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어떻게 세 학교가 그런 기발한 무대를 만드는데 동의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수가 다니는 신설 고등학교와 주위에 있던 외국어 고등학교와 예술 고등학교가 모두 역사가 짧고 인상적인 축제가 없다고 판단한 윗분들의 용단이 있었을 것이다. 일반 도시이기 보다 모든 것이 새롭게 지어지기 시작한 신도시라는 환경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세 학교의 중앙에 위치한 시민공원에 구청과 함께 야외무대를 마련한다는 것이었다. 1년 전 학예회 무대에 비하면 과히 콘서트라 할 만했다. 마침 지역구의 축제가 겹친 것이다. 세 학교의 아이들 외에도 시민들도 함께 참여하는 공연이 된 셈이었다.

 

가장 바빠진 건 몽이었다. 졸업 후면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위해 벌써부터 시내 클럽에서 노래를 하고 있었다. 몽은 또 다른 쇼킹한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몽은 자신이 화려한 비주얼을 자랑하는 글렘록의 신화, 데이빗 보위를 계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세월이 흐른 후 이야기지만, 자신과 같은 각성이 당시 전 세계적으로 퍼져있었고 시간이 흘러 레이디 가가 같은 인물이 뜨게 된 것이라는 괴변을 피력하기도 했다.

축 쳐진 눈은 여전했지만 스키니 바지에 부츠를 신고 괴상한 무늬의 셔츠를 자주 입었다. 심지어 연습실에서 혜신이 해주는 화장을 받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몸은 더 자라나 이제 소년의 티를 벗었지만 감성은 자꾸만 더 어린 시절로 역행하는 것 같았다. 그런 면에선 몽과 가장 어울리는 건 혜신이었다.

 

둘은 활엽수와 같았다. 세상으로부터의 빛을 과감하게 받아내고 그것으로 자신을 꽃피우고 싶어했다. 몸 곳곳에 꽃과 잎들을 잔뜩 피웠고 물들고 싶을 땐 어떤 색이로든 물들었다. 반면 수와 썹, 두 침엽수는 더 꼿꼿하게 위로만 자라는 듯 했다. 좀 더 그늘지고 좀 더 볕이 들지 않는 곳에서 내밀한 성장을 이어갔다.

몽은 당시 ‘슬립낫(Slipknot)’이란 밴드를 즐겨 듣고 있었다. 거칠고 스피디했으며 당시에 유행하던 랩과 메탈을 섞은 사운드였다. 연주력이 매우 탄탄했다. 무엇보다 큰 특징은 전 멤버가 가면을 쓰고 나왔다. 늘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강렬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는데 그것이 몽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몽이 그들의 뮤직비디오와 공연 영상을 보는 것이 자주 목격되곤 했다. 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슬립낫이 이번 공연의 중요한 키가 될 거라는 것을 직감했다.

 

“와우, 슬래시 스타일!”

 

몽이 수에게 건넨 꼬불꼬불한 라면머리를 보고 혜신이 소리쳤다. 어디서 구한 가발인지는 몰랐지만 도저히 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썹이 재밌다는 듯 만지작거리더니 수의 머리에 기습적으로 씌워버렸다.

“야, 완전 잘 어울려. 완전 짱이야.”

혜신이 호들갑을 떨었다. 수는 몽과 혜신이 공통투자해서 구입한 밴드부 전용 전신거울에 자신을 비춰봤다. 수가 쓴 웃음을 짓자 몽은 수 머리 위에 통이 긴 중절모를 올렸다.

기타를 좀 친다고 하면 기타리스트 ‘슬래시(Slash)’를 모르긴 힘들 것이다. 록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밴드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의 기타리스트였던 그는 꼬불꼬불 파머한 머리에 커다란 중절모, 허리쯤에 걸친 기타를 칠 때는 끊임없이 말보로 담배를 피워대는 것으로 유명했다. 현란한 속주나 테크닉보다는 강렬하고 귀에 쏙 들어오는 연주를 들려줬다.

 

언젠가 넷은 나란히 그 유명한 건스 앤 로지스의 ‘노벰버 레인(November rain)’의 뮤직 비디오를 함께 본 적이 있었다. 비록 오래 전에 만들어졌던 비디오였지만 넷은 각기 다른 이유로 그 비디오에 쏙 빠졌었다. 몽은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보컬 액슬 로즈의 카리스마에 이끌렸을 것이고 혜신은 미니 스커트로 된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등장해 웨딩 케잌을 커팅한 칼을 혀로 핥는 장면에서 눈이 가장 커졌고 수는 장황했지만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슬래시의 기타 멜로디 라인에, 썹은 슬래시가 맨 깁슨 레스폴이 최근 자신이 가진 구입한 국산 일렉 기타와 똑같은 색깔, 디자인이라는 것에 마음을 빼앗겼다.

