개월을 보낸 뒤, 파이퍼는 하나님의 강력한 부르심을 깨닫고 교수에서 목회자로 삶이 변화되었다. 


미네아폴리스 베들레헴 교회에서 33년간(1980-2013) 목회하는 동안 그의 영혼을 강력하게 사로잡은 것도 로마서 9장 말씀이었다. 목회 33년 동안 무려 16년간이나 로마서를 강해하고 가르치는 데 기쁨으로 헌신했다. 이러한 헌신의 한복판에 로마서 9-11장의 ‘복음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깨달음이 있었다. 과연 ‘복음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어떤 깨달음을 얻었기에 그는 기독교 희락주의(Christian Hedonism)를 외치며 일평생을 기쁘게 헌신할 수 있었을까?


신실하신 주권자 하나님에 대한 깨달음 때문이다. 그의 깨달음을 살펴보자. “하나님은 주권자이시고 자기 백성에게 신실하시다. 이스라엘 백성 대부분이 메시아를 거부하고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졌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이스라엘 민족을 영적인 이스라엘로 부르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영적인 이스라엘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자유로운 선택과 주권적 역사에 대한 믿음의 반응의 결과다.”


무조건적 은혜를 주권적으로 베푸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깨달음이 파이퍼 목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기뻐하며, 그 영광을 선포하는 일에 일평생 기쁨으로 헌신하게 한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깨달음을 따라가다 보면 믿는 자로서의 정체성이 새롭게 되면서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이 무엇인지, 회복해야 할 복음의 열정이 무엇인지, 주님의 사람으로 내가 어떻게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특히, 하나님의 주권교리와 연관지어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간절함을 일깨우는 10장과 하나님 구원 역사의 큰 그림을 알아듣기 쉬운 말로 설명해주는 11장에 대한 설교들은 밑줄치고 음미하게 되는 부분들이 참 많았다. 


488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 책장을 덮으면서 그의 다른 로마서 강해서가 보고 싶게 만들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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