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몽밴 차례가 왔다. 조용히 무대에 올라선 수는 긴장될 수 밖에 없었다. 혹시 달아오른 무대에 찬물을 끼얹는 건 아닐까? 앞 팀이 너무 강력한 것을 보여줬기에 다들 긴장하는 눈치였다. 더구나 전주부분을 위해 건반을 치는 여자아이를 급조해온 것도 불안했다.

전주는 무리 없이 시작되었다. 다만 몽은 처음부터 무대 위에 서지 않았고 무대 뒤 커튼을 젖히며 등장할 계획이었다.

 

지나가버린 어린 시절에……

 

오늘로써 어린 시절과 이별하기로 작정한 것일까. 몽이 노래의 첫 부분을 부르며 무대 앞으로 돌진해왔다. 무대 맨 앞으로 달려나온 몽을 보고 수를 비롯한 모든 이들은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몽이 온몸에 색색의 풍선을 잔뜩 두르고 나온 것이다. 마치 타이어 광고에 나오는 미쉐린 맨처럼. 몸에 풍선을 붙였다기 보다 온몸이 거대한 풍선더미에 묻혀있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노래를 부르던 몽은 자신의 몸에서 풍선을 떼내어 마구 관중석으로 던졌다. 기습적인 퍼포먼스에 앞 열의 아이들이 소리를 질렀다. 특히 여자아이들이.

몽이 던져 주는 풍선을 잡으려 무대 앞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뿐만이 아니라 언제 준비를 해두었던지 천정 위에서 수백 개의 풍선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강당은 풍선 천지가 되 버린 것이다.

 

수는 비로소 몽이 이곡을 선택한 이유를 알았다. 당황했던 건 몽의 황당한 퍼포먼스 때문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귀로 자신이 치는 기타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드럼은 너무 흥분해서 앞 팀의 ‘강’모드를 그대로 재현했고 다른 악기를 위한 배려는 전혀 없었다.

 

드럼은 야구로 말하면 포수요, 축구로 말하면 골키퍼요, 집안으로 치면 엄마와 같은 존재다. 건실하고 흔들리지 않는 비트. 어떤 광란의 무대 조건에서도 냉철하게 유지되어야하는 박자감, 강과 약을 구별해 전체적인 사운드의 틀을 만드는 존재가 드럼이다. 물론 그런 건 애초부터 기대하진 않았지만, 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자신의 소리부터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청중을 향한 스피커에 비해 연주하는 이들 쪽으로 들려야하는 모니터 스피커가 충분히 성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직진하는 소리는 음을 소비하는 이들에겐 정확히 전달되지만 음을 생산하는 사람들 귀에는 거의 들리지 못한다. 그러기에 무대엔 연주자들이 자신이 들을 수 있는 모니터 스피커가 필요했다. 수는 고개를 돌려 앰프와 믹서를 담당하고 있는 아이 쪽을 바라보았다. 그 아이 역시 아는 게 별로 없는 터라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그런 것들을, 이제 처음 무대에 서보는 아이들이 알 턱이 없었다.

연주 내내 수는 자신이 어떤 소리를 내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무력한 상태인 것이 불쾌했다. 밴드를 향한 시선은 온데 간데 없고 관객의 시선몰이에 몰입한 몽이 한심했다. 수의 기분이 거의 바닥으로 가라앉았을 무렵 몽의 퍼포먼스는 절정으로 가고 있었다. 단 한 곡만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몽이 생각한 건 무한반복형 후렴구였다.

 

“지나가버린 어린 시절에 풍선을 타고 날아가는 예쁜 꿈도 꾸었지

노란풍선이 하늘을 날며 내 마음에도 아름다운 기억들이 생각나.“

 

이 후렴구는 몽이 하고 싶은 만큼 반복할 수 있었다. 콘서트에서 흔히 보는 것처럼, 처음엔 모든 악기를 멈추게 한 후 혼자 후렴구를 부르며 청중들의 박수를 이끌었다. 쉬운 멜로디,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가사. 몽이 ‘노란풍선이’와 ‘하늘을 날며’를 부르면 아이들은 ‘노란풍선이’와 ‘하늘을 날며’를 반 박자씩 빠르게 따라 부르며 몽의 뒤를 바짝 뒤쫓았다. 몽의 반복 후렴구는 자신의 몸에 붙어있는 풍선이 모두 사라질 때가지 계속 되었고 자신이 직접 멈춤 신호를 보낼 때 비로소 막을 내렸다. 곡 하나로 10여분을 버틴 것이었다. 도대체 저 아이에게 있어 음악은 무엇인가. 자신을 희화시키면서까지, 무엇을 즐기고 싶어 무대에 선 것인가.

무대체질이란 것이 바로 저런 것이구나.

수는 몸에 있던 수분이 바싹 말라버린 느낌으로 웅얼거렸다.

 

“수고했어. 최고였어.”

 

무대 뒤에서 몽은 멤버들에게 달려와 와락 안겨왔다. 몽의 몸은 그야말로 물이 오를 때로 올랐는지 비릿한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그날, 몽은 자신의 음악적인 정체성을 찾았을 것이다. 음악 자체의 완성보다는 놀이의 도구가 되게 하는 것. 예술의 근원을 유희에서 찾는다면 몽은 그런 근원에 가장 가까운 음악을 택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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