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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탄생 - 왜 지금 다시 토크빌을 읽는가 ㅣ 대우휴먼사이언스 23
이황직 지음 / 아카넷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민주주의의 탄생 - 이황직
이 책은 전문연구자가 일반독자들에게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의 내용과 그 의의를 상세히 소개하고자 쓴 책이다. 해설서보다 원저를 먼저 읽는 것이 여러모로 바람직할 것이라는 판단 하에 토크빌의 저서를 다 읽은 후에 이 책을 읽었지만, 이 책이 제공하는 풍성한 배경 지식과 관련 연구자료를 통하여 원저의 맥락을 더욱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어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사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같은 책을 읽고 나와 다른 생각을 한 사람이 성의를 다 해 쓴 글을 읽는 것만큼이나 흥미진진한 것도 또 없다. 이 책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아직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권할만하다. 저자는 책 전체에 걸쳐 토크빌의 원저 미국의 민주주의 1~2권의 주요 내용을 아주 충실하게 요약하고 재구성하면서 오늘날 우리들에게 이 책이 가지는 함의까지 설명하고 있는 바, 원저를 읽지 않은 이라도 이 책을 읽으면 토크빌의 사상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본다.
저자의 설명을 통하여 토크빌이 왜 대단한지를 비로소 알게된 부분도 적지 않았다. 그는 기존 사회계약론자들과 토크빌과의 비교를 통하여 토크빌이 사회이론에 있어서 어떤 혁신을 이루었는지를 명징하게 드러낸다. 홉스와 로크와 같은 사회계약론의 원조 학자들은 어떤 이상적이고 가상적인 사회계약을 통하여 국가가 만들어진다는, 일종의 모델 제시를 통하여 정치 이론을 전개했지만, 토크빌은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국가의 자연환경, 지리, 역사, 법제도, 습속(mores), 사회상을 철저하게 탈탈 털어서 현실에 기반한 정치 이론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선학들을 크게 뛰어넘었다는 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러한 광범위하고 완전한 연구를 통하여, 토크빌은 아무리 좋다는 정치체제나 법제도라도 아무데나 꽂는다고 다 잘되는 게 아니라는 진리를 찾아낸 것이다. 미국의 민주주의 체제가 성공적이었지만 이는 미국이 처한 환경과 역사가 그러한 체제에 굉장히 유리하게 작용했으며, 특히 미국인들의 습속이 미국인들의 민주주의 체제에 잘 맞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토크빌은 발견했다.
이처럼 한 국가의 정치가 잘돌아가게 하는 여러가지 요인들 중 토크빌이 가장 중요하게 꼽았고, 이 책의 저자도 또 한번 강조한 요소는 바로 습속(mores)이다. 기본적으로 법제도가 워낙 좋기도 했지만, 당시 미국은 기본적으로 잃을 재산이 있는 중산층들이 절대 다수를 이루면서 나라가 잘 되는 것이 결국 내가 잘되는 길이라는 '올바르게 이해된 개인주의'를 미국인들이 체화하고 있었기때문에 혼란 없이 민주주의가 잘 운영될 수 있었다고 한다. 반대로 혁명 이후의 프랑스 국민들이 선동가들에 휘둘리면서 다수의 이름으로 온갖 폭거가 저질러지고 있었던 것은 프랑스인들에게 이러한 습속이 탑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대 프랑스처럼 정치가 극단으로 가지 않으려면 사회구성원들이 서로를 배려하는 정신이 기본적으로 깔려있어야 하는데, 미국의 경우에는 종교가 그러한 공동체 정신을 배양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또한 미국인들은 미국이 건국되기 200년 전 식민지 초창기부터 이미 지역 자치를 통하여 시민들이 지역 공동체에서 공적인 역할을 직접 수행하면서 그 효과를 체험하는 참여민주주의 전통이 자리잡고 있었기때문에 시민 개개인이 정치적 자유(liberty)를 책임있게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렇게 이상적인 모델에 근접했던 200년전 미국 민주주의의 모습은 오늘날 미국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이 책의 저자가 말미에 지적한 것처럼 미국사회의 빈부격차가 워낙 심해졌고, 사회의 중심을 잡아주던 종교가 어느새인가 보수주의 정치이데올로기의 본산으로 변질된 것이 현재 미국의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게된 주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저자는 미국의 정치적 자유에 대한 믿음과 헌법질서를 존중하는 문화로 인하여 미국에 크게 위기가 찾아오지는 않을 거라고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책이 거의 다 끝나가는 말미의 이 부분부터 저자와 나의 생각이 많이 갈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저자의 낙관과는 달리 나는 미국의 빈부격차가 워낙 급격해졌고, 토크빌이 이 책의 대전제로 깔았던 '평등'이라는 요소가 이제는 힘을 잃고 있다고 보기에 미국은 큰 위기를 맞고 있다고 본다. 