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시간 3시간 전.

몽과 혜신이 서로를 쳐다보며 꼬박 2시간을 보냈다. 혜신이 자신의 분장을 간단히 끝낸데 비해 몽은 훨씬 더 까다롭게 굴었다. 하얀색 페인트를 뒤집어 쓴 듯한 얼굴에 쭈글쭈글한 주름살까지 표현했고 머리에는 기괴하게 산발한 가발을 썼다. 몽은 혜신이 마구잡이로 칠하던 입술을 귀밑까지 번지게 두었다. 몽의 목표는 배트맨에 나왔던 악당 ‘조커’가 되는 것이었다.

사악해질 대로 사악해진 몽과 오페라 가수 키메라처럼 눈 주위를 진하게 화장 한 혜신이 이번엔 수를 분장시키기 시작했다. 수를 앞에 두고 혜신은 한동안 키득키득 웃어댔다.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는지 혜신의 볼이 약간 붉게 상기되어있었다.

“슬래시처럼 까만 얼굴로 만들어 줄 거야.”

혜신은 분장을 하는 동안 참새처럼 떠들어댔다. 수는 눈을 감았다. 약간의 긴장, 톡톡 건드리는 손길, 끊임없이 지저귀는 혜신의 말소리에 졸음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분장을 끝낸 혜신이 가발과 중절모는 물론이고 어디서 구해왔는지 슬림한 가죽바지와 부츠를 신겼다. 마지막으론 썹의 일렉트릭 기타를 매어 보았을 때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수는 전성기 시절 슬래시가 되어있었다.

다만 클럽에서 만났다며 섭외한 드러머만큼은 따로 분장이 필요 없었다. 같은 나이라고 하기엔 덩치가 두 배는 되어보였다. 모히칸족처럼 곁 머리를 과감히 쳐버리고 남은 가운데 머리를 말갈기 마냥 세우고 있었다. 저런 머리를 유지하며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것이 궁금할 정도였다. 공연 전 몇 번 합주를 해본 적이 있었지만 공연시작 막바지까지도 가끔 빙글빙글 웃음만 보일 뿐 수와는 말을 섞지 않았다.

 

 

수는 암전 속에서 몽의 신호를 기다렸다.

심장은 뛰었지만 첫 공연 때 뛰었던 것과는 움직임이 달랐다. 마치 자신의 장기가 아닌 것처럼 굴던 심장은 이번엔 자신의 가슴팍 안에서만 움직인다는 느낌이었다. 훨씬 강한 펌프질을 해댔지만 두려움 보다는 기대감을 배가시키고 있었다.

수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기타 볼륨을 올린 채 마이크 대를 움켜잡고 잠시 분위기를 잡고 있는 몽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몽이 신호로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한 번 가볼까? 드럼과 베이스는 여전히 숨죽이고 있는 가운데 수는 피크로 기타 줄을 짧고 강력하게 내리쳤다. 디스토션이 걸린 채 잔뜩 일그러진 기타 소리가 어두운 공기를 갈라놓았다.

기타 줄을 피크로 내리칠 때마다 수는 해머로 단단한 벽을 내리치는 상상을 했다. 그들의 첫 곡은 ‘스톤 템플 파일러츠(Stone Temple Pilots)’의 ‘다운(Down)’이었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곡은 아니었지만 고음 보다 저음에서 느낄 수 있는 카리스마와 전체적으로 강렬한 사운드로 이루어져 오프닝 곡으론 손색이 없었었다.

기타 소리를 신호로 스포트라이트 하나가 몽을 비추었다. 눈을 치켜뜬 악당을 본 관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조커가 게슴츠레 뜬 눈으로 인사하듯 읊조렸다.

 

Pleased to meet you.

Nice to Know me.

What‘s your massage?

Will you show me?

 

조커의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포효하는 것을 신호로 조명들이 일제히 무대 위로 내려앉았다. 숨죽이고 있던 드럼과 베이스가 시동을 걸었다. 기타의 6번 줄 위로 수의 검지 손가락이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오토바이처럼 미끄러졌다. 다시 5번 줄과 6번 줄을 내리치자 전방 스피커가 찢어질 듯 괴성을 토했다. 거대한 호수로부터 터져 나온 검은 물이 세상을 덮어버릴 기세였다. 무대 위의 실체를 파악한 관객들이 비로소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조커의 카리스마가 순간 무대 위를 신비롭고 괴기스럽게 바꿔놓았다.

수는 객석을 주시했다. 그들은 분명 집중하고 있었다. 흥분하는 가운데서도 몽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들으려는 진지함이 서려있었다. 이번에도 몽은 성공하고 있었다. 이목을 끄는 힘은 단지 음악적인 실력만은 아닌 것이었다.

 

I've been waiting for my Sunday girl

 

몽이 곡의 중간, 브릿지 부분에 이르러 ‘선데이 걸(Sunday girl)’이라고 외치며 앞 열의 여학생들에게 검지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놀라운 것은 몽의 퍼포먼스 뿐 만이 아니었다. 공연이 시작되자 수 자신도 변하기 시작했다. 몽이 조커에 집중할수록, 그런 몽의 목소리와 행위를 지켜보면서, 수도 수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어갔다. 연주 중에 수는 분장으로 자신들을 감춘 몽과 혜신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자신이 알던 친구들이 아니었다. 전혀 다른 존재들이었다.

