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에서 노년으로 접어든 사내였다.

검은 머리와 흰머리가 반반이었고 길게 늘어뜨리기도 했지만 대부분 단정하게 묶고 다녔다. 차림새는 허름했다.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보였다. 다만 그가 보유한 기타만큼은 엄청난 관리를 받은 듯 보였다. 일반 기타보다 통이 크고 붉고 갈색 빛이 도는, 유려한 곡선을 가진 기타였다.

 

기타에서 따뜻하고도 몽롱한 소리가 났다. 저것이 재즈기타구나. 유진은 자신의 곡을 부르다 남자의 연주를 듣곤 했다. 남자는 그저 기타를 칠 뿐 목소리는 내지 않았다. 그가 쏟아내는 선율은 빠르고 흥겨웠다. 복잡하게 손가락을 벌려서 연주하는 재즈의 코드는 즐겁지도 슬프지도 않은 묘한 감정들로 채워져 있었다.

 

둘의 공통점이 있다면 앰프를 쓰지 않는 것이었다.

둘은 주변의 반응보다 자신의 소리에 더 집중하는 듯 보였다. 둘은 목요일 저녁이면 거의 같은 시간에 나타나 같이 연주를 시작했다. 한 달쯤 지나자 둘은 각자 연주를 하면서 서로의 음악을 감상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상대편에게 박수를 보내는 일도 잦아졌다.

 

그날도 연주가 끝나고 돌아가려는 참이었다. 유진이 먼저 자리를 뜨는 경우가 많았다. 항상 기타케이스를 접고 간단한 눈인사를 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그날따라 남자는 소주 한병을 꺼내 유진에게 내밀었다. 유난히 사람들이 없던 월요일 저녁이었다. 유진이 편의점으로 달려가 간단한 안주거리를 사왔다. 둘은 서로가 차지한 공간의 정확히 절반이 되는 지점, 나무 아래에 주저앉아 소주를 나눴다.

그날따라 무슨 일인지 정말 사람이 없었다.

 

“소리를 들어보니 노래 부른지 꽤 된 거 같던데.”

 

“기타소리가 정말 예뻐요.“

 

음악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장황한 수다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남자는 젊은 여자와 술을 마신다는 것이 즐거운 듯 작은 눈은 반달을 그리고 있었다.

 

“요즘 오디션 프로도 많던데. 그런 거 준비하는 안해?”

 

홍대에 버스킹 밴드들이 대부분 오디션 프로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릴 들은 적이 있었다.

유진은 소주를 한잔 털어넣고 어깨를 움츠렸다.

 

“그런 건 아직.”

 

“왜?”

 

‘다들 훌륭하더군요. 개성도 강하고 대한민국에 저렇게 음악 잘하는 사람들이 많았나 겁도 났죠. 근데 자신의 차례가 끝나면 심사위원 앞에서 마치 죄인이 된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영 아니었어요. 왜 즐겁게 부르고 나서 다른 사람 앞에서 떨고 있어야하는지.“

 

남자는 묵묵히 유진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 연거푸 소주를 들이켰다.

“내가 듣기에 기본은 된 거 같더라.”

“기본이요?”

 

“시끄러운 거리에서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 말이야.”

남자는 어느새 말을 편하게 놓았다.

 

“어떤 환경 어떤 사람 앞에서도 자신의 노래를 하는 것.

그 노래를 자신이 듣는 것.

그런 자신만의 아우라가 없으면 늘 바깥 세상에 끌려 다니게 되지.”

 

그러고 보니 남자가 앰프를 쓰지 않는 이유를 유진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의 소리를 조금 듣게 될 줄 알게 되면 세상 쪽으로 좀 더 나가봐.”

 

“오디션 프로요?“

 

“하하. 그건 자신이 판단할 문제고. 자신의 소리를 남에게도 들려주고 남의 소리도 듣고 그러면서 발전하는 거지. 난 충분히 그러질 못했어. 젊을 땐 내 자신의 재능만 믿고 나만 잘하면 된다고 믿었지. 그럼 세상이 날 찾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바보 같은 생각이었어. 지금이야 거창한 꿈 따윈 접었지만 말이야.”

 

“남의 소리를 들어라?”

 

“그래 세상의 다양한 소리와 만나봐.

꼭 잘하는 사람 것만이 최고가 아니지.

오디션이든 밴드든, 음악은 가슴 언저리에 맴돌고 있을 때 보다

팡팡 밖으로 울려 퍼져야 좋은 거야.”

 

남자가 어느새 잔뜩 취한 얼굴로 유진을 보며 소주잔을 들었다. ‘팡팡’이란 단어가 듣기 좋았다. 자신을 알아주는 누군가와 함께 세상에 팡팡 울려 퍼지는 음악을 할 수 있을까?

 

“이제 사람들과 만나. 내가 듣기엔 보이스컬러도 지금의 것은 아니야.”

 

“좀 더 노력해야 된다는 건가요?”

 

“노력의 문제는 개인적인 거고. 지금의 그런 강한 음색 보다 어쩌면, 다른 감성이 자기의 감성일 수도 있다는 거지. 나야 노래는 문외한이니까. 그걸 한 번 찾아봐.”

 

“힌트를 좀 주세요.

 

노인은 너털 웃으며 입 주변을 쓱 닦았다.

 

“잘은 모르지만 음악으로 보내온 시간들에 답이 있겠지.”

 

남자는 막잔을 털어 넣고는 자리를 떴다. 유진은 솔직히 2차라도 가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남자는 묵묵히 사라졌다. 그 후로 그는 다시 거리에 나타나질 않았다.

 

변화 없는 나날들 이어졌다.

