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온 수에게 과제는 확실해졌다.

자신이 지금 당장 무엇에 올인해야 할지가 정해진 것이다. 아마도 태어나 처음 느끼는 짜릿함이었다. 적절한 자극은 향상의 속도를 배가 시킨다. 몽의 집을 다녀온 후 수는 기타연습에 매진했다. 인터넷만 기웃거리던 자신의 소극적인 자세를 반성하고 정식으로 기타 교본을 샀다. 기본 코드를 익히고 교본에 나와 있는 그대로 충실히 연습해나갔다. 몽이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중심으로 기타를 익힌 반면 수는 기초부터 착실히 닦아나갔다.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거침없이 그것에 매진하는 몽과 달리 수는 하고 싶은 것을 더 잘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에 먼저 투자했다.

 

둔탁했던 음들이 어느 새 깨끗하고 선명하게 들려왔다. 코드를 바꿀 때의 손가락도 훨씬 자연스럽고 유연해 졌다. 자신과 기타가 조금씩 어울려간다는 것이 신기했다. 시골 총각이 도시 미인의 손을 잡고 시내를 쏘다니는 듯이 어색했지만 기분만은 날듯이 좋았다.

 

기타에 투자하는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밤새 꼬박 기타만 잡고 있기도 했다. 어느 날 기타를 치며 꼬박 밤을 지샌 수는 마라톤에 ‘러닝 하이(Running high)’가 있듯이 기타에도 ‘플레잉 하이(Playing high)’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완전히 바깥 세상과 분리되는 느낌. 마치 진공의 우주에 홀로 떠서 표류하는 느낌이었다.

 

새로운 곡을 익히고 한마디에서 빠르게 변화하는 코드와 코드를 매끈하게 잇고 스트로크의 리듬을 다듬고 좀 더 깨끗한 소리를 내기 위해 반복 연습을 하는 동안 수는 문득 아득한 공간 저 너머에서 누군가 자신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목소리는 정확히 왼쪽 눈썹 바로 위에서 들려왔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명확히 구분이 되지 않지만 아마도 남성성을 기반에 둔 목소리였다. 처음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잡아낼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맹렬히 기타를 연습하던 수는 잠시 기타를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봤다. 머리는 ‘플레잉 하이’ 상태였는지 몽롱했다. 눈에 보이는 익숙한 풍경 위를 그저 둥둥 떠다니는 듯이 몸은 풀려있었고 귓가에 방금 연습한 코드와 선율이 하염없이 맴돌았다.

그리곤 아주 오래전부터 왼쪽 눈썹 바로 위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것은 암시였다. 길고 복잡한 웅얼거림이 아니라 짧은 문장의 무한 반복이란 사실에 수는 놀랐다.

그대로 가.

그대로 가.

그대로 가.

 

어디로 가라고 하는지. 수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다. 이것은 도대체 어디서 만들어지는 소리인가. 매일 플레잉 하이를 느낄 수는 없었다. 어떤 날은 연습이 지루하기도 했고 시험 준비를 해야 하는 날도 있었다. 기타를 잡을 때마다 괜히 엄마 생각이 나서 좀 망설여지기도 했다.

수는 집에선 기타를 연습했고 학교에선 몽과 어울렸다. 서로 발견한 곡들을 들려주는 식이었는데 록과 팝, 가요를 넘나들었다. 어린 둘이었기에 시대를 초월한, 이제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명곡과 명반들은 넘쳤다.

 

시대 기술 또한 음악의 발전 폭을 넓혀주는데 기여했다. 뭔가 하나를 발견하면 인터넷 음악서비스는 그 가수나 음악 주변을 샅샅이 찾아내 들려주었다. 인터넷이란 양날의 검과도 같았다. 그저 수동적인 감상자일 경우 인터넷은 취향의 표준치를 선별해 서비스했고 그런 서비스에 의해 아이들의 취향은 공급자의 의지에 휘둘렸다.

반면 능동적인 감상자일 경우 상상 이상의 곡과 정보를 제공받았다. LP레코드 판 하나하나를 모으고 잡지를 뒤지고, 음악 감상실 등에서 새로운 음악을 접했던 이전의 세대와 달리, 한 번 성장에 눈뜬 음악의 몸은 버터와 치즈 등을 섭취하며 자라난 90년대의 아이들처럼 몸집을 불려 갈 수 있었다.

 

수의 연주는 흘러간 포크송정도를 반주하는 수준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더 자주 플레잉 하이를 경험했고 그때 마다 왼쪽 눈썹 위의 사나이는 주어와 목적어를 상실한 다양한 문장을 재생했다.


그대로 가.

좋아 다 좋아.

괜찮아.


앞뒤가 다 잘려버린 말들을 정확히 해석할 순 없었지만 뭐든 수의 행동을 긍정해 주는 말임은 확실했다. 손가락 끝이 후끈 달아오를 정도로 연습하고 밖을 바라보면 늘 기분은 뭔가에 취해있는 듯이 가볍고 상쾌했다.

반면 몽의 기타는 거의 늘지 않았다. 기타 연주 보다는 웅얼거리며 곡 만들기에 집중했다. 물론 제대로 된 곡은 한 곡도 완성되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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