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로는 혜신이 소속되었던 기획사의 매니저 겸 마켓팅 실장이었다고 했다. 당시 회사에선 신인급을 모아 새로운 컨셉의 걸그룹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그룹의 컨셉과 마켓팅을 이지로가 담당했다. 소속사에 계약된 신인들 중에 이지로의 눈에 든 인물은 모두 네 명이었다. 그중 한명이 혜신이었다. 당시 혜신은 모델로 활동하며 자신의 음악적인 열정을 바탕으로 밴드에 소속되길 바랬다. 이지로는 달랐다. 철저하게 시장중심이었다. 그의 눈에 들어왔던 건 혜신이 가진 그림자가 드리워진 미모였다. 활짝 웃는 모습보다 무표정한 얼굴에서 매력을 찾았다. 이지로가 뽑은 넷은 끼가 있어 보이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차라리 청순하고 자연스러운 쪽이었다. 아마 이지로는 이미지와 충돌하는 파격적인 노출과 퍼포먼스 같은 걸 생각했던 것 같았다.

 

그는 자주 ‘레이디가가’를 언급하곤 했다고 했다.

 

“레이디가가에게 음악은 무슨 의미 같아? 솔직히 말해, 그녀에게 음악은 퍼포먼스를 위한 배경일 뿐이야. 무엇을 들려줄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의 문제. 그게 지금의 음악시장이라고.”

 

그녀들에게 직접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그와 함께 일하던 스텝들과 하는 이야기를 혜신은 자주 들었다고 했다. 맨발로 무대 위에 서는 것. 바디슈트를 입는 것. 그런 눈에 보이는 것에 관심을 가졌지만 정작 귀에 들리는 음악에 관해선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혜신은 그녀들을 위한 첫 곡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강한 반감을 느꼈다.

 

그가 음악에 접근하는 방식은 광고와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제품의 강점과 기회요인들, 현재의 트랜드 등을 분석하여 작곡가에 넘기면 작곡가는 그에 맞는 최적의 곡을 뽑아내는 방식이었다. 철저한 계산에 의한 제작이었다. 사실 충격적인 일도 아니었다. 이미 음악시장은 그러한 니즈와 시장분석을 바탕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일부 인기 작곡가에게 작곡이란 개인적인 감성을 승화하는 작업이라기보다 목적에 부합하는 음원을 개발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옳았다.

 

혜신이 수에게 털어낸 이지로와의 이야기는 그쯤에서 마무리 되었다. 혜신을 태우러 온 광역버스가 그들 앞에 멈춰 섰다.

 

이지로에 대한 혜신의 평가는 객관적이었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칭찬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를 악한으로 평가하지도 않았다. 그와 일하는 것을 말리지도 않았다. 다만 과거의 이야기였다. 이지로와의 광고피티 작업은 계속 되었다.

 

“종이 한 장에 아이디어 하나씩을 적어. 그래야 하나의 완결된 아이디어가 되는거야.”

 

큰 피티를 처음 접하고 어떻게 아이디어를 내야 좋을지 몰라 당황하는 직원들에게 이지로는 선생님의 역할까지 겸했다. 때론 회사의 직원들과 아이디어 회의를 했고 때론 수와 단 둘이서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수십 가지, 수백 가지 아이디어가 쏟아졌지만 이지로는 거의 반응이 없었다. 아니 반응하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그냥 듣고 흘려버리기를 반복했다.

 

“참 이상하지. 광고란 딜레마야. 광고를 하기 위해선 수많은 다른 광고들을 보게 되지.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광고의 참신함이 없어져. 어디서 본 거 같거든. 그렇다고 전혀 광고를 모른 채 아이디어를 낼 수도 없고 말이야.”

 

수가 보기에도 그랬다. 자신도 모르게 기존 광고의 흉내를 내고 있었다. 아이디어에 힘을 주면 줄수록 어디선가 본 듯한 아이디어였다.

 

“정말 새로운 걸 찾는다는 게 어렵군요.”

직원 중 한 명이 한 숨을 몰아쉬었다.

 

“이제 시작일 뿐이잖아?”

 

이지로가 담배를 폐부 깊숙이 빨아들였다 뿜었다. 느슨하게 떠다니던 연기가 환풍기 입구에 다다르자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머리가 멍해졌는지 모두들 사장이 뿜어대는 담배연기의 흐름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다.

 

“뭐,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겠지. 내안에 있는 다른 누군가가 일하려면. 오늘은 이만하자.“

이런 패턴이 일주일째 반복되고 있었다. 그날도 시간이 자정을 넘어서고 있었다.

 

2

 

수는 이지로로부터 당분간 회의는 없을 것 같다는 문자를 받았다. 한 달 남은 피티에서 일주일이 지났을 뿐이다. 어쩌면 그의 말대로 당분간은 내면의 누군가를 불러내기 위한 시간이 필요할 지도 몰랐다. 이제 낮이면 지하실에서 기타를 치고 밤이면 광고 일을 하던 패턴이 예전처럼 하루 종일 지하실에서 보내게 되는 걸로 바뀌었다.