 

아이들은 단지 귀로만 음악을 듣지 않았다. 테이프를 녹음하여 듣던 몽도 있었고 라디오를 듣는 수도 있었지만 혜신만 해도 MP3 플레이어가 여러 개였고 수도 인터넷을 통해 많은 음악적인 정보를 얻었으며 뮤직비디오와 공연실황을 통해 이전 세대들이 듣기만 하던 것에서 벗어났다. 들리는 소리와 보여 지는 이미지가 적절하게 결합할 때 비로소 한명의 아티스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코스튬 플레이라도 하자는 거야?”

혜신이 몽이 잔뜩 싸가지고 온 옷가지나 가발 등을 집어 보며 물었다.

“무대에 서는 건 고등학생들이고 관객들은 일반인들이 더 많을 거야.”

몽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고등학생들의 장끼자랑, 그 이상의 것을 해보고 싶어.”

“이런 거 쓰고 한다고 특별히 달라질 게 있을까?‘

수가 모자를 빙글빙글 돌리며 비꼬는 듯이 말했다. 각자 악기를 만지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던 아이들은 슬슬 하나 둘 밴드부실을 떴다. 수마저 자리를 뜨려 할 때 기다렸다는 듯 몽이 수에게 다가왔다.

“난 이번 공연도 너랑 하면 좋겠어.”

역시 몽이 먼저 다가서는구나. 수는 자신이 먼저 한 방을 먹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과 달리 외부 팀과의 접촉이 많던 몽이 자신과 함께 하겠다는 것은 고맙긴 했지만 혹시나 지난 정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엔 꼭 너의 즐거워하는 연주를 보고 싶거든.”

몽이 꼬불 머리 가발을 들어보였다.

“장난스럽게 보일지 몰라도 내 생각은 그래. 난 네 기타소리가 좋아. 나이에 비해 깊고 안정감도 있어. 그만큼 네가 투자했던 그 시간들이 고스란히 너의 기타엔 들어있지. 그런데 그건 단지 일부에 불과한 거 같아. 거기에 비해 썹은 말이지.”

썹 이야기가 나오자 수는 순간 얼굴이 화끈해졌다.

“썹은 그래. 너만큼이나 조용하고 나서길 싫어해. 근데 갠 벌써 기타가 다 말해줘. 너도 알잖아. 썹이 치는 기타와 노래를.”

그건 그랬다. 썹이 연주하는 음악은 그만의 심성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너무 드러나 있어 문제였다. 그런 면에서 몽과 썹은 닮았다.

“그런데 네가 만드는 소리는 뭔가 숨기고 있는 느낌이야. 그냥 한 번 해방이 되 보라고.”

몽이 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말할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왜 꾹꾹 누르려고 하지?”

이번엔 몽이 가발을 들어 빙글빙글 돌리며 분위기를 바꾸려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가발은 좋은 도우미가 될 거야.”

몽이 먼저 밴드부실을 떴다.

 

수는 공연곡 후보곡이라며 몽이 건넨 MP3 파일을 계속해서 들었다. 모두 아는 밴드들이었지만 정작 알고 있는 곡은 없었다. 챙겨서 들어본 적은 없는 밴드들이어서 그저 대표곡 정도만 알았다. 몽이 보여줬던 분장도구와 음악의 컨셉을 매치시켜보니 몽이 하려고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몽이 고른 곡은 하나같이 인상이 강한 곡이었다. 화려한 고음이나 꽉 짜여진 연주 같은 건 고려하지 않았다. 특징이 강해서 한 번만 들어봐도 기억을 할 것 같은 곡들이었다. 어떤 곡은 악기의 연주에서, 어떤 곡은 보컬의 음색이나 창법 등에서 그랬다.

또한 관객들을 깊이 의식하고 있었다. 언젠가 몽과 설전이 벌어지면 꼭 꼬집어주고 싶은 부분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몽이 건넨 음악을 듣다보면 자신도 그러한 상상에 끌리는 것을 발견했다. 몽이 원하는 대로, 이끄는 대로, 자신도 한 번 맘껏 자신을 던져보고 싶은 충동, 그런 것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아무리 자기만족으로 음악을 한다고 해도 화끈하게 달아오른 관객들을 지켜보는 것은 아무래도 짜릿한 일이었다. 결국 수는 몽과의 공연에 동의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