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연주가 시작되었다. 비주얼들과는 달리 연주만큼은 기계처럼 정교했다. 마치 수 십 년을 맞춰온 밴드처럼 자연스러웠다. 초반에는 70년대 하드록 밴드들의 곡들을 연주했고 뒤로 갈수록 자신들이 만든 곡들을 연주했다.

 

마지막 곡은 경쾌하고 직선적인 느낌에서 벗어나 몽환적이고도 음울한 느낌의 해먼드 오르간의 연주로 시작했다. 악마를 모셔오는 듯한 엄숙함이 지하공간의 밑바닥까지 낮게 가라앉았다. 딥퍼플의 명곡 ‘차일드 인 타임(Child in time)'이었다.

 

중반 이후부터 보컬은 ‘우~우우’와 ‘아~아아’와 같은 흐느낌만으로 노래를 채웠다. 키보드의 반주는 점차 음역대를 높여가며 동일한 멜로디 라인을 연주했다. 키보드가 마치 보컬의 발성연습을 시키는 것 같았다. 멈추지 않는 키보드의 행진이 보컬의 에너지를 마지막까지 짜내려 했다. 보컬의 음은 ‘우우우’ 같은 읊조림에 가까운 흐느낌으로, 중반엔 절규로 바뀌었고 후반부엔 비명에 가까워졌다. 보컬은 초고음역대에 이르자 노래를 멈췄다. 상승을 멈추지 않는 악기들만이 연주를 이어갔다. 저 나이에 저런 음역대를 소화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매번 저렇게 실패하면서도 연주는 계속되었을 것이다. 또한 앞으로도 연주는 계속될 것이다. 키보드 주자는 곡의 흐름을 바꿔서 베토벤의 ‘엘리제의 위하여’를 연주하는 것으로 여유를 부렸다.

 

마지막에는 격렬한 기타 솔로 연주가 있었다. 파워와 몰입도에 있어서 리치 블랙모어가 연주했던 원곡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유진이 알고 있다던 기타리스트를 수는 유심히 보았다. 노쇠해가는 육체 속에서도 날카로운 연주는 전혀 빛을 잃지 않았다. 물리적인 노쇠는 피할 수 없지만 정신의 젊음은 단지 열심히 부지런히 닦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한바탕 공연이 끝났다. 관객과 뮤지션이 따로 없었다. 듣는 사람이 곧 연주자가 되고 연주자는 곧 듣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수 일행처럼 듣기만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문제될 것은 없었다.

 

정식 공연 이후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도 있었고 무대에 올라와 부르고 싶은 곡을 부르거나 즉석 잼을 하는 밴드도 있었다. 유진이 구면인 기타리스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기타리스트 역시 유진을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그런 인연으로 그 팀과 수 일행이 합석하게 되었다.

 

그들은 ‘노인과 바다’로 불렸다.

 

헤밍웨이의 작품에 나오는 노인처럼 얻는 것은 없지만 끝까지 사투를 벌이는 모습이 비슷했다. 그 이름이 정식 밴드명은 아니었다. 그들은 오랜 시간 밴드를 이뤘지만 정식 밴드명은 없었다.

 

“그렇게 어려운 곡에 도전하는 이유가 뭐예요?”

 

멤버 중 가장 무게감 있어 보이던 베이시스트가 대답했다.

 

“그래, 그건 확실히 우리 나이에 무리야. 하지만 악착까지 부르지. 오기 같은 거야.”

 

“무엇과 그렇게 싸우는 겁니까?“

 

수가 물었다.

 

“뭐? 음악 하는 놈들이 싸우긴 왜 싸워? 그냥 즐기고 놀지. 그렇게 목이 안 따라주는 현실까지도 즐기는 거야. 왜? 나이든 게 서글퍼 보여? 그러고 보니 우리가 싸우는 대상이 있다면 즐거움을 방해하는 것들이지.”

 

“싸운다는 것도 말은 되지. 어쩌면 우리 인생은 싸움으로 점철된 거야. 그냥 놀려고 해도 세상이 우리를 놀게 내버려두지 않지.”

 

보컬의 대답에 드러머가 맥주 뭍은 입가를 닦으며 끼어들었다.

 

“정말 논다는 게 뭔지 아나?”

 

구석에서 무게를 잡으며 말을 아끼던 보컬이 무거운 입을 열었다.

 

“논다는 건 그냥 이뤄지는 게 아니란 말이지. 진짜 놀이엔 슬픔이 서려있어. 광대의 웃음에 슬픔이 있는 것처럼 말이지. 그런 슬픔을 딛고 노는 것이 진짜 놀이야.”

 

혜신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기분 날 때만 놀아선 안 된다는 거지. 논다는 건 신념에 가까운 거야. 기쁘나 슬프나 화날 때나 배고플 때나 배부를 때나 언제나 노는 거야. 늘 노는 상태에 있는 거야. 그러다 보면 어떤 환경에 있더라도 놀 수 있는 법을 배우지.”

 

“왜 그렇게 노는 거에 매달리세요?”