빈부격차는 정치적 의견과 입장까지 양극화시켰으며, 결국 미국 역시 트럼프와 같은 선동가가 등장하여 헌법을 스트레스테스트 한 바 있다. 최근 대선 직후 트럼프지지자들이 연방의회에 난입하여 난동을 부린 장면은 미국의 위기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빈자를 보호하는 미국의 복지체제가 취약한 것이 미국이 작은 정부와 '자유'를 추구하기 때문이라며 현재 미국 시스템을 변호하지만, 이러한 체제가 낳은 빈부격차가 민주주의 그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는 문제는 무시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는 이 책의 저술시점이 2018년이라는 점에도 기인하긴 하겠지만...) 토크빌이 이야기한 정치적 자유(liberty)는 사회적 책임과 동전의 양면에 있는 개념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공동체가 잘 될 수 있도록 공적인 일에 참여할 수 있는 자유가 토크빌이 말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치적 자유라 할 수 있으며, 이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자유 - 부자와 독점자본이 세금 안내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 - 와는 분명히 다른 개념이다.
책의 가장 끝부분에 나오는 우리나라 현실에 대한 토크빌의 함의 부분에 있어서도 기대에 못미치거나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앞서 언급한대로 토크빌 이론의 강점은 민주화가 성공할 수 있는 요인들, 특히 그 중 가장 중요한 습속이라는 부분에 대한 분석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 대한 토크빌 이론의 함의를 생각할 때도 우선적으로 우리나라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과 그로 인하여 형성된 우리나라 국민들의 습속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했지만, 그런 부분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것이 우선 실망스러웠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들의 습속은 토크빌 당대 미국 시민들의 그것에 비해 그 수준이 한참 떨어진다고 여겨진다. 당대 미국처럼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도 평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무한경쟁을 통하여 남을 이길 생각만하지 함께 잘 사는 법을 강구하는 데는 별로 익숙하지 않다. 나라가 잘되는 것이 결국 내가 잘 사는 길이라는 옛날 미국인들의 '올바른 개인주의에 대한 이해' 개념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희박하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그저 내 밥그릇 뺏지 않고 나한테 이득이 되는 정책을 쓰는 정치인에게 표를 줄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 스스로 뽑은 정치인을 욕하는 것으로 낙을 삼는다. 옛날 미국처럼 어려운 사람을 돕도록 권하는 종교가 사회의 버팀목 역할을 하면 좋겠지만, 우리나라의 종교는 국민을 계도하기는 커녕 오히려 국민들의 사사로운 욕망을 비추어주는 거울일 뿐이다. 이러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습속과 이를 바로잡을 방법에 대해서 어느정도는 다루어질 줄로 기대했는데 이 부분이 빠져있어 실망스러웠다. 저자가 우리나라에 대한 토크빌 이론의 함의로 제시하는 것은, '자유'를 중시하라는 것, 큰 정부를 경계하라는 것 뿐이다. 저자는 신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대로 비판하지만, 빈부격차, 양극화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서 정부가 커지는 것을 자유의 축소로만 이해하는 양비론적, 이율배반적인 스탠스를 취한다. 국민이 참여하는 '공공부문'에서 빈부격차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하지만, 그 '공공부문'이 정부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재분배를 주장하는 진보정권은 비대하고 비효율적이며 독재권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저자의 (평소?) 보수적 시각이 이 부분에서 은연중 드러난다. 토크빌의 정치이론은 좌, 우 어느쪽에서도 논거로 활용 가능하다는 점을 배우는 부수효과는 있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쩌다 책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게 되었는데... 이는 책 내용 중 극히 일부에 대한 사견일 뿐이니 참고만 하시고,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1부에서 3부까지 내용은 매우 알차니 꼭 읽어보시라는 말씀으로 글을 마칠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