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에 놀러 왔나봐.”

 

마치 어제 만난 사람처럼 말을 건넸다. 술에 취한 듯 약간 비틀거리는 이지로는 야비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클럽에 올 복장은 아니었다. 정장에 넥타이까지 맸다.

 

“수한테 들었어요. 같이 일한다죠.”

 

이지로가 다소 놀란 듯 혜신을 봤다.

“맞아 니가 친구였구나. 이런 우연이 있나. 역시 비슷한 애들은 비슷하게 만나는 법인가봐.”

 

“요즘도 무슨 프로젝트 중이라죠.”

 

“수가 그런 것도 이야기하던가?”

 

“이번엔 대부업 같은 건 아니라며 좋아하던데요.”

 

“너도 대부업 광고나 해주는 업자라고 우습게 아는구나.”

 

이지로가 이를 드러내며 한층 더 비열하게 웃었다.

 

“그런 적은 없어요. 과거는 과거고 일은 일이니까.”

혜신이 인사도 없이 돌아섰다. 다시 자리로 돌아오자 1층 스테이지에서 여전히 몽과 유진 이 어울려 춤을 추고 있었다. 혜신이 말없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지로가 어느새 다가와 있었다.

 

“친구들 말이야. 참 독특해. 난 너도 꽤나 독특하다고 생각했지.”

 

“내 개성 같은 건 안중에서 없었어요.”

 

“네가 생각하는 개성과 내가 발견한 개성이 좀 달랐지.”

 

“내가 생각하는 건 들어보려고도 안했죠.”

 

“물론 그랬지. 그건 유치한 발상이었으니까. 안 그래? 이제 시간이 흘렀으니까 알 때도 되지 않았나? 아마추어란 자신이 가진 뭔가를 쥐고 놓지 않는 사람이란 걸 말이야.”

 

이지로는 테이블에 앉아 았는 혜신에게 등을 내보인 채 난간에 기대어 스테이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너도 실패했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깨끗하게 실패했지. 그러니까 너무 몰아세우진 말아줘. 너를 이용해 성공한 것도 아니잖니?”

 

이지로가 그 자세 그대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다시 말하지만 넌 확실히 눈에 걸리는 구석이 있었어. 그 시절 사장은 널 그저 그런 광고모델정도로 생각했지만 말이야.”

 

이번엔 이지로가 혜신을 두고 먼저 자리를 떴다. 이지로가 완전히 사라진 후 둘의 만남을 지켜보았던 수가 자리로 돌아왔다.

 

심야의 술집 테이블은 어느새 오디션장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피티를 앞두고 이지로도 가만히 있을 수만 없었다. 자신도 홍대나 트랜디한 지역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이지로가 앉아 있는 맞은 편엔 수와 몽과 혜신 그리고 유진이 나란히 앉았다.

 

이지로의 눈길을 끈 건은 단연 유진이었다. 수는 혜신과 불편한 관계의 인간임을 진작알고 있었지만 유진은 이제야 냄새를 맡은 듯 보였다. 혜신은 거의 정신을 잃고 테이블 위에 엎어진 상태였다. 간단한 인사 후에 몽과 유진이 혜신을 부축해서 클럽을 나가는 동안 수와 이지로만 테이블에 남았다.

 

“우리 중 누군가를 광고 모델로 쓰겠다는 건가요?”

 

“글쎄, 흥미는 있어보였어. 후보로 말이야.”

 

“그건 우리의 진면목은 아닐 텐데요.”

 

수가 당차게 되받았다.

 

“진면목? 그래? 그럼 어떤 모습이 진면목이지? 노래 부르는 모습? 연주하는 모습?

음반은 내봤나? 오디션 프로에 나가서 생방송이라도 해본건가?“

 

이지로가 쏘아 부쳤다. 그도 술에 많이 취한 듯 보였다.

 

“아니요. 어쩌면 그쪽이 말씀하신게 우리의 진면목일 수도 있어요,”

 

유진과 혜신을 보내고 다시 들어온 몽이 끼어들었다.

 

“그래? 진면목이라면?”

 

“우리들이 놀던 모습이요.”

 

이지로는 너털 웃고는 담배를 물었다.

 

“어쨌든 난 검은 옷의 그 아가씨가 눈에 띄었어. 어떤 에너지가 특별하다고 느꼈지. 자네도 꽤 재밌는 캐릭터고 앞에 있는 이 친구는 내가 좀 아는 친구인데다 쓰러졌던 그 아가씨도 잘 알고 있지.

난 자네가 뭘 하는지 뭘 말하고 싶은지는 몰라. 솔직히 말해 관심도 없어. 세상이 그렇지 않아? 단지 보이는 것만 본다고.“

 

“아까 그 모습이 우리의 진면목이죠. 아직 밴드를 만든 것도 아니고. 세상에 내놓을 곡이 있는 것도 아니죠. 그저 하루하루 즐겁게 노래 부르고 사는 것, 그 정도밖엔 아직 할 줄 아는게 없어요.”

 

“솔직해서 좋구만. 그래 어쨌든 그런 걸로도 세상에 내보일 것이 있다면, 그거로도 훌륭하지 않아? 수와 잘 이야기해 보라구.”

 

이지로는 남은 맥주를 들이키더니 몽과 수를 남겨두고 그대로 밖으로 사라졌다.

 

 

5

 

혜신의 집은 겨우 두 번째인데도 낯설지가 않았다. 유진은 혜신을 겨우 침대에 눕히곤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실 나 다 듣고 있었어. 잠들었던 게 아니라.”

 

혜신이 웅크린 자세를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

 

“그 사람 너랑 꽤 불편한 관계였나 봐.“

 

“자신은 대단한 기획가라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다 속물이었어.”

 

“어떤 뜻에서?”

 

“사장과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언젠가 나를 보고 관심을 가졌나봐. 근데 이지로 그 사람이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데리고 가는 거야. 알고 봤더니 사장과 그 친구가 술을 마시는 자리였어. 물론 나에게 술을 따르라는 둥 그런 일은 시키지 않았지.”

 

“그럼 뭐가 문제였지?

 

“사장이랑 이지로가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어. 그 사람과 둘만 남게 된 거지.”

 

“암묵적인 접대명령?”

 

“그런 거 같아. 그때가 내가 속한 팀이 슬슬 프로젝트에서 배제되기 시작할 무렵이었어. 어쨌든 그들이 나를 마지막으로 활용할 용도를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지. 어쩌면 내가 그 사람을 스폰서 삼기위해 적극적으로 술도 마시고 잠자리까지 가는 그런 걸 당연하게 생각했는지도 몰라. 내가 그땐 세상물정을 몰랐지. 그게 나에게 주는 암묵적인 기회인지도 모르고.”

혜신은 머뭇거리더니 결론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만 질문으로 자신의 뒷이야기를 비껴갔다.

 

“언니도 어지간히 속물들에 꼬이지 않았어?”

 

“난 이런 적이 있었지. 그땐 직장도 없었고 먹고 살기가 빠듯했어. 면접을 봤는데 사장이란 사람이 인상이 나쁘진 않았지. 그런데 그 사람 채용하겠다는 말을 안하고 나에게 은밀한 제안을 하는 거야. 난 직감적으로 성매매 같은 걸 예상했지. 결과는 뭐 비슷했지만 좀 특이했어.

 

“일반적인 성매매는 아니었다는 건가?”

 

“섹스는 하지 않겠다. 몸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그럼?”

 

유진이 좀 황당하다는 지으며 입을 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