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제18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신 고요한 작가님의 <결혼은 세 번쯤 하는 게 좋아>(넥서스 앤드)를 읽었다. 원고 일정 때문에 이틀 간에 걸쳐 나눠서 읽었는데... 가독성이 너무 좋아서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다. 놀라운 점은 작가가 뉴욕을 한 번도 안 가보고 뉴욕을 배경으로 소설을 썼다는 사실. (이쯤되면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작중 배경을 한번도 안 가보고 <설국>을 쓴 경지가 아닌가!) 아니 고 작가님 왈, 원래는 뉴욕에 취재를 가려고 했단다. 근데 때마침 코로나가 터졌단다. 할 수 없이 고 작가님은 현재 뉴욕에 살고 있거나 유학을 다녀온 친구들을 취재해서 그 내용을 작품 속에 녹였다고 한다. 내 경우는 소설을 쓸 때 배경 취재에 공을 들이는 편이다. 지금까지 써온 제주도 형사 좌승주 시리즈도 그렇고 22년에 발표한 <네메시스>나 최근에 작업을 마친 단편들도 보통은 직접 가봤거나 취재했던 곳을 배경으로 담아내는 스타일. 그래서 이 소설 안에서 생생하게 묘사된 도시 뉴욕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했다. 거대하고 비정한 도시 뉴욕에서 불법 체류자로 살고 있는 한국인 데이비드 장, 그리고 그가 선택한 스너글러(외로운 사람들을 껴안고 잠만 자주는 아르바이트)라는 직업. 이 두 가지 설정만으로도 흥미로웠는데 데이비드 장이 영주권을 노리고 위장결혼을 하게 된 마거릿이라는 70대 할머니 캐릭터가 사랑스러우면서도 재미있었다. 이 소설은 캐릭터, 캐릭터, 캐릭터의 향연이었다. 데이비드 장, 마거릿, 데이지, 브라이언, 게리... 등장인물 모두 개성이 또렷했다. 한 권의 소설책을 덮고 나면 남는 건 캐릭터인 경우가 많으니 그런 면에서 이 독서는 성공적이었다. 현대인의 고독을 먼 이국의 대도시를 배경으로 잘 그려낸 작품. 결혼 한 번도 절절매며 살고 있는 나로서는... 결혼 세 번쯤 해야 외롭지 않다는 마거릿의 말이 와닿지는 않았지만. 깔깔. (아마 내 일상에 남자가 너무 많아서? ㅎㅎㅎ 남편 + 세 아들 = 무려 네 명) ps. 개인적으로 출판사 로고가 깔끔하고 임팩트 있게 박힌 표지를 좋아하는데 넥서스 앤드 로고는 완전 내 취향. & 로고 너무 예쁨. 일러스트 표지도 세련되어서 처음엔 외국소설인 줄 알았음. #결혼은세번쯤하는게좋아 #고요한 #넥서스앤드
정보라 작가의 환상문학 단편선 <아무도 모를 것이다>를 읽었다. 웹진 거울과 브릿G에 실었던 열 편의 단편을 묶은 이 소설집은 <저주토끼>로 알게 된 정 작가의 세계관과 궤를 같이 하는 열 편의 단편들로 수놓아져 있었다. 판타지를 왜 읽을까. 이에 대한 답은 “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이야기의 효용 자체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라는 작가의 말에서 드러난다. <물> <산> <금> <Nessun Sapra> 네 작품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물>은 축축하면서 재미있는 대단한 소설이었다. SF지만 심리소설처럼 읽히기도 한다. 한 남자가 낯선 존재인 여자에게 당황하고 그녀를 점점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가 제목 그대로 나한테 물처럼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산>은 판타지 장르의 특성이 잘 드러나서 좋았다. 전설의 힘이 현대까지 미치는 결말이 독특했다. <금>은 타임슬립물인데 사건이 아니라 인물 중심인 점, 인물의 심리가 잘 드러나게 쓰인 점이 독보적이었다. <Nessun Sapra>는 작가의 전공이 힘을 발휘한 작품이었다. 실제로 러시아어를 전공하고 러시아 문학으로 박사를 받은 작가는 짐짓 능청스럽게 가상의 러시아 작가와 한 간호사 사이의 러브 스토리를 마치 페이크 다큐멘터리처럼 그려내 보인다. 작가의 숙명은 거짓말을 진실처럼 포장하는 이야기꾼이 아닐까. 사람들이 거짓말인줄 알면서도 빠져들게 하는 이야기를 창조해내고 그 이야기 속에서 모두가 차마 말하기 어려워하는 진실을 말하는 힘. 이것이 작가가 가진 펜의 힘이자 많은 작가들이 오늘도 각자의 책상 앞에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며 이루고자 하는 목표이겠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를 읽고 나니 작가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이 책을 읽으면 이야기꾼 작가의 힘을 ‘모두가 알 것이다‘. #아무도모를것이다 #정보라 #퍼플레인 #부커상후보 #저주토끼 #환상문학 #한국문학 #한국소설 #소설 #한국소설 #책 #독서 #책추천 #부커상 #추천도서 #SF #호러 #북리뷰
유이월 작가의 짧은 소설집 <찬란한 타인들>을 읽었다. 아직 안 읽은 소설이 두세 편 정도 남았지만 전체적으로 읽은 소감은 작가가 밀도가 굉장히 촘촘한 문장을 구사한다는 것. 아마 긴 장편을 계속 이런 식의 문장으로 쓰긴 어려울 거다. 거대한 숲을 지나가며 만나는 나무 한그루 한그루마다 정성스레 애무해주는 방식이기에. 하지만 이 방식은 짧은 소설에는 매우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더 긴 단편에서 보기 어려운 개성을 더해준다. 단편일수록 밀도가 높은 문장을 구사해야 한다는 평소 내 소신을 증명해주는 소설집이다. 저자가 10년 미국생활을 했기 때문에 등장인물과 배경이 전부 미국인, 미국이다. 문득 좋아하는 단편 '전문' 작가 레이먼드 카버가 떠올랐다. 그가 구사했던 색과 유이월이 즐겨쓰는 색은 다르지만. 문장의 밀도가 높다는 면에서 닮았다. 즐겁고 유익한 독서였다. 몇몇 장면은 찬란하게 빛났다. <햄튼 샌드위치 가게> <킨의 눈동자> <오렌지색 코트>가 특히 좋았다. 배우기도 했고. 필사하고 싶은 몇 문장은 노트로 옮겨 적어놓았다. 부디 유 작가가 계속 글을 쓰면 좋겠다. 다음에는 한국인, 한국을 다룬 소설도 읽어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유이월 #찬란한타인들