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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
김동진 지음 / 참좋은친구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참으로 대단한 인물이다. 그의 고향, 당시에도 상대적으로 발전한 미국의 젊은이가 23살에
조선으로 건너와 엄청난 국난을 같이 겪으며 죽는 순간까지 한국을 사랑했다. 너무 감사하다.
아쉬운 점은 역사책에서 그의 이름을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아마 수능 중심으로 외우다보니
언더우드, 아펜젤러, 헐버트 등 한국에서 뚜렷한 활동을 한 외국인을 다소 소홀히 다룬 듯하다.
주시경의 뒤에는 헐버트가 있었단 사실을 왜 안 가르쳐줬느냐 말이다. 주시경이 아르바이트했던
언론사의 대표가 헐버트였다. 그의 뒷받침 덕분에 주시경은 독립신문에 들어갈 수 있었고,
헐버트는 외국에 한국을 알리는 영문판을 담당해주었다. 한글학자로 불세출의 우수한 학자였고
한국인이 경시하는 한글의 우수성을 누구보다 빠르게 간파했다. 그는 세종대왕을 페니키아 문자를
발명한 칼무스만큼 훌륭한 인물이라고 세상에 세종대왕을 소개했다. 그는 육영학원을 담당하며
고종의 지원 하에 우수한 재원을 키웠다. 그 중에는 역적 이완용도 있었다. 그는 그를 뛰어난
학생이라고 했지만, 배신자라며 무척 노여워했다. 그는 고종의 비자금인 내탕금이 일본에
넘어간 것에 분통했으며, 한국을 끝까지 지원하겠노라고 다짐했던 미국이 일본의 식민화에
동조하자 루즈벨트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다. 당시 그에 반대했던 미국인은 힐버트 하나라고
알려져있다. 안중근도 헐버트를 최고로 인정했고, 이승만이 1945년 그를 한국으로 초청했을 때
그는 이미 86세로 아주 고된 과정을 거쳐 한국땅으로 올 수 있었다. 그는 평소 한국에
묻히기를 염원했고, 힘든 여로에 지친 고령의 육신이 그만 병이 나 한국땅을 밟은지 7일만에
숨을 거두고 만다. 그의 소망대로 한국에 영원히 잠든 그를 생각하며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하고 몹시 많은 것을 배운다. 한국 역사는 이런 수많은 선현들 덕분에 올바른 길로
인도될 수 있었다. 역사를 선택과목으로 만든 현 교육체제가 원망스럽고, 내가 배웠던
역사도 이렇게 중요한 인물에 많은 비중을 할애하지 않은 점도 화가 났다. 주시경 선생을
이야기할 때, 헐버트의 공로를 한줄이라도 써서 알려줬더라면 덜 분노할텐데, 무척
아쉽고 안타깝다. 다행인 것은 지금이라도 헐버트를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다시금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한국인 헐버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