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어느 라디오 프로에선 실제 기타리스트를 초청해 그의 연주와 코멘트를 듣는 코너가 있었다. 세션계의 전설, 특히 기타리스트 중에선 손꼽히는 황석호 씨가 출현했다. 타악기의 도움 없이 기타소리 하나에 목소리만 입혀지는 곡들이었다. 기타 줄이 손가락 끝과 만나 생긴 ‘끼긱’하는 마찰음까지 수는 귀를 기울였다. 황석호씨가 연주하는 곡들은 어렵고 현란한 곡은 없었다. 그런 단순함 속에서도 가슴을 울리는 힘이 있었다. 매주 한 번씩 등장한 그는 주옥같은 우리 가요들을 기타로 연주했고 그 때마다 곡과 어울리는 음색을 가진 후배 가수들이 함께했다. 연주가 끝나면 DJ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는데 주로 대화를 나누는 쪽은 황석호씨가 아니라 후배 가수들이었다. 수는 황석호씨의 멘트를 더 듣고 싶었지만 그는 늘 짤막하게만 이야기했다.

음악이 다 말하는 거지요.

어린 수가 듣기에도 음악이 모든 말을 해주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가 골라온 음악들, 특히 ‘세노야’라고 불리우는 옛 명곡은 압권이었다. 몇 개 안되는 쉬운 코드로 이루어진 곡이었다. 전주 부분은 현란하고 장황했다. 본 곡에 이르자 클래식 기타의 아름다운 음색을 바탕으로 기타 소리 가운데 여백을 많이 두었고 음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아 부었다.


음악을 다 다 듣고 난 후 DJ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저도 기타를 좀 치기는 하는데요. 선생님 치시는 곡을 들으면 저도 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뭐 코드가 어려운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소리의 깊이는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거죠? 기타가 비싼 거라서 그런가요?”

한참을 머뭇거리던 황석호씨가 한 마디를 남기고 스튜디오를 떠났다.

“음악으로 보낸 시간이 말을 하는 거겠죠.”

 

황석호 씨의 특집 프로그램은 8주 동안 이어졌다. 모든 곡들이 좋았지만 ‘세노야’에서 들었던 기타의 음들은 늘 귓가를 맴돌았다. 수는 아버지가 쓰시던 기타를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 자신의 방에 들여놓았다. 어릴 때부터 기타에 마음이 갔지만 언제부터인지 자신이 기타를 쳐다보지 않아도 기타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럴 때마다 수는 기타를 한 번씩 쓰다듬거나 여섯 가닥의 줄을 쓸어내려보았다. 그리고 오늘, 기타의 네크를 왼손으로 받치고 오른 손으로 기타의 몸통을 들어 올렸다. 마치 무사가 잘 벼려진 칼날을 들여다보듯 쭉 뻗은 여섯 가닥의 길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드디어 이 기타로 뭔가를 해야할 때가 왔음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한 기타의 기본 코드의 시작은 왜 A가 아닌 C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음악의 기본인 화성을 공부하는 건 엄두가 나질 않았다. 단지 이 기타로 제대로 된 소리를 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수는 코드 구성표에서 여러 플랫과 줄이 만들어 놓은 칸칸 사이에 어디를 짚어야 C코드가 되는 지 확인한 후 손가락을 지판 위에 올려놓았다. 컴퓨터 키보드를 치거나 숟가락 젓가락을 들던 손가락에겐 어떤 포즈를 장시간 유지하는 것은 너무나 낯설었다. 손가락을 억지로 벌리자 왼손 약지가 덜덜 떨었다.

수는 겨우 짚어낸 손가락 그대로 기타 줄을 쓸어내렸다. 뭔가에 걸리고 막힌 답답한 소리가 났다. 다시 한 번 손가락을 가다듬고 줄을 쓸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여섯 줄을 생각 없이 쓸어내렸을 때보다도 듣기 싫은, 화음이라곤 하지만 오히려 불협화음보다 못한 소리가 만들어졌다.

어느덧 손가락 끝은 화끈거렸다. 줄을 눌렀던 손가락 끝이 동그랗게 부풀어 오르는 느낌. 언젠가 기타를 배우면 손가락이 ‘개구리 왕눈이 손’이 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소리를 듣는 것은 누구나 가능한 일이겠지만 소리를 만드는 것은 누군가에게만 가능한 일이지도 몰랐다.

 

학교가 끝나면 수는 뭔가에 홀린 듯이 기타를 붙잡고 코드를 익혔다. ‘세노야’에 나온 코드는 몇 개에 불과했으며 그나마 제일 먼저 익힌 C코드는 어려운 편에 속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곡을 연주할 거란 생각에 수는 적잖이 흥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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