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혹한 친절 - 친절의 가면 뒤에 숨은 위선과 뒤틀린 애정
바버라 오클리 지음, 박은영 옮김 / 열대림 / 201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냉혹한 연쇄살인범이나 혹은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한 잔혹범죄같은 경우, 뉴스나 신문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사람들은 놀라고, 당황스러워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데 특히 당황스러워하는 사람들은 범죄자들의 이웃에 살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그들은 친절한 이웃 이였노라고. 가끔 길에서 마주치면 인사도 하고 안부도 묻던 이웃이 잔인한 사람이었단 걸 알게 된 순간 그들은 커다란 위화감을 느끼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냉혹한 친절'이란 책 제목 역시 어딘가 위화감을 느끼게 한다. 친절한데 어떻게 냉혹할 수 있을까. 그 내용은 책의 첫 장을 열자마자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유타 주의 한 마을에서, 동물 애호가이자 예술가인 '캐럴 앨든'이라는 여자가 남편을 총으로 쏘아 죽인 후 정당방위로 남편을 죽였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겉으로 보이는 사건은 흔히 보이는 배우자 학대사건으로 보인다. 하지만 책의 저자인 바버라 오클리는 겉으로 보이는 단순한 사건 뒤에 숨어있는 커다란 검은 그림자까지 심도 있게 파헤친다.

 

겉으로 보이는 캐럴은 전형적인 피해자였다. 촉망받는 예술가로서 아이들과 동물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그녀는, 어쩌다 약물 중독인 현재 남편을 만나 괴로운 결혼 생활을 이어가다 자기 방어적으로 그에게 총을 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그래, 이 여자는 분명 괴로운 삶을 살아왔을 거야' 그리고 우리는 피해자에게 한없이 친절해진다. 그리고 비록 살인사건이지만 학대받았을 여자에게 우리 사회는 선처해야만 한다고 호소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신문이나 뉴스에서 이런 사건을 접했다면 여자에게 우리의 친절을 보여줘야만 한다고 소리 높였을지 모른다. 책의 저자 바버라 오클리는 이런 우리의 단편적인 시선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일일이 지적하고 있다.

 

바버라 오클리는 사건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캐럴과 그의 주변 가족들을 인터뷰하며 이 친절한 여자를 알아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보통 사람들이 가지기 쉬운 선입견이나 함정에 대해 다각적인 이론을 제시한다. 흔히 '매 맞는 여자 증후군'이라고 한다. 남편에게 매를 맞으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여자들을 일컫는다. 주변에서 흔히 보고 듣기 때문에 우리는 그녀들에게 쉽게 마음을 열곤 한다. 하지만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결국 워커의 잘못된 과학적 접근은 전체 이슈를 다 다루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완전히 다른 차원의 새로운 문제들을 양산한 결과를 낳았다. 미국의 수많은 주에서 그녀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법률이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검찰과 변호인 측 모두가 매 맞는 여자에 대한 워커의 ‘추측’을 ‘사실’로 받아들여 왔다는 뜻이다."

 

바버라 오클리는 여러 가지 가설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며 그와 동시에 캐럴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 책이 “잘 속아 넘어가는 캐럴의 이야기가 아니라 잘 속는 우리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돌봄 강박증과 매 맞는 여자 증후군, 애니멀 호딩에 이르는 여러 가지 캐럴의 심리상태를 분석하여, 총을 쏜 그날의 사건을 눈에 보이듯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결말은? 결론은? 캐럴이 확실하게 유죄라던 지, 혹은 상처받은 피해자라는 식의 단순한 결말은 아니다. 저자의 말대로 겉으로만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에 잘 속아 넘어가는 우리들을 위한 방향을 담은 결말들이 담겨져있다. 책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내내 흥미로울 수 있었던 이유는 어느 곳에서든지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생생한 연구와 가설이 제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온갖 가설들을 이해해야만 비로소 캐럴의 사건이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바버라 오클리는 대단한 이야기꾼이자 과학자라는 것이 입증된다.

 

새로운 이야기에 목말라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자신감 있게 추천한다.

캐럴의 이야기와 바버라의 이론은 당신을 책 속으로 강하게 끌어당길 테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