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에 대해 배우는 통로는 여러 가지가 있고 연합을 경험하는 방법도 기도하나만 있는 게 아니지만 가장 가깝게 하나님을 느끼는 방법은 기도가 맞는 것 같다. 기도의 응답은 결국 하나님께서 나에게 귀 기울이고 계시고 나를 이해하신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그런 경험은 분명히 있다. 그것을 우리 엄마는 기도의 맛이라고 부른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그 자체가 좋아 그 맛을 본 사람은 스스로 그 자리로 나아가게 된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나는 그 자리를 좋아하는데 하나님은 별로 그렇지 않다는 그런 무의식이 내 안에 있다. 모든 기도에 응답을 받는 것이 아니기에 또한 긴 시간 기도한 뒤에야 응답을 받는 경우가 많기에 그런 인식이 생긴 것 같다.
2장에서 말하는 눅18:2~5에 나오는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 나는 하나님께 드리는 나의 기도를 정말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다시 생각하면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신 게 확실한데 나도 모르게 자꾸 그렇게 흘러가곤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불의하고 인색한 재판관이 아니라 관대한 아버지라면 왜 기도의 응답은 그런 식인가? 이 의문이 남아있다.
참 그러고보니 나도 기도에 대해 정리되지 않은 인간이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직관적으로건 경험적으로건 하나님과의 가장 친밀한 연합은 오로지 기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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