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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leave me high

Don't leave me dry

  

  

‘하이’와 ‘드라이’가 어떤 상태인지 영어권 사람들이 어떤 심정으로 말하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수는 노래 가사를 듣자마자 무기력으로 부풀어 오르는 몸과 바싹 말라있는 공기를 감지했다.

라디오헤드(Radiohead)의 ‘하이 앤 드라이(High and dry)’는 전혀 모르던 곡이 아니었다. 그땐 그저 좋은 밴드의 괜찮은 노래였다. 지금 이 음악은 단순히 힘이 되어주는 음악, 위안을 주는 노래가 아니었다. 노래의 느낌은 지금 자신의 정서와 정확히 일치했다. 그런 일치감에서 느껴지는 희열이 있었다. 뭔지 말하기 힘든 것을 굳이 말로 표현해야한다면 이미 포기했을 그 무엇을, 말이 아닌 음악으로 담아낼 수 있는 것이다.

한번 듣기도 힘든 곡이 있고 두 번 정도 들으면 질리는 곡도 있다. 반면에 하루 종일 들어도 귀를 피곤하게 하지 않는 곡도 있었다. 오히려 너무 감동적이고 아름답다면 이내 감정의 홍수에 더 피곤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확히 자신의 상태와 공명하는 곡은 무한히 반복되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지금 수의 마음처럼 이곡 밑에 깔린 감정이 외로움인지 분노인지 슬픔인지 정확하게 규정되지 않았다. 어쿠스틱한 사운드와 말하는 듯한 가사 그리고 감정을 점층시키지만 폭발하지 않고 종결되는 마무리가 그러했다.

 

수는 도킹 스피커에 아이팟을 연결한 후 공간에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들었다. 계속해서 한곡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방 한구석 스탠드 위에 세워두었던 기타를 잡았다.

전주 부분은 3개의 코드로 이루어져 있었고 노래 역시 3개의 코드가 반복되었다.

수는 음악의 흐름에 집중하며 기타의 지판을 더듬었다. 노래의 멜로디 라인의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어떤 ‘키(key)’인지를 찾고 그 키에서 유추해낸 코드가 곡에서 들리는 코드와 정확히 일치하는 지를 확인했다. 미세하게 바뀌는 6번 줄의 베이스음까지.

 

몇 번 곡이 반복하는 동안 수는 듣는 것만으로 곡을 카피했다. 이번엔 반주 뒤에 깔려있는 기타 솔로부분에 집중했다. 복잡하게 구성되지 않은 라인이었다. 스케일 블록에서 인접한 몇 개의 음들이 단순하게 반복되고 있었다. 듣는 순간 바로 그음을 찾을 수 있는 그런 쉬운 솔로라인이었다.

이제 카피에 남은 건 가사를 외우고 노래를 얹는 것이었다. 계속 음악이 반복되는 동안 수의 기타도 연주되는 곡과 똑같이 연주되고 있었다. 하지만 노래를 따라 부를 생각은 나질 않았다. 기타를 칠수록 뭔지 모를 감정들이 마음속으로 차곡차곡 쌓여가는 걸 느꼈다.

 

문득 맹렬한 허기가 찾아왔다. 도대체 몇 끼를 굶은 건가. 그동안 허기를 느끼지 못했지만 기타를 연주한 후로 배고픔이 찾아왔다. 수는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엄마는 불고기를 재워서 냉동고에 넣어두셨다. 쌀을 불리고 밥을 했다. 고기를 녹여 프라이팬에 올렸다. 밥은 밥솥이 하는 건데 이상하게 자신이 한 밥과 엄마가 한 밥은 그 맛이 달랐다. 수가 한 밥과 엄마가 재워준 불고기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

부자는 자랑할 것이 아니지만 배고픈 건 부끄러운 거다.

 

밥과 고기를 씹을 때마다 지겹도록 들었던 엄마의 경구가 떠올랐다.

왠지 앞으로 부끄러울 일이 많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밥과 고기를 씹는 기분이 좋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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