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지로

 

 

 

Verve, Bitter Sweet Symphony

Massive Attack, Teardrop/Prot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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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가 우연히 본 한국영화 ‘너에게 나를 보낸다’ 의 한 장면은 이러했다.

무명의 작가로 분한 배우 문성근이 어느 날 돈을 가지고 집으로 왔다. 돈의 출처를 따지는 동거녀 정선경이 이런 말을 했다.


“네가 라이터지, 카피라이터냐?”


똑같은 라이터인데 앞에 ‘카피’를 붙이면 좀 더 많은, 고정적인 돈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이 되었다. 수에게 기억된 이 에피소드는 생각보다 오래갔다.

카피라이터. 나쁘지 않은 어감이었다. 그냥 글쟁이 보다는 훨씬 있어 보이는, 적어도 금전적인 부분에서는 말이다. 정확히는 몰라도 글과 돈 혹은 어떤 아이디어와 돈이 거의 등가를 이루는, 세상에 몇 안 되는 직업처럼 보였다. 어쩌면 그 등가의 매력에 사로잡힌 건 이지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Be Creative로 와라.

 

전화를 받지 않는 수에게 날린 이지로의 메시지는 단호했다. 수는 출발하기 전 이지로에게 전화를 할까 잠시 고민하다 그냥 집을 나섰다. 회사는 논현동이라고 했지만 메시지에 적힌 주소는 실질적으론 압구정과 청담동 사이였다. 아무리 작은 사무실을 냈다곤 해도 월세나 보증금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해는 갔다. ‘을’의 입장에선 일하고 있는 장소와 위치도 중요한 법이다.

이지로가 운영하는 회사는 업계에선 ‘부티크’라 불렀다. 부티크는 직접적으로 광고주를 상대하지 않고 광고회사를 도와주는 아웃소싱 브레인 역할을 했다. 선배 광고인들이 메이저 회사를 그만두고 이런 부티크를 차렸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은 있었다. 그때만 해도 요즘처럼 경기가 나쁘지 않을 때였고 회사생활보다 수입도 몇 곱절 괜찮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최근에 직접 부티크를 차린 것을 본 건 처음이었다.

 

회사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밑으로 직원을 둘 두었다. 좁은 사무실을 효과 있게 쓰기 위해 사무실 가운데에 네 면이 통유리로 된 회의실을 두고 나머지 공간에 책상 네 개를 배치해서 둘은 직원이 쓰고 하나는 자신이 썼으며 하나는 비워두었다.

이지로는 회사에 없었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회사의 대표는 책상 앞에 앉아있기 보단 밖으로 도는 일이 많을 것이다. 수는 회의실에 앉아 이지로를 기다렸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통유리 창에 새겨진 회사 이름과 로고였다.

 

Be Creative.

 

평소 그의 지론에 따르면 Be는 사실 B가 되어야 했다. 즉 크리에이티브 B안을 만드는 것, 그것이 그가 말하는 부티크의 지향점이었다. A안은 발주를 준 광고회사의 몫이었다. A안의 기준은 A급의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일단 광고회사가 고객이므로 그들이 만든 것이 탑으로 올라가야한다. B안이란 그 뒤를 받쳐줄 수 있는 안을 개발하는 것이다. A안을 빛나게 하는 안, 그래서 그들이 팔려고 하는 안을 더 돋보이게 하는 것, A안과 C안 사이에서 존재감을 발하며 A안이 날아갈 경우 곧바로 A안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안이 B안이었다.

 

회사의 한쪽 벽엔 이지로와 지인들이 함께 찍은 브로마이드 사진이 걸려있었다. 모두 어딘가를 바라보며 소리를 지르는 듯 입을 한껏 벌린 장난스런 모습이었다. 이지로는 통통한 얼굴에 동그란 안경을 끼고 바지엔 서스펜드를 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잘생기지도 못생기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별다른 특징이 없는 얼굴이라 이지로는 스스로 여러 장치를 통해 캐릭터를 만들어내고자 했다. 몸매가 통통한 편이었지만 절대 편한 캐주얼을 입지 않았다. 늘 타이트한 셔츠와 체크무늬 바지를 즐겨 입었다. 헤어는 늘 왁스를 바른 짧은 머리를 유지했고 거기에 과장되게 큰 안경테를 여러 개 매치했다. 말하자면 실험실의 박사님 같은 이미지였다. 호기심이 많고 다양한 취미를 가진, 만화 속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캐릭터를 창조했다.