 

더 크고 화려한 곳으로 왔지만 오히려 더 고요하고 무료했다. 변화 없는 하루는 빈 노트에 쓰는 한 문장과 같았다. 하루를 산다는 것은 똑같은 문장을 칸칸이 그어진 노트에 한 줄씩 채워 넣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들이 한 페이지를 모두 채울 때면 매번 어떤 사건이 예비되어 있다는 것을 유진은 어렴풋이 느꼈다.

 

계속 버티고 움직이는 자에게 주어질 일종의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 선물은 6개월이란 시간 뒤에 주어졌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아직도 군대에 있다고 생각했던 녀석이 떡 하니 노래하고 있는 유진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아직 완전히 군대시절의 때를 벗진 못했지만 나름 머리도 길어 있었고 패션도 훨씬 요즘에 가까워졌다. 녀석의 축 쳐진 눈빛은 한적한 공원에서나 북적이는 이곳에서나, 술에 취한 새벽이나 밤으로 접어드는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호기심과 천진함, 감추지 못한 음흉함까지.

 

노래가 끝나자 유진은 평소보다 길게 한숨을 쉬었다.

 

안도의 한 숨 같은 것이었다.

 

 

 

6

이런 곳이 밴드 연습실이구나.

 

유진은 비로소 음악을 위한 공간 앞에 서있는 것이었다. 유진과 몽은 지하실 철문 앞에 서있었다. 비록 매끈하게 지어진 스튜디오가 아니라 녹이 슨 철문이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가슴을 뛰게 했다. 아마도 누구의 간섭도 눈치도 볼 필요가 없는 공간일 것이다. 몽이 앞장서 철문을 열려는 순간 잠시 동작을 멈췄다.

 

“지미 헨드릭스네가 왔네. 한 번 들어볼래?”

 

철문을 너머로 밴드가 연주하는 소리가 들렸다. 일정한 비트의 드럼소리와 그 위로 입혀지는 기타소리. 보컬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기타 소리가 거의 압도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몽이 뭔가 대단한 것을 듣는 듯 귀를 철문 쪽으로 붙이고 있었다. 유진도 귀를 기울였다. 유진의 귀에 기타는 국악기 같았다. 국악에 관해 자세히는 몰랐지만 어깨를 들썩이게 할 만큼 신이 나있었다. 예쁘게 치려는 의도도 없어 보였다. 그저 거칠고 강하게 몰아쳐댔다. 그렇다고 늘 강한 것만 아니었다. 종종 유연하게 리듬을 타며 흘러가다가 다시 거칠어졌다. 한동안 긴 기타솔로를 치기도 했고 기타로 낼 수 있는 갖가지 기이한 소리를 내기도 했다. 오토바이 타는 소리 같기도 했고 혹은 토하기 직전 울렁거리는 위장을 흉내 낸 것도 같았다.

 

몽과 유진은 철문을 열고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왔다. 앰프의 출력이 워낙 컷던 탓인지 둘이 온 것도 모른 채 기타리스트는 기타를 맨 채 연주에 몰입해있었다. 몽과 유진이 한참동안 서서 그를 쳐다보자 기타리스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들을 확인했다.

 

기타리스트는 순간적으로 치고 있던 기타 줄을 움켜잡았다. 연주가 멈췄지만 어디에선가 전기적인 잡음과 여운이 연습실 안에 가득 남아있었다. 삐쩍 마르고 훤칠하게 큰 키. 다소 내성적인 분위기. 다가가기 쉽지 않은 인상이었다.

 

몽이 서로를 소개하자 둘은 무덤덤하게 인사를 마쳤다. 먹다만 음식과 옷가지와 악기들. 유진이 그토록 자신의 일에 매몰되었듯이 이 남자도 그녀와 비슷한 그 어떤 것에 흠뻑 빠져들었던 것이 분명했다.

 

셋은 어색한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몽이 집에서 가져온 음식들 이었다. 유진이 솜씨 있게 음식들을 담아냈다. 수의 눈에 부엌생활에 익숙한 손동작이 들어왔다. 그녀는 먹고사는 것에 음악만큼이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성적인 긴장감이 가득하면서도 어쩐지 생활인의 건강함과 터프함이 살아있었다.

 

“3일 밤낮을 찾아 모시고 왔지.”

 

확실히 수나 몽보다 나이는 들어보였다. 몽은 밥을 먹으며 그동안 유진과 겪은 일들을 털어놓았다. 처음 만나게 된 날. 어쩌다 그녀의 자취방에서 보내게 된 하루와 1년이 지난 뒤 홍대 앞에서 혼자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그녀를 다시 만난 것과 그녀의 손을 이끌고 이곳으로 온 것까지. 서로 전화번호도 주고받지도 않고 1년 뒤에, 그것도 단 몇일을 본 인연으로 다시 만난다는 것이라며 신기해했다.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수년을 지니고 살아도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든 이들이 많다.

 

둘은 지하실에 남겨두고 수는 오랜만에 바람을 맞으러 밖으로 나왔다. 둘에게 자신의 밑바닥을 내보인 것 같아 부끄러웠다. 하지만 곧 발걸음이 리드미컬해졌다. 지미 헨드릭스의 느낌이 아직도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최근 들어 모든 것이 다 가벼워지고 있었다. 가벼워질수록 작은 감정 하나, 사소한 소리 하나까지 섬세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온몸의 감각을 거의 100퍼센트에 가깝게 쓰고 있었다.

 

수는 아직도 일을 하고 있는 시장 사람들을 보며 문득 꺼두었던 스마트폰을 켰다.

낮에 온 메시지들이 화면 밖으로 튀어 나올 듯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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