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을 나서자 입구 근처에서 어떤 주정뱅이 영감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노래방에서의 흥이 아직 살아있었다. 유진이 두려움을 핑계로 남자의 팔을 세게 부여잡았다. 살이 거의 없는 남자의 팔이 별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았다.

 

 

“울 아버지도 술만 먹으면 그랬어. 뭐, 영어도 모르는 사람이 오 마이 달링 클레멘타인, 그러면서 골목을 헤집고 다녔었지.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

 

“클레멘타인. 알고 보면 그거 참 슬픈 곡이죠. 그 곡 한 번 불러 줄까?‘

 

유진은 술에 취한 남자의 눈에 자신이 또렷이 비치고 있음을 보았다.

 

“오 마이 달링,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유진이 가사를 인용하며 대꾸하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요.”

 

팔을 잡고 걷는 유진은 자신의 얼굴이 빨개지지나 않았는지 걱정이 되었다. 원래 빨개지는 스타일은 결코 아닌데도. 남자는 무덤덤해 보였다. 둘 다 얼굴색이 잘 바뀌는 편이 아니었지만 남자의 경우가 더 심했다. 도통 속을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자신의 의지로 뭔가를 들려주겠다는 것도 처음이었기에 유진은 묘한 기분에 휩싸인 채 남자의 방을 찾았다.

 

냉기가 도는 방안에서 둘은 잠깐 어색하게 앉아있었다. 곧 유진이 한켠에 세워두었던 기타를 내밀었다. 잘 닦아놓긴 했지만 여전히 낡은 티를 벗지 못한 기타는 여전히 남자와 잘 어울렸다.

짧은 전주가 흐르고 잠시 후 술기운에 힘겹게 노래를 뱉어내는 남자의 목소리를 들렸다. 초반부는 전혀 새로웠고 노래가 후반부에 들어선 후에야 유진에게 익숙한 구절이 귀에 들어왔다.

 

Oh my darling

Oh my darling

Clementine

가사는 그러했으나 낭만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다. 자신이 상상한 분위기, 멜로디, 곡의 흐름, 그 어떤 것도 예상과 달랐다. 우울하고도 나약한 심성으로 가득 찬 노래는 남자와 기분 나쁜 정도로 잘 어울렸다.

 

Dreadful sorry

Clementine

 

곡의 마지막에 ‘착‘하고 기타 줄을 찰지게 내리치며 남자가 힘을 주어 가사를 토해냈다. ‘쏘리’라는 말과 ‘클레멘타인’이라는 말을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오 마이 달링 클레멘타인’이란 가사가 중간에 나오긴 했다. 유진이 기대했던 낭만적인 느낌은 고사하고 더 깊은 바닥으로 추락해가는 느낌.

 

‘왜 클레멘타인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걸까?’

 

곡이 끝나고 유진은 한동안 멍했다. 어때요? 라고 쑥스럽게 묻는 남자에게 하나의 감정으론 설명할 수 없었다. 처음에 느낀 것은 생소함이었다. 그 다음은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외로움이었다. 그 다음은 자신을 위해 노래를 불러준 최초의 남자를 만났다는 뿌듯함도 있었다. 반면에 자신을 낭만적인 상상에서 찾지 않고 생소한 우울함 속에서 찾고 있다는 것은 실망스러웠다.

 

‘클레멘타인’이란 곡을 부른 남자는 유진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이어서 기타를 쳤다. 아마도 유진에게 ‘클레멘타인’이란 한 곡을 들려주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지 몰랐다. 남자는 연주했던 곡과 매우 비슷한 곡들을 몇 곡 더 불렀고 유진은 말없이 들었다.

엘리엇 스미스.

 

방으로 돌아온 유진은 남자가 불렀던 곡들의 원곡을 모조리 들어보았다. 유진은 의외로 건장하고 남성다운 엘리엇 스미스를 사진으로 보았다. 그의 음악은 주로 어쿠스틱한 사운드를 바탕으로 포크와 록의 느낌이 섞여있었다. 예상대로 그의 음악은 우울하고 절망적이었다. 노래 대부분은 쳐지고 기운이 없었다. 그러나 듣다보면 단순히 하강만 하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무한히 아래로 향하면서도 스쳐 지나치기 어려울 만큼 매혹적이었다.

 

피요나 애플과 엘리엇 스미스.

 

유진은 이번엔 두 노래를 번갈아 들었다.

둘 다 쓸쓸한 느낌이었다. 피요나의 음악엔 어떤 의지가 느껴졌지만 엘리엇의 음악은 그 의지마저도 놓아버린 듯 했다. 유진의 마음 한 구석으로 두려움이 스몄다. 정확히 말하면 무방비인 자신에게로 밀려들어오는 두려움의 속도에 당황했다. 맑고 화창했던 마음에 갑자기 엘리엇 스미스라는 먹구름이 빠르게 퍼져서 순식간에 마음을 뒤덮고, 어느새 마음에 소낙비가 내리고 있었다.

 

문제는 그 구름이 끼고 비가 내리는 일련의 장면들이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남자도 분명 거기에 매혹되었을 것이다. 비를 맞아서는 안 되지만 어쩔 수 없이 비를 맞고 있는 느낌. 밤새 잠을 뒤척이던 유진은 새벽녘에야 잠을 이룰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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