수가 묻자 보컬이 한숨을 쉬며 길게 담배를 뿜었다.

 

“이런 멍청이 같이. 지금껏 뭘 들은 거야! 노는 게 인생의 전부라니까.“

유진의 눈에 기타리스트의 안색은 예전 보다 좋아보였다.

 

“좋은 친구를 둔거 같아.”

 

“아저씨도요.”

 

“그런 게 재산이지. 우리처럼 별로 가진 게 없는 사람들에겐 말이지.”

 

“행운이죠. 그러니까 세상은 공평한 거죠?”

 

노인은 웃으며 말했다.

 

“그걸 벌써 깨달아버린 거야?”

 

“그런데 왜 그땐 홀로 거리로 나오셨어요?”

 

“우리에게도 이런 저런 이유로 위기가 찾아오지. 늙으나 젊으나 갈등은 있기 마련이지. 우리 팀도 한동안 방황을 많이 했었어. 돈벌이나 하고 살자는 생각도 했고 그래서 거리를 떠돌아본 거야. 물론 젊었을 때도 그랬지만 나이가 먹어도 철이 들지 않나봐. 늘 사는 게 그래.

 

“늙은 날의 방황, 나쁘지 않은데요.”

 

“그런가?”

 

“굳어버리는 건 슬픈 일이니까요.”

 

“하긴, 이젠 손가락도 예전 같지 않아.”

 

젊은 노인이 왼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웃었다. 유진이 기타리스트와 떠드는 사이 수와 혜신 ,몽이 나머지 멤버들과 질펀한 술자리를 이어갔다. 노인들이 사라지자 술기운이 오른 아이들은 마포에서 홍대로 넘어갔다.

 

4

 

레이저 불빛이 현란한 무대 가운데로 몽이 모습을 드러냈다.

꽁지머리에 페도라를 썼다 벗어다하는 실루엣이 마이클 잭슨처럼 보였다. 유진이야 그 정도 술에 끄덕도 없었지만 혜신은 꽤 취해버렸다. 반복되는 리듬과 비트가 빠른 트랜스 음악 속에서 스테이지에 나온 사람들은 춤이라기보다 퍼포먼스에 가까운 행동을 보여줬다. 전위 예술가들의 집합소 같았다. 몽이 몸을 흔들며 이층에 자리 잡은 일행들을 향해 내려오라는 손짓을 했다. 갑자기 수의 등짝을 때리는 손이 있었다. 유진이었다.

 

“이렇게 자리나 지킬 거면 오지도 않았을 거야.

 

유진과 수가 스테이지로 내려왔다. 마치 펄프픽션의 존 트라볼타가 우마서먼을 향해 다가오는 것처럼, 몽이 장난스럽게 고개를 들이밀며 유진에게 다가오자 유진도 느끼한 눈빛을 일부러 만들어 보였다. 그리곤 몸을 대책 없이 흔들기 시작했다. 별명이 ‘미친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수가 보기에도 둘은 확실히 자신에게 몰입하는 힘이 보통 사람들에 비해 몇 곱절은 강했다. 몽이 미친놈으로 불리진 않았던 건 유진의 몰입감이 한 수 위였기 때문일 것이다. 유진은 짧고 타이트한 검정색 티셔츠 자락을 살짝 쥐고는 마치 배꼽을 드러낼 것처럼 들어올렸다. 풍성한 머리를 살짝 흔들기도 하다가 감정이 오르면 과감하게 머리를 흔들어댔다. 그녀가 뿜고 있는 내면의 에너지까지 더해지니 신비스런 아우라가 움직이는 그녀의 둘레를 감싸고 있었다.

 

몽이 장난스런 모습에 머문 반면 유진은 좀 기괴하고 파괴적인 면이 있었다. 몽과 유진이 아슬아슬한 퍼포먼스를 펼쳤다. 몽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몽은 유진의 허리를 부여잡기도 했고 스키니한 청바지 라인을 손으로 쓸어내리기도 했다. 유진이 킥킥거리는 몽을 향해 니킥이라도 하듯 몽의 배를 향해 무릎을 들어 올리자 몽이 얼른 유진의 다리를 잡아 자신의 허리에 붙였다.

 

가까이선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적당한 거리에서 보면 둘은 옥신각신하며 충분히 즐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스테이지 주변을 서성이며 둘의 춤에 한동안 정신이 팔려있던 수가 문득 2층의 테이블을 올려다 봤다. 혜신이 보이지 않았다.

혜신은 자신의 어깨에 손이 닿자 재빨리 뒤를 돌아봤다.

거기엔 단박에 술을 깨울만한 인물이 서있었다. 요즘 원수는 화장실 앞 복도에서 만나는 건지도 몰랐다. 혜신의 눈앞에 있는 건 한때는 자신의 매니저였던 이지로였다. 혜신이 한동안 말없이 그를 보는 동안 이지로는 천천히 담뱃불을 붙이는 여유를 보였다. 담배연기를 그녀에게 훅 뿜지 않은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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