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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전두환 - 전2권
백무현 글, 그림 / 시대의창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 박정희'를 제법 인상적으로 본 저로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물입니다. 소름끼칠 정도로 박정희라는 인간을 입체적으로 투영한 전작과 달리, 본서는 단지 '전대갈'을 씹는 마스터베이션용 이상이 되지 않습니다. 아동에게 추천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은데 제 소견으로는 아동이 보기에 썩 적당한 책도 아닙니다. 자칫하면 "그러니까 88올림픽은 정부 차원에서 국민을 우롱하기 위한 수작이네요? 또 경상도 사람들은 왜 그렇게 한심스럽죠? "라는 대답을 듣게 될지도 모릅니다.
긴 집권기를 다뤘음에도 인물의 성장기, 공과 실을 나름대로 따져가며 압축적으로 잘 담은 '만화 박정희'와 달리, '만화 전두환'은 제목과 다르게 전두환 죽이기에만 몰두한 작품입니다. 같은 원작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선이 치우친 정도가 심하며, 박정희에 비하면 훨씬 짧은 집권기인데도 듬성듬성 빠진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전두환 집권기때 대표적 이슈였던 아웅산 묘소 테러사건도 누락되어 있으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진영의 만남으로 역사적 쾌거였던 88올림픽 개최를 오로지 정권의 3S정책으로만 결부시킨 점, 그리고 KAL기 폭파 사건을 '김대중 연설을 막기 위해' 전두환이 직접 버튼 하나로 폭파시켰다는 등의 음모론적인 내용까지 여과없이 수록했는데, 아무리 전두환의 실이 크다지만 이건 정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왜곡된 시각이라고 봅니다. 전두환이라는 인물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보다는, 단지 전두환이 싫어서 그렸다고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 기개로 표제작부터 과감하게 '악당 전두환'이라고 붙였으면 혼선이 다소 덜했을 것 같습니다.
여러 정황에 대해서는 납득할만한 이유도 없습니다. 그냥 전두환이 뼛속부터 악마의 피를 타고난 무뢰배인 것이고, 그가 대통령이 된 건 단순히 쿠데타를 주도했기 때문입니다. 전작인 '만화 박정희'의 경우 태생적인 콤플렉스 때문에 일본군을 동경하고, 독립운동가 형의 영향으로 공산당(남로당) 에도 협력하고, 그러다 한국전쟁이라는 운명의 장난 때문에 골수 우익으로 변모하는 과정이 꽤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비판의 날이 강하게 서 있긴 해도 박정희라는 인물의 행동 당위성을 설명하려는 노력이 엿보였습니다
'만화 박정희'만큼이라도 인물의 성장 배경이라든가 내밀한 서사구조를 다루었으면 좋았겠지만, 똑같은 분량임에도 '만화 박정희'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전두환이 민주화를 탄압하고 부정부패를 범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건 이미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며 이 책에서 그 이상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느끼는 악감정을 더욱 치졸하게 증폭시켜 내보내는 배출구 이상이 되지 못합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도 이 운동이 어떤 배경 하에서 무엇을 위해 이뤄졌고, 그 결실이 무엇인가에 관하여는 별다른 시선을 두지 않고 오직 피해자들이 죽어 나자빠지는 장면만을 길게 반복함으로서 '민주화 운동'이라기보다는 단순히 그냥 '맥없이 터지는 학살극'으로 비춰지게 합니다. (광주 시민들이 미국의 지원 소문을 듣고 감격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네요)
결정적으로 작화 수준이 지나치게 날림입니다.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잘 알려진 '작화붕괴'라는 용어가 이 책은 전체적으로 다 먹힙니다. 만평가인 백무현 화백의 개성이라고 보아넘기기에는 작품 분위기에 비해 지나치게 무성의한 그림체이며(만평을 보신 분은 알겠지만 만평보다도 훨씬 퀄리티가 떨어집니다) '만화 박정희'의 굵은 선을 사용한 진중하고 강렬한 그림체에 비해 초등학생 학습만화처럼 손 미끄러진대로 그린 그림은 시사적인 사안에 대해 몰입도를 떨어뜨릴 수 밖에 없습니다.
알기로는 서울신문에서 예의 '조승희 만평 사건'으로 게재가 중단된 후 공백기동안에 문하생들과 그렸다는데, 단순히 기간이 촉박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군요.
끝으로 백무현 화백에 대해 언급하자면, 요전 [조승희 총기난사 사건]때 부시가 "총기 기술의 우수성을 확인했다"는 연설을 한 만평을 그려 커다란 물의를 빚은 사람이 그이고, 사과만평이랍시고 희생자들의 영정이 모두 웃고 있는 만평을 그린 사람도 그입니다.
현지 교민들의 입장은 아랑곳 없이 자신의 악감정을 해소하고자 공중 매체를 이용할 정도입니다. 자국의 학살은 미어지듯 가슴이 아프면서 타국의 학살은 비아냥거리듯 관조하는 그에게, 외국 일간지에서 광주학살 피해자 영정들이 단체로 빙글거리는 만평을 싣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는지 알아보고 싶군요.
이 책은 가급적 이런 선입견 없이 정독하고자 했지만 역시 지독한 반미감정의 발산에 어이가 없을 지경입니다. '만화 전두환'이라는 표제의 책에서 소련 영공 비행기 격추사건에 대해, 왜 본국 정부의 입장은 싹 지워놓고 미 레이건 대통령의 함박웃음만 다뤄지는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