 

수가 일을 잡는 동안 몽도 일을 시작했다. 녹음실에서 보조로 일한다고 했다. 음악 쪽은 아니고 어학관련 교재를 만드는 곳이라 했다. 그곳에서 1년만 있으면 영어는 물론이고 5개 국어는 할 줄 알게 될 거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수가 낮에 연습실을 지키고 밤에 일하는 스타일이라면 몽은 낮엔 일했고 밤엔 연습실에서 작곡을 하거나 놀았다. 가끔 혜신이 찾아왔고 강호나 모히칸 등이 연습실을 찾는 것 외에 큰 변화가 생겼다. 유진의 등장이었다.

 

수에게 유진은 신기한 존재였다. 그녀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 수가 혼자 남은 이 곳에 처연하게 들어와서는 혼자 노래를 불렀다. 좋게 말하면 몰입도가 대단했으며 나쁘게 말하면 어딘가 정신적으로 정상이 아닌 듯 보였다. 한동안 그렇게 노래를 부르고 나면 수에게 다가가서는 이것저것 맛있는 걸 먹자며 치근거리기도 했다. 마치 누나가 동생 대하듯. 난장판이었던 연습실도 유진의 등장이후 정리되기 시작했다. 각종 식기와 팬들은 윤이 나도록 닦아놓았고 밑반찬들도 떨어지지 않았다.

 

유진, 몽, 수의 공통점은 먹고 사는데 필요한 행위와 음악적인 행위를 함께 병행한다는 것이었다. 그건 원칙이긴 했지만 누구의 강요도 아니었다. 모두 스스로 움직였다. 찾아오는 사람들은 줄어갔고 술판이 벌어지는 일도 이젠 거의 없었다. 초반에 들떴던 분위기는 상당히 가라앉고 일정한 패턴이 지하의 하루를 관통해 갔다.

 

진지함이란 관념적인 태도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진지함은 매일 살아가는 태도에서 길러지고 묻어나왔다.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움직이고 당장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였다.

 

유진의 등장이후로 셋은 좀 더 삶에 진지하게 다가서는 것을 느꼈다. 여전히 그들이 노래를 부르고 곡을 짓고 기타를 치는 건 놀이였다. 혼자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유진은 악기를 연주해주는 세션이라는 무기를 얻었다. 그녀가 노래를 부르면 수의 기타와 몽의 드럼이 힘을 보탰다. 외롭던 음악이 입체적으로 풍성해지는 느낌. 그것만으로도 유진은 세상을 얻은 것처럼 행복했다.

 

때론 몽이 작곡한 곡을 연주해보기도 했다. 유진이 즉석으로 가사를 붙여서 부르곤 했다. 연주를 거듭하면서 서로의 소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쯤이었다. 전체적인 음악의 톤을 이끄는 수의 기타는 예전과 비교해 많이 노련해졌음을 몽이 감지했다. 몽의 작곡에 가끔 재미있는 패턴과 멜로디가 있다는 건 유진이 알아냈다. 유진의 음색이 지금과는 달라질 수도 있겠구나 하고 느낀 건 수와 몽이었다.

 

유진이 없을 때 둘은 곧잘 그녀에 관한 이야기했다. 마치 매니저나 된 것처럼.

 

“목이 좀 상한 것 같지 않아?”

 

“그런 것도 있지만 목소리의 톤이 달라져야 할 것 같아.”

 

“조금 힘을 빼고 불러보면 어떨까?“

 

몽이 가볍게 한마디 하자 수가 조금 진지하게 따라붙었다.

 

“부르는 곡의 스타일을 바꿔 보는 건?”

 

“지금처럼 내지르는 창법보다 어쩌면 중저음을 많이 쓰면서 속삭이듯 말하는 스타일이 더

잘 어울릴지도 몰라. 좀 더 러블리한 목소리가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지“

 

러블리라는 말에 수는 몽을 쏘아봤다. 언제부터인가 몽이 유진을 바라보는 시선은 심상치가 않았다.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이 눈에 보였다. 평소 때나 연주를 할 때나.

 

“사심으로 하는 말이 아니야. 가만히 들어보면 마치 세상과 싸워보겠다는 목소리야. 내말은 싸우는 것도 좋지만 사랑받는 느낌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도 있잖아?”

 

“혹시 오디션에 도전할 생각은 안 해 봤을까?”

 

“안 해 봤다면 거짓말이겠지. 기획사에 픽업되면 그렇게 되기만 하면, 그래서 열심히 하기

만 하면 그쪽에서 어떻게든 알아서 해주지 않을까, 이런 생각 많이 했겠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서 멘토를 만나면 좀 더 수월하게 나설 수도 있겠지. 그런데 아마 그럴 거야. 앞에서 고개 숙이면서 평가 기다리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니까.”

 

“그럼, 도대체 최종 목표는 뭐야?”

 

몽이 잠깐 생각에 잠긴 듯 하다 입을 열었다.

 

“런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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