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고요한 노을이…
보리스 바실리예프 지음, 김준수 옮김 / 마마미소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4일간 벌어진 전쟁의 참화를 이렇게 임팩트있게 기술묘사하다니, 대단하다. 소재도 참으로 신선하다. 여성과 전쟁이다. 5명의 아리따운 학생신분의 여인들은 숲속에서 하나둘 산화된다. 프리츠로 묘사되는 살인기계들이 이기적인 행태로 전쟁의 실상을 고발하며 동시에 연약한 여인들의 죽음을 통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리따의 아들을 양아들로 들여 여생을 보내는 페짜는 죄책감에 힘들어한다. 여성5명과 특무상사로 남성인 자신만으로 16명의 독일공수부대를 이겨보려고 했던 무모함에 눈물을 흘린다. 그냥 그들을 보냈더라면 말도 안되는 전력으로 전투를 벌여 아까운 목숨을 잃진 않았을 것이라며 리따에게 미안해한다. 그런 모습을 보며 리따는 조국을 위했다고 생각하라며 나지막히 그를 위로한다. 그리고 페짜가 쥐어준 리볼버 권총으로 생을 마감한다. 페짜는 여인들을 지키지 못한 남자의 무능력함에 자신의 삶을 바쳐 독일군을 소탕하리라 마음먹고 그들을 향해 간다. 그들이 숙면을 취하는 사이를 놓치지 않고 포로로 삼아 정처없이 끌고 가던 중, 체력이 다하여 기관총으로 그들을 없애고 쓰러지려던 차에 러시아어로 자신을 향해 구원의 손길을 보내는 상황을 마지하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페짜의 공격 본능은 의외로 흥미있고, 숲속을 묘사하는 작가의 솜씨는 대단하다. 늪과 모기, 여성 육체와 남성의 본능을 매력있게 섞어서 표현했다. 작가는 실제로 1924년에 태어나 2차대전에 참전한 용사다. 1924년생 러시아 남성의 97%가 전쟁에서 산화되었지만, 그는 운좋게도 살아남은 3%에 들었다. 또 정치에도 참여했으나 작가의 본업에 충실하고자 금방 그만두었고, 현재까지 작가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비극적인 전쟁을 고발하고 싶은 현실주의 소설이라 전쟁을 체감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지만 전쟁은 피해야할 최악의 선택이다. 꿈을 잃는 이유도, 삶의 종말을 맞는 이유도 가당치가 않다. 전쟁으로 내몬 여러 정황도 원망스럽고, 늘 전쟁의 피해는 민간인이 짊어진다는 점도 화가 난다. 러시아는 독소전쟁 중 3000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중 1800만명이 민간인이었다고 한다. 5인의 여인들의 전쟁참여는 현실적인 결과로서 비극을 낳았지만, 그 울림은 연약함과 대조되어 더욱 크다.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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