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둥이 야만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프랑수아 가르드 지음, 성귀수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발롬브륑의 휴머니즘이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한다.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지리학회 회원이 오지 탐험이라는 극단적으로 스릴 넘치는 도전에 나서고, 실제 사건으로 분류된 나르시스를 오스트레일리아 케이프 반도에서 조우한다. 그는 실종 처리된 프랑스인으로 오랜 기간 원주민 사이에 끼어 살며 정신적으로 온전한 상태는 아니었다. 문명권의 생활을 전부 버리고, 나체의 생활로 더럽기 짝이 없는 환경과 음식에 의존해 치명적인 적응력을 발휘한 것이다. 그는 심지어 모국어도 잃고 자아 정체성도 거의 놓아버린 상태였지만, 주인공의 등장으로 점점 언어를 되찾고 말수도 늘어난다. 그러나 오지에 있는 이상 결코 온전해질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절도죄로 그곳에 머물게 된 영국인과 함께 생활을 하며 나르시스로 이야기는 초점이 맞춰진다. 그의 변화는 실로 대단했다. 열대지역의 습기와 각종 벌레들에 시달리면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원주민의 모습도 이채롭다. 여자는 여러 장신구를 몸에 달고 살며, 남자는 문신이 독특한 자기 표현술이다. 나르시스가 그곳에 동화되었다는 증거도 그의 몸에 새겨진 문신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결국 나르시스는 발롬브룅과 함께 프랑스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창고지기로 새 삶을 연명하며 문명인으로 돌아오며 그의 소설적 포커스는 소등한다. 발롬드윙의 죽음의 모습도 다룬다. 신부 앞에 유언장을 남기고 그의 비석에는 본인을 스스로 나그네라 칭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오지 체험과 나르시스의 변화가 이 소설의 핵심이다. 제목의 흰둥이가 바로 나르시스이며 원주민 사이에서 눈에 띄었을 모습을 상상하면 정말이지 어색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이런 일이 정말 벌어졌다는 점도 신기하며, 역으로 백인들 사이의 검둥이(은유적 비유임)였다면 과연 같이 살게 내버려두었을지 의문도 든다. 아무튼 이 책은 수상에 빛나는 이유를 읽는 내내 이해할 수 있었다. 참신하고 독특하며 휴머니즘으로 인간다운 느낌이 물씬 풍긴다.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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