 

‘가면 효과인가’

 

부풀어 오른 머리에 푹 눌러쓴 중절모. 검게 칠한 얼굴. 수답지 않은 옷차림. 관객 중 누구도 수를 알아보지 못했다. 지금 무대 위에 서 있는 나는 누구인가? 자신이 아닌 자신이 되는 것. 전혀 자신이 아니면서도 또한 철저히 자신이기도 한, 또 다른 자아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가면 뒤에 숨은 수는 그대로 무대 위를 바라보았다. 아이들도 자신도, 그들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되어있었다. 한 번씩 몽과 눈이 마주칠 때 마다 수는 섬뜩한 기운을 느꼈다. 그것은 잠시 악인을 흉내 낸 고등학생이 아니라 진짜 악 그 자체였다. 합법적인 음악으로 가장 비합법적인 악을 구현해내는 것. 몽은 그렇게 모든 사람들을 이끌고 다니며 감정의 바닥까지 가고 싶었는지 몰랐다.

 

Will you follow me, down

 

몽이 팔을 하늘을 향해 쭉 뻗으며 1절 보컬파트를 모두 소화했다. 이제 기타 솔로의 시간이었다. 솔로라인을 연주할 땐 자신도 모르게 미리 연습해둔 멜로디 라인이 아닌 자신의 필링에 의한 즉흥연주가 튀어나왔다. 수많은 기타리스트가 보여주었던 라이브 연주는 어쩌면 이런 느낌에 바탕을 두었을지 몰랐다. 반드시 원곡과 똑같이, 연습한 시나리오대로 연주할 필요는 없었다. 꽤 긴 솔로부분을 연주하면서 수는 자신이 손가락을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이 스스로 살아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은 다만 그 움직임을 지켜보는 이에 불과했다.

 

수가 몽에게 가장 기대했던 곡은 두 번째 곡이었다. 콘(Korn)의 ‘프릭 온 더 리쉬(Freak on a leash)’는 언젠가 레게파마를 하고 나타난 서태지의 컴백곡이었던 ‘울트라맨이야’와 맥을 나란히 하는 곡이었다. 90년대 초 백인의 메탈음악과 흑인의 힙합을 합쳐놓은 듯한 하이브리드한 감성으로 등장한 Korn은 단연 하드코어 메탈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몽은 콘(Korn)의 보컬인 조나던 데이비스를 좋아했는데 그는 마치 정신이 분열된 듯한 모습과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늘어지듯이 몽환적으로 시작하는 이곡은 점점 상승 구조를 취하다가 곡 중간에 갑자기 괴상한 가사와 함께 아프리카 주술사와 같은 퍼포먼스가 돌출된다.

거의 신내림은 받은 것처럼 몽은 조커의 분장을 한 채로 사람들 앞에서 조나단 데이비스의 기괴한 퍼포먼스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한동안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지막 팀은 점프수트를 입고 머리엔 해골, 악마, 삐에로와 같은 가면을 쓰고 등장했다. 밴드 슬립낫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었다. 멤버 소개에서 보컬이라 소개된 이는 몽이었다. 한 사람이 두 번 무대에 서는 건 원칙상 규정 위반이었지만 가면에 자신을 숨긴 채 몽은 기어이 해내고 말았다. 밴드는 몽과 함께 시내 클럽에서 연주했던 실력파 아이들로 구성되었다. 선보이는 곡은 ‘듀얼리티(Duality)’라는 곡으로 엄청난 스피드와 파워를 자랑했다. 이곡을 위해 모히칸 머리를 한 드러머는 베이스드럼의 페달을 두 개 세팅했다. 본래 발로 밟는 베이스드럼은 하나의 페달을 쓰는 것이 보통이지만 스피디한 곡에선 두 개의 페달을 썼다. 마치 일반드럼이 경쾌한 조깅의 느낌이라면 더블베이스 드럼은 질주의 느낌을 만들었다. 특별히 이 친구를 섭외한 건 바로 이곡을 해보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수는 몽이 이 곡의 뮤직비디오를 좋아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몽은 외딴 집에서 밴드와 팬들이 모여 광란의 콘서트를 벌이는 장면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곤 했다. 몽은 연주 도중 열광하는 관객들을 멈추게도 했고 자신의 신호에 맞춰 멈췄던 몸짓을 재개시키기도 했다. 마지막 부분에선 한 여학생의 뒷통수를 부여잡고 서로 이마에 맞댄 채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모든 것은 뮤직비디오의 장면을 모방한 것이었다. 자기 것을 만들고 싶은 욕구 이전에 완벽히 따라하고 싶은 욕구인 것이다.

그것이 모방이든 창조든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 어떠한 평가도 필요 없었으며 다음 단계로 올라가기 위한 테스트도 아니었다. 누구도 어설픈 공연을 실눈 뜨고 보지 않았다. 동시에 어느 누구도 팔짱을 끼며 방관하지도 않았다. 단지 아이들은 꾹꾹 눌러두었던 덩어리들을 꺼내 불을 지르고 발로 걷어찼으며 급기야 그것들을 함께 굴리며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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