 

실제로 그는 매일 쏟아져 나오는 최신 음악과 영화들을 꼼꼼히 챙겨보았고 아이디어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이나 이슈에 오른 기사들은 모조리 챙겼다. 업계에서 말하는 이른바 ‘소스병’환자였다. 아이디어의 소스가 되는 건 닥치는 대로 긁어모았다. 그 소스의 범위는 단순한 문화 컨텐츠 뿐만 아니라 길거리에 흔히 보이는 간판이나 인터넷에 떠도는 말귀나 글귀들 까지도 포함되어있었다. 심지어 영화를 볼 때도 그는 작은 노트와 볼펜을 팔걸이 위에 올려놓고 혹시 도움이 될 만한 것이 등장하면 즉석 메모를 했다. 그는 노트에 자신이 발견한 인사이트나 아이디어를 빼곡히 적었고 그것들을 다시 컴퓨터 파일로 정리하고 분류했다.

 

이지로의 경력은 광고대행사의 인턴사원에서부터 출발했다. 그가 인턴으로 입사했던 ‘화이트’라는 회사는 당시 광고뿐만 아니라 영화제작에도 손을 뻗친 독립광고대행사의 신화였다. 90년대까지도 광고대행사라면 대기업이 자사의 광고를 위해 임의적으로 만든 ‘인하우스 에이전시’가 대부분이었다. ‘화이트’는 그 틈바구니에서 실력 하나로 엄청난 실적을 올렸고 그 당시 유행하게 되던 독립광고대행사의 대표 주자였다.


화이트는 20대 초반을 타겟으로 한 이동통신 광고에서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공중파 광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얻었다. 기용했던 무명 모델이 일약 스타가 되었고 화이트는 그와 같은 명성에 힘입어 영화에까지 도전했다. 트랜드에 정통했던 회사답게 그들이 기획한 영화는 20대의 감성에 맞춘 트랜디한 컨셉으로 출발했다. 과연 20대의 사랑을 뭐라고 정의내릴 수 있을까. 그 문제를 놓고 회사의 대표를 비롯한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모으고 자료를 수집했고 토론이 계속 되었다.


사랑은 게임이다.


한 인턴 사원이 수줍게 내놓은 컨셉 한 줄. 그것이 처음 이지로의 존재감을 업계에 각인 시킨 시발점이 되었다. 영화는 이지로가 내놓은 컨셉대로 게임회사를 다니는 직원과 수영선수 출신의 수족관 다이버의 사랑 이야기로 발전되었다. 영화는 마침내 제작되어 개봉되었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 개봉 당시 겹쳤던 월드컵으로 인해 관객동원에 실패했다고 평가하는 이도 있었고 아직은 너무 앞서가는 이야기라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어쨌든 영화가 제작되던 시점에서 이지로는 당당히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로 데뷔했다.

독립광고대행사에서 일하는 직원은 일반 광고대행사에 비해 절반도 되지 않았다. 직원 대부분이 경력이 10년 이상 되는 베테랑들로 타 회사에서 영입되어온 경우가 많았지만 이지로와 같은 햇병아리들도 적지 않았다. 회사는 신입들을 위해 따로 견습 과정 따위를 두지 않았다. 당시 화이트에 몸담았던 사람들은 동명의 생리대 광고 카피, 그날이라고 집에 있을 수 있나요?로 회사생활을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단 하루도 쉴 수 없을 만큼 일이 많았다. 대신 풍족한 금전 지원이 있었다. 병사의 수는 적었지만 고성능 무기와 맘껏 쏠 수 있는 충분한 탄약이 지원되었다.

업계 최고의 연봉과 인센티브는 물론 강남의 최신 트랜드를 누리는데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몇일 밤을 새며 일한 직원들은 일이 없는 짬을 이용해 청담동과 압구정의 고급 레스토랑 등을 돌았고 값비싼 공연과 이벤트에 참여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이지로에겐 사수도 없었다. 정식 사원으로 채용되면 그대로 전장에 내던져지는 방식이었다. 비록 할당량은 프로급보단 적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은 자신이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게 견디지 못하면 스스로 그만두는 것이 보통이었다. 아마 이지로의 소스병도 그쯤에서 생겼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지로는 그것들을 즐겼을 것이다. 베테랑과도 직접 부딪쳤고 광고주와 만나서 자신의 생각을 내놓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업과 기획을 담당하는 선배 AE와의 충돌도 겁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전장에서 살아남은 이지로는 어린 나이에 전사로 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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