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버빌가의 테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2
토머스 하디 지음, 유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이상하게도 테스를 읽는 내내, 예전에 보았던 영화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여자는 한 마디 말없이 조용하다. 천천히 일어나 아침을 먹고, 고양이를 쓰다듬어 준 다음 직장을 나선다. 일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오고 잠을 청한다. 이상할 것 없는 일상이지만, 어쩐지 소리쳐 불러보게끔 만드는 그녀의 고요한 일상 - 그녀의 일상이 테스와 겹쳐 보였다면, 이상한 일일까.

'순결' 여자를 옥죄는 사슬
이 세상에 용서받지 못할 일이 있을까?  예수님은 간통한 여인까지도 용서해주셨는데 말이다. 하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자들은 '순결'이라는 감옥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비록 내 자신이 자유롭고 싶어도 '더럽혀진 여자'라는 낙인은 평생을 유령처럼 쫓아다닌다.
테스는 자신의 과오를 첫날밤에 고백했다가 버림받았고, 정혜 역시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비참하게 끝나버렸다. 둘 다 남자들의 입장에서보면 더렵혀진 여자였고, 더럽혀진 여자는 곧, 씻지 못할 끔찍한 죄를 저지른 죄인으로 전락해버린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도 용서받지 못한 그녀들은 자신을 옥죄어오는 사슬을 벗어버리기는커녕, 더욱더 얽매여버리고 마는 것이다.

'운명'이라는 가혹한 사슬
테스는 겁탈당한 후 사생아까지 낳고, 자신의 아이가 숨을 거두는 것을 지켜보았다. 여자로서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은 모두 받은 셈이다. 하지만 그녀는 가족이 있었고, 무엇보다 목숨이 붙어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일어나 일을 찾는다. 운명은 그녀에게 가혹한 짐을 내주었지만 그녀의 미모는 변함없었고, 그래서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를 다시 만나게 된다.
정혜 역시 어렸을 때 고모부에게 성폭행 당한 일로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닫았으나, 어떤 남자를 만난 후 비로소 자신의 닫힌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 누군가를 믿고 사랑하는 일을 시작 해봐도 좋을지, 아니면 이대로 조용히 지내는 게 좋을지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진실' 그것의 의미
여자에게 '순결'이 주는 이중적인 의미는 이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작가 토머스 하디가 살았던 그 시대에만 순결이 중요했을까. 그렇지 않다. 21세기의 최첨단 시설을 누리는 현재의 우리도 여성에게 순결이라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고 강요한다. 잘못 드리워진 순결이란 것은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진실성'을 무너뜨리고 중요한 것을 바라볼 수 있는 눈마저 가려버리고 마는 것이다.

테스는 결국, 자신을 옥죄는 사슬을 '살인'이라는 이름으로 풀어냈다. 그 결과는 끔찍했지만, 사랑했던 사람과 진실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짧은 시간을 선물로 주었다. 정혜 역시 자신을 얽매는 끔찍한 과거를 없애기 위해 칼을 들고 달려가지만, 결국 자신에게만 생채기를 내고 끝내버린다. 그렇지만 그 상처와 피를 보며 그녀는 비로소 과거에서, 상처에서, 악몽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영화 '여자, 정혜'를 감상했을 때나, 혹은 테스를 읽어내려갈때 답답함을 무엇이 비교할 수 있을까. 정혜는 왜 저렇게 숨이 막힐 정도로 지루한 일상을 이어가는 것이며, 테스는 도대체 왜 첫날밤에 자신의 과오를 신랑에게 밝혔을까......라는 차가운 시선 - 그러다 흠칫 놀랐던 것은 나 역시 과거나 현재의 사람들이 가졌던 일반적인 잣대를 그녀들에게 강요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서였다.

결국, 그녀들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진리 한 가지는, 운명에 지지 않는 것이다. 잘못된 잣대를 요구하는 사회나, 주변의 시선을 벗어나 내가 나를 찾는 것! 그것이 가혹한 운명에서 나를 찾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것이 될 것이라 믿는다. 거울을 보며 속삭이는 정혜처럼 이젠 행복해질 거라고 믿는 그녀가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나아가 다른 이까지 사랑할 수 있었으리라 잠시나마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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