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도 그 공원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봤어. 내 친구 중에 한 명에 거기서 기타치며 노래를 불렀거든. 그 소릴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지. 뭐, 그땐 내가 정말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걸 사람들에게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리곤 그 후로도 음악을 하면서도 가끔 그 공원을 찾았어. 신도시 인구가 수십만인데 나나 내 친구 같은 생각을 가진 그런 애들이 또 있을 것 같아서. 혹시 진짜 천재가 나타나서 노래를 부르고 있지는 않을까 해서.

 

그런데 한 명도 없더군. 수십만이 사는 신도시인데 말이야. 천재는 고사하고, 자신의 음악을 보여주고 싶은 아이들이 어떻게 한 명도 없을 수 있지? 그러다 군대에서 휴가를 받아오니 다시 옛날 생각이 나더라고. 혹시 나처럼 철없는 부류의 인간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데 그쪽을 발견하고 놀랐지. 나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던 거지. 난 음악은 즐거움이라고 생각했어. 즐겁고 싶을 땐 마음껏 즐겨라. 그런데 그쪽을 보니 뭔가 힘겹게 버텨나가는 것도 음악이라는 거라는 게 느껴져.

존나게 버텨봐.

앞으로 1년만.”

 

“그럼 뭐가 달라지나.”

 

“1년 뒤에 제대니까 그땐 꼭 찾아올게.”

 

“그땐 어디서 뭘 할 건 지 어떻게 알고 찾아와?”

 

“그렇게 버텨서 뭐가 되고 싶은 거야? 유명해 지고 싶은 거야?”

 

말을 하려던 유진이 남은 술을 남김없이 목구멍으로 부었다.

 

“지금처럼 술에 안취하고도 그냥 음악만으로 미치는 거. 내 별명이 미친년이거든. 근데 그땐 늘 술에 취해 있었지. 미치고 싶어도 그냥 미치기는 두렵고. 이젠 미쳐도 사람들이 손가락질안하고 그냥 노래하는 모습만 바라만 봐줄 정도면 좋겠어. 그런 정도면 딱 좋겠어.”

 

그렇게 술잔이 몇 잔 더 돌자 녀석은 많이 취한 듯 팔짱을 낀 채 머리를 테이블 위에 박고 있었다. 기분이 상당히 오르기 시작하자 유진이 소주를 시켜 맥주에 말아먹기 시작했고 그걸 녀석이 그대로 따라 마셨다. 자신보다 어려서일까. 아니면 이런 부류의 인간들에 목이 말랐던 것일까.

 

어째 이 녀석,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어느새 술집엔 유진과 녀석뿐이었다. 시간은 새벽 1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녀석은 기어이 유진이 사는 곳까지 따라왔다.


“애인은 있어?”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대로 뻗어서 자는 줄 알았던 녀석이 뉘어던 몸을 반대쪽으로 돌린 채 나직이 물었다.

 

“있지.”

 

“어딨는데?“

 

잠깐 머뭇하던 유진이 입을 열었다.

 

“런던.”

 

“음악하는 사람이야? 유학 간 거야?”

 

유진은 말을 잇지 않았다. 한동안 유진의 침묵에 녀석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잠깐 어색한 침묵이 흘렸다. 유진은 아무것도 붙어있지 않는 벽에 기대어 다리를 뻗었다. 방엔 불을 껐고 대신에 책상 위의 조그만 스탠드 불만 켰다.

 

낮엔 일을 했고 저녁엔 노래를 불렀고 밤엔 술을 마셨다. 마치 촛불 아래에 있는 것처럼 마음이 평온해졌고 온몸이 기분 좋은 피로감에 젖어들었다. 얼마나 더 벌어서 먹고 살 수 있을지도 막막했고 이렇게 노래를 부르며 버티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잠시 두려운 기분이 스며들었지만 어쨌든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버텨나가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는 것이 놀라웠다.

 

어쩌면 아주 가느다란 틈으로 빛 한줄기가 스며들지도 몰랐다. 매일 매일 뻔한 일상을 켜켜이 쌓아올리다 보면 어느 날 뻔하지 않은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 오늘 저 녀석을 만나 자취방으로 데리고 오게 된 것처럼.

방바닥에 누워 있던 녀석이 갑자기 일어났다. 혹 늑대 짓을 하려는 건 아닌지 유진이 살짝 긴장했지만 녀석은 유진의 기타 케이스를 열어 기타를 꺼내들었다. 녀석은 기타 줄을 몇 번 건드려보더니 몇 가지 코드를 짚으며 기타 줄을 쓸었다.

 

“사실은 말이야. 아까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있는데 뭔가 멜로디가 생각나는 거야.”

 

기타를 치면서 녀석이 영어인지 뭔지 모를 말로 웅얼거렸다. 멜로디는 생각났지만 가사는 아직 떠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축 쳐진 두 눈이 술을 먹어서 인지 더 쳐져 보였지만 녀석은 뭔가 발견했다는 듯 히죽 웃으며 늦은 밤, 낯선 방에서 편안히도 기타를 쳐댔다.

유진은 지금 이 시간에 뭐 하는 짓이야, 라고 말할 뻔하다 간신히 참았다. 떠오른 멜로디를 계속해서 부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영락없는 어린애였다. 그 모습은 그와는 다른 모습이었지만 묘하게 비슷하기도 했다.


“다음엔 말이야. 좀 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불러보면 어때? 대학로나 홍대 같은 곳 말이야. 거긴 우리 같은 부류의 인간이 수십 배는 많을 테니까. 1년 뒤야. 그땐 대학로나 홍대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으라고. 그럼 내가 알아서 찾아갈게.“

 

녀석이 일방적으로 지껄이더니 다가오는 버스에 먼저 몸을 실었다. 버스에 탄 녀석은 유진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5

 

신도시의 공원과 비교해 확실히 홍대 앞의 공기는 달랐다.

뭔가를 보여주려는 열정으로 이곳의 공기는 늘 덥혀져있었다. 그 녀석과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유진은 신도시를 떠나 이 먼 곳까지 오게 된 자신이 의아했지만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은 온통 버스킹의 열풍이었다. 홍대역에서 얼마 되지 않은 곳에 위치한 작은 광장은 제법 고정 팬들을 확보한 버스킹 밴드들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 다만 크고 작은 밴드들이 각자 앰프의 볼륨을 높이는 바람에 거리는 음악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겐 소음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유진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보았다. 사람들의 눈에 띄는 곳은 기대 하지 않았다. 그저 기타를 울리고 노래를 할 수 있는 곳이면 충분했다. 사람이 많이 지나는 거리 가운데 가로수 한그루가 심어진 곳. 유진은 그곳에 주저 없이 기타 케이스를 열고 기타를 맸다. 망설임 없이 준비한 곡을 불렀다. 오랜 훈련의 결과였다.

 

늘 첫 곡은 ‘땡큐(Thank you)’ 였고 마무리 곡은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Across the universe)‘였다. 그리고 중간에 채워 넣은 곡들은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달라졌다.

똑같은 노래들을 불렀지만 그날의 공기에 따라 노래는 달라졌다. 길을 가던 사람들이 쳐다보기 시작했고 가끔 한둘이 서서 노래를 들은 뒤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즉각적인 반응이 오는 건 반가웠지만 이곳은 의례 그런 곳이라는 듯 귀담아 듣지 않은 이도 많았다. 특히 지나가는 남자들, 술 취한 남자들 중엔 유진의 몸을 훑어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몇일 그렇게 어색한 공기에 휩싸여 노래를 불렀다. 월요일과 목요일 일주일의 단 이틀이었지만 힘은 이전보다 배로 들어갔다. 공원과 달리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도 적응이 되질 않았다. 몇 주가 지나자 유진의 옆에 자리를 잡은 한 뮤